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건축 칼럼] 이루려면 저질러라
[제주건축 칼럼] 이루려면 저질러라
  • 김형훈
  • 승인 2019.11.18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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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희(소설가·번역가)

아래 글은 <제주건축> 6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6호는 올해 4월에 발간됐습니다. 칼럼을 쓴 이는 번역가 김석희씨입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번역하는 등 웬만한 작품엔 그의 손떼가 묻어 있습니다. 그는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아주 예쁜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칼럼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40년 타향살이를 접고 제주에 돌아와 귀양살이에 맛을 붙인 지도 어느덧 1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2009년 봄에 인천항에서 이삿짐과 함께 배를 타고 서해 밤바다를 16시간 항해한 끝에 다음 날 아침 제주 바다에 이르러,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에 감격하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새삼 사무치게 떠오릅니다.

뭔가 이루려면 저질러야 한다.-제주에 집을 짓고 낙향한 과정의 핵심입니다. 땅은 오래전에 장만해 두었습니다. 2000년에 제주시(당시 북제주군)에서는 유휴 공유지를 소규모 택지로 개발하여 분양하는 사업을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하고 입찰에 참여하여 운 좋게 따낸 것입니다.

애월 바닷가에 집터를 구해 놓긴 했지만, 막상 귀향하려니 걱정되고 주저되는 바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과연 고향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격조했던 친구들, 친척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집은 어떻게 지을 것인가? 황토집으로 할까 통나무집으로 할까? 규모는 단층으로 아담하게 할까, 이층으로 좀 번듯하게 지을까? 그 집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때로는 즐거운 기분으로, 때로는 불안한 마음으로, 귀향의 꿈을 세우고 허물고, 또 세우고 허물고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전원주택이 유행할 무렵이어서 그와 관련된 책을 사서 읽고 잡지를 구독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귀향에 대한 열망이 나를 들뜨게 만들다가, 또 어떤 때는 귀향에 대한 불안이 나를 주저앉게 만들고... 설렘과 망설임의 연속이었지요.

2006년 봄에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나자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염려가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누이들이 제주에 있긴 하지만, 어머니 마음은 그래도 장남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도 그런 어머니의 소망을 나 자신에게 불어넣어 용기를 내고 의욕을 부추기는 데에 보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귀향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나자 이제는 집을 짓는 문제가 눈앞에 태산처럼 다가왔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집도 한 번 지어봐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집을 한 번 짓고 나면 10년은 늙는다는 말도 있듯이, 그에 따른 괴로움과 어려움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집을 짓느라 애를 먹고 속을 끓인 사연도 뜻밖에 많더군요. 내가 들은 이야기 가운데 압권은 이렇습니다. 집이 다 지어진 뒤 마지막 정산하는 자리에서 건축주가 목수한테 각서 하나를 내밀면서 도장 찍어 달라고 요구했는데, 그 각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답니다. 첫째, 이것으로 당신과 나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다. 둘째,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셋째, 어디서 우연히 만나더라도 결코 알은체하지 않는다.

2007년 가을에 친구를 만나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건축 컨설턴트를 소개해 주더군요. 그는 자기가 직접 관여한 사업장 - 경기도 양평, 수서 등지 - 으로 나와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잘 지은 별장이며 전원주택 등을 구경시켜 주었는데, 좋은 집을 지으려면 먼저 좋은 집을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보이면 사진으로 찍어서 건축사에게 보여주고 설계에 반영하라는 귀띔도 들었습니다.

이듬 해 초에는 매제의 소개로 건축사(예원건축사사무소 대표 임성추)를 만났고, 시공은 오랫동안 건축에 종사해 온 친구(서예가 박흥일)가 맡아서, 착착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과 만나 집의 규모와 모양을 상의할 때 내가 당부한 것은 딱 한 가지 : “건축 미학 30%, 주택으로서의 실용성 70%.” 굳이 이런 당부를 보탠 이유는, 건축가가 자신의 취향이나 미학을 앞세워 그 반대 비율로 지은 집들을 보고 불편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가 내집을 지어주겠다고 제의했을 때 사양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제주의 집은 제주의 풍토를 아는 사람이 지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우리 집을 하늘에서 보면 H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전통 주택 구조를 되살린 것으로, 안거리와 밖거리를 복도로 연결한 형태입니다. 거기에 시스템창호를 채택해서 통유리창을 곳곳에다 넓고 시원하게 썼는데, 집 주변의 자연 풍광을 있는 그대로 집 안에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벽체 외부의 아래층은 드라이비트, 위층과 지붕은 징크판 마감입니다. 내부의 아래층은 자작나무, 위층은 편백나무 패널로 마감했는데, 집 안에 들어서면 향긋한 나무 냄새가 코끝을 즐겁게 해줍니다.

집짓기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야말로 행운아인 셈입니다. 설계 단계에서는 컨설턴트와 건축사가 협력하고 시공 단계에서는 건축사와 시공자가 협력해서 진행해준 덕분에, 나는 그저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에서 제주를 오가며, 그때마다 키를 세우며 모습이 달라지는 건물을 보면서 감탄하고, 저녁엔 그들과 어울려 술잔이나 나누면 되었으니까요. 집을 짓고 10년 늙기는커녕 5년은 더 젊어진 것 같다는 것이 나를 만난 이들의 감상이니, 그렇다면 나도 우리 집 덕분에 5년은 더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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