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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올래에 대한 小考
[제주건축] 올래에 대한 小考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11.1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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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교수

삼다도(三多島)라는 별칭이 말해 주듯 제주는 바람이 많은 곳이다. 7월, 8월 중 국내에 영향을 주는 대부분의 태풍이 제주도를 이동 경로로 한다. 태풍의 빈도수만 보면 서울의 약 두 배 정도이다. 여름에는 강한 남동풍이, 겨울에는 추운 북동풍이 항시 불어온다. 강한 바람 때문에 몇 백년 된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갔다는 뉴스도 쉽게 접한다.

이런 가혹한 자연환경에서도 삶은 지속되어야 했기에 제주 사람들은 오랜 경험과 지혜를 축적해 나름의 주거문화를 구축해 왔다. 그 중 하나가 돌담이다. 돌담은 파풍(破風)효과를 통해 강한 바람을 잘게 찢어주고 집과 삶을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강한 바람에 맞서는 블록담은 무너져도 돌담은 온전한 이유다.

이런 돌담으로 둘러싸여 완성되는 공간이 올래다. 올래는 큰길에서 집까지 이어주는 골목과 같은 공간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육지의 골목과는 형태나 내용에서 다르다. 제주에서는 집을 지을 때 길고 휘어진 올래를 함께 두는데, 이를 통해 바람을 다스린다. 올래와 이어지는 집터 역시 바람에 유리한 옴팡진 곳이 선호된다.

올래의 어제

올래는 양쪽에 올랫담을 둔다. 그 높이는 약 1.5m 전후로 올래를 지나는 낯선 이의 시선은 차단되지만 돌 사이의 틈은 이 낯선 이의 인기척을 거주자에게 전해준다. 매우 유용한 범죄 예방적 장치라 할 수 있겠다. 올래는 2-3m의 폭을 지닌다. 너무 좁아 차가 들어가지도 못하고 집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수도 없다.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올래만큼 차로부터, 시대의 변화로부터 안전한 곳도 없다.

사람들은 집에 이르기까지 한질(큰길)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진 올래를 지나야만 했고 대문을 대신하는 올래목과 정낭을 거쳐야 했다. 정낭의 역할은 누군가의 접근이나 시선을 차단하기 보다는 걸쳐 놓는 낭(정주목)의 숫자로 거주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상징물에 가까웠다.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질(공적공간)과 올래(반공적공간), 올래목(반사적공간)과 마당(사적공간) 까지 이르는 프라이버시의 위계(Hierarchy)를 거쳐야만 했고, 자연스럽게 일상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낯선 사람은 감시되고 방어되었고 마을은 그렇게 올래를 통해 가장 편안한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사전 상 ‘올래’는 ‘오래’의 제주어 표현이다. 거리에서 대문으로 통하는 ‘좁은 길’이라는 의미와 ‘이웃’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길과 함께 이웃으로 되어 사는 구역 이라는 뜻이다. 제주는 삼무도(三無島)라는 또 하나의 별칭이 있다. 대문이 없어도 도둑이 들지 않고, 기근이 들어도 거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삼다도가 제주의 가혹한 자연환경을 대변한다면, 삼무도는 삶을 지탱해준 열린 공동체(Open Commons)의 작동원리를 설명해 준다.

올래의 오늘

1970년대 근대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올래 역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더 많은 사람들과 자동차를 수용하기 위해 도시는 고도화 되었고 도로가 생겨났다. 자동차가 일반화되었고 올래의 바닥은 자동차를 수용하기 위해 아스콘으로 포장되어 높아졌다. 올랫담은 상대적으로 낮아졌고 자동차 진·출입을 위해 삭제되기 일수였다.

