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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제주를 담다
도시, 제주를 담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11.1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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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studio 공공 건축사사무소

도시의 인상

바르셀로나는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대표적인 도시 중에 하나이다.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물과 새로움을 드러내는 건물이 공존한다. 거리를 걷다가 한 건물을 우연하게 봤다. 유럽 어느 오래된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또 그렇지 않은 듯하여 이목을 끄는 건물이었다.

짐작 100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건물인데 입면 상부에 와이어가 뭉게구름처럼 엉성하게 얹어져 있었다. 건물에 이야기가 있을 것임을 확신하며 내부 구경에 나섰다. 1880년대에 건축가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라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규모는 작지만 여러 이야기를 거처 안토니 타피에스 재단에서 인수하여 현재까지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으며, 1997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사례처럼 바르셀로나는 거주자와 소유자는 불편하지만 고치면서 쓰는 건물들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갖고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Galeria Toni Tapies in barcelona. 이형주
Galeria Toni Tapies in barcelona. ⓒ이형주

이렇듯 도시의 인상이란, 사람들이 건축물을 없애고 새로 담는 단순한 행위보다 좀 더 유기적인 방법으로 수정하고 생성할 때, 그 지역성과 주민들의 생활이 담겨져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도시와 건축법의 규제, 자본의 논리, 사람들의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과거의 도시를 현재까지 연결하고 변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쳐 쓰는 주거공간

다양한 요소 중 사용자에 의한 행위 사례를 주거공간으로 제한하고 예를 들어 본다면, 건축에 의한 도시 이미지를 이야기할 때 도시가 좀 더 풍성함이 있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수도관 및 진동을 이유로 세탁기 설치를 금지한 뉴욕의 오래된 아파트, 다른 건물을 통과해야만 입구가 나오는 파리의 주택, 엘리베이터 없이 5층 이상을 올라가는 바르셀로나의 오래된 빌라 등 현재 법으로는 건축이 불가능한 장소를 고쳐 사용하는 사례이다.

제주도의 경우 민가 관련 책과 보고서 등을 통해서 외관상으로 전통민가가 아닌 것 같으나 수리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찾을 수 있었다. 초가의 구조와 형태를 두고 건물 안에 있던 외부를(고팡, 정지, 쇠막 등) 방으로 수리하고 반복하여 새를 지붕으로 덮어가며 사용되고 있는 이러한 경우도 해외에서 찾을 수 있는 마찬가지 사례라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른 도시들은 이러한 결과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나, 제주는 사라지고 없거나 겉으로 보이는 사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 도시의 이미지로 조성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1985년에 조천리의 많은 민가 조사사례가 2018년에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32년 만에 대다수가 사라진 것이다. 사례들이 더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전에 실제로 남아 있는 초가를 둘러보기 위해 제주시 외도 2동 1992번지를 찾았다.

할아버지 이야기로 유추한 초기 평면(왼쪽)과 현재 평면. 이형주
할아버지 이야기로 유추한 초기 평면(왼쪽)과 현재 평면. ⓒ이형주

내가 생각하는 제주초가는 기본 기능을 중요시한 조밀하고 촘촘한 공간이다. 구조부재와 지역특성에 따라 낮고 좁게 생성된 방들을 최소한의 기능으로 풀었다. 좁은 굴묵 상부공간을 이용한 벽장, 상방 천장에 설치된 시렁과 상방 뒷문 수납시설인 장방, 정지와 상방을 기능적으로 연결하는 챗방, 툇마루 기능을 하는 낭간 등은 기본 기능 외에 밀도 있는 공간 활용을 한 사례가 아닐까? 이미 많은 보고서와 책에서 조사된 바와 같이 육지와 다른 생활방식, 독특한 지역성이 반영된 제주의 민가는 도시의 인상이라는 부분에서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 초가의 사용자인 박씨 할아버지(35년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의 초가가 과거에 어떻게 쓰였는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밖거리에 해당하는 초가는 연대마을의 강한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고 바다 쪽으로 경사진 마을 땅의 높낮이는 비가 많이 와도 집에 피해를 줄이는 요소라고 말씀하셨다.

95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집은 박씨 할아버지의 결혼 즈음에 안거리는 어머님이, 밖거리는 고쳐서 부부가 사용하셨다고 한다. 기존 쇠막을 구들로 고쳐 부부 중심 공간으로 사용하고 굴뚝을 만들어 부엌과 연결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나무, 돌, 흙 등을 집주인이 준비해 두면 짧은 시간 동네 사람들이 와서 도와줬다고 한다. 재료를 구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나무와 새는 해안동에서, 돌은 앞바다에서, 흙은 집짓는 터에서 마련했다고 하셨다. 현대 자재비와 인력비가 집짓는 소요비용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데 과거에는 이웃과 주변의 재료로 대체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그림에서 보듯 과거의 외부공간이 사용자의 목적에 의해 내부공간으로 고쳐지고 사용되었다. 이런 사례가 건축물을 유기적인 방법으로 수정하고 생성하며 만들어 내는 도시의 인상이 아닐까? 앞에도 썼듯 비슷한 많은 사례가 보고서 등으로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제주의 이미지로 형성되지 못한 것 같다.

10년 동안 제주의 변화는 빠르고 크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의 인상과 더불어 주거공간의 변화도 크다. 지금 우리가 개화기, 일제 강점기, 5.16 등 역사적 사건 등을 기준으로 제주의 변화를 규정하듯이 50년, 100년이 지나 현재를 지칭하는 기준(4차 혁명에 따른 도시형성 및 생활방식의 변화, 인구의 빠른 유입으로 인한 주거의 형태변화 등)이 생겼을 때 우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건축의 어떤 부분이 제주라는 성격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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