필자는 지역의 연구자들과 함께 제주시 원도심 올래의 변천 과정을 고찰한 적이 있다. 올래를 ‘결절점(막힘, 동일위계로의 연결, 상위 위계로의 연결)’과 ‘길’로 단순화해 각기 다른 위계와 심도를 지닌 단위 올래들이 어떻게 시계열적으로 변화하였는지를 분석하였다. 1914년 그물망처럼 길과 올래들이 연결되어 있었으나, 2015년에는 도로의 신설과 확폭으로 촘촘했던 길과 올래의 구조가 완전히 단절되고 있었다. 특히 1980년대를 기점으로 깊은 심도와 위계를 지닌 전형적인 올래가 급격히 감소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올래는 일순간 새로운 도로에 접하게 되면서 본연의 임무를 상실하게 되었다. 올래와 집들은 더 커진 용적률과 주차수요 때문에 올랫담을 허물어야만 했다. 도로로 둘러싸여 내부에 갇히게 된 올래들 역시 수족과도 같았던 단위

올래들이 잘려나가면서 그 위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내부의 올래와 필지들은 지워졌고 최대의 용적률과 경제성이 확보되는 대규모의 건축으로 채워지고 있다.

결국 올래의 다양한 위계는 오늘날 더이상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원경관을 형성하는 올랫담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돌쌓기로 올랫담을 구성하고 있는 비율은 원도심 전체 올래 중 36.7%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더욱이 돌들간 틈을 형성하는 허튼쌓기 올랫담은 전체의 8.7% 밖에 되지 않았다.

올래의 내일

올래의 변천과정에서도 살펴 보았듯 1980년대까지 제주시 원도심에는 올래의 큰 골격이 남아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해 올래를 장소로 기억하는 많은 수의 커뮤니티가 여전히 존재할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도시재생, 지방창생과 같이 지역을 살리는 사업들에서 커뮤니티가 기억하는 자산을 발굴하고 공유하는 일은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도로나 행정구역을 경계로 사업 범위가 정해지기 일쑤이고, 그 때문에 이질적 성격의 커뮤니티(주민)간 어려움을 겪는 상황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제주는 올래의 위계에 따라 커뮤니티와 마을공간을 구성해 왔기에 올래의 기억을 공유의 기준으로 사업 대상과 범위를 정하면 어떨지 제안해 보고싶다.

오늘의 올래는 난개발로 인한 원형 훼손을 걱정해야 하는 동시에 노후화 역시 심각하다. 올래의 거주자들이 고령화되고 있고, 이는 유지관리의 어려움과 공실화로 이어지고 있다. 올래를 내일 세대에 부(富)의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현명한 대처가 오늘 시급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주민들 스스로가 거주지 올래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일이 우선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올래를 보전(保全)할 것인가’, ‘올래의 풍경과 기억을 계승(繼承)할 것인가’, ‘안전을 확보하고 가치를 더할 수 있도록 재생(再生)할 것인가’를 커뮤니티가 판단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하겠다.

올래를 보전하고 계승하는 데 있어 외국 사례들이 참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교토시에는 3항(項)도로 제도가 있다. 폭 1.8m 이상의 막힌 골목의 경우, 접도한 필지의 건축물 층수와 그 용도를 제한함으로써 도로로 인정하는 동시에 건축물 후퇴선을 완화해 줄 수 있는 제도이다. 오키나와 역사보전지구 ‘이시타 다미미치’에는 돌담 보존 정책이 있다. 골목 양측 돌담을 도로 위 가변 요소(스트리트 퍼니처)로 유연하게 해석해 돌담을 포함한 사유지 일부를 기부채납 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화재 등의 ‘안전’과 채광과 일조 등 ‘위생’이라는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면 굳이 도로로 인정받기 위한 폭 4m의 기준을 보수적으로 고집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레질리언스(Resilience)’, 원래의 상태로 환원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프레임을 활용해 더 나은 상태로 이끌어내려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회복 탄력성’이라 한다. 물리학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최근에는 사회학이나 건축학 분야 등에서도 다양하게 이 모델이 활용되고 있다. ‘오늘의 올래’ 중 많은 수가 이미 찢겨져 버렸고, 이들을 다시 이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제의 올래’에서 배웠듯 올래는 유기체와 같이 성장하기도 또 분화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높은 수준의 레질리언스를 DNA로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올래에 접한 맹지 위에 새로운 올래를 입체적으로 키우고 분화시켜 심도를 더하는 ‘내일의 올래’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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