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8 17:21 (목)
“어른이 되어도, 내가 좋아하는 취미는 계속할래요”
“어른이 되어도, 내가 좋아하는 취미는 계속할래요”
  • 김은애
  • 승인 2019.11.12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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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꽃은 학교에서] <6> 탐라중 오케스트라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우리의 취미는 '음악'
"각자의 꿈은 달라도,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어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선진국을 가늠하는 지표입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은 뭐가 다를까. 먹는 것, 입는 것, 여러 가지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문화예술은 특정한 사람들이 누리는 산물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즐기는 보편타당한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선진국입니다. 특히 문화예술은 어릴 때부터 심어줘야 합니다. <미디어제주>는 제주도내 각급 학교의 동아리를 들여다보면서 문화예술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심어지고 있는지 살피는 기획을 싣습니다.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탐라중학교 오케스트라의 연습 모습.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독일의 시인 괴테가 말했다.

“사람이 여행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하나의 목표만을 위한 삶보다는, 여정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삶이 더 행복할 거라는 의미다.

하루하루 바삐 돌아가는 고된 일상인데, 삶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당신만의 ‘취미’를 만들면 된다.

여기 취미가 ‘악기 연주’라고 말하며, 삶 속에서 마음껏 만끽하는 세 학생이 있다. 탐라중학교 3학년 1반이자 오케스트라 단원인 임채린, 고재원, 박소민 세 학생이다.

(왼쪽부터) 고재원, 박소민, 임채린 학생.

“제 취미는 ‘악기’예요.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게 정말 좋고, 재미있어요.” / 탐라중학교 3학년 임채린

채린이는 초등학교 방과 후 활동으로 바이올린을 처음 접했다. 이후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의 매력에 더 빠졌고, 그에게 악기란 곧, 삶 자체가 됐다.

“1학년 학기 초부터 오케스트라에 입단했어요. 사실은요, 탐라중에 진학하게 된 것도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기 위해서 예요.” / 임채린

채린에게 있어 오케스트라의 의미는 엄청나다. 한때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다는 채린. 그에게 꿈을 물으니 ‘교사’라고 했다. 그의 꿈이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이유는 뭘까?

“정말 선천적으로 타고난, 잘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저는 그 정도 재능은 없는 것 같아서요. 바이올린 전공은 어렵겠죠. 그래도 고등학교 가서도 기회가 된다면 오케스트라 활동은 꾸준히 하고 싶어요.” / 임채린

채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재원은 “나도 졸업하기 싫어. 졸업식 때 엄청 울 것 같아”라고 거든다.

“저도 그래요. 오케스트라에 들고 싶어서 탐라중학교에 왔어요. 처음에는 정말 설렜어요. 꿈꾸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으니까. 그런데요, 1학년이 끝날 때 즈음 되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2학년 때 잠시 오케스트라 활동을 중단한 적도 있어요.” / 고재원

재원이 2학년 때 갑자기 오케스트라를 중단한 까닭. 혹독한 연습 때문인지 물으니 의외의 답을 한다.

“연습이 힘든 건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서 들어온 오케스트라니까, 1학년 때 바이올린 파트에서 되게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 2학년이 되고, 바이올린 개인 레슨을 받는, 저보다 훨씬 잘하는 애들과 함께 연주하다 보니 주눅이 들더라고요. 그게 힘들었어요. 제가 오케스트라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요.” / 고재원

어릴 적부터 꾸준히 바이올린을 켜온 학생과 단순 취미로 바이올린을 켜온 학생. 둘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어릴 적부터 꾸준히 켜온 학생이 훨씬 잘할 테다. 하지만 이는 당시 14살 재원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연습 중인 탐라중 오케스트라 학생들.

친구들과의 실력 차이에 오케스트라를 탈퇴했지만, 그의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오케스트라 합주실에서의 연습 시간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막상 그만두긴 했는데, 계속 그리웠어요. 그래서 2학년 2학기, 10월경 다시 오케스트라에 가입했죠. 지금은 오케스트라의 단장이 되었고요. 바이올린이 아닌 팀파니를 연주하고 있답니다.” / 고재원

팀파니는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빠질 수 없는 타악기 중 하나다. 음정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특별하다.

“재원이가 팀파니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팀파니를 빠르게, 정확한 박자로 연타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닌데 잘해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임채린

“사실 타악기 파트의 경우, 현악기보다 연습을 덜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게 좀 억울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오래 함께 오케스트라 활동을 해보니 알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협업’이라는 사실. 서로를 이해하는 ‘우리’가 되어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는 사실을요.” / 박소민

외교관이 꿈이라는 소민이는 탐라중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한다. 학교에서는 전교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오케스트라 활동과 학교 부회장, 그리고 학업 활동 모두를 잘 해내기가 쉽지만은 않아요.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느라 학원 수업에 늦었을 때. 학원 선생님께 이야기해도 이해를 못 하시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도 오케스트라는 졸업할 때까지 할 거예요. 이유요? 그냥, 좋으니까요.” / 박소민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민은 오케스트라 연습 때문에 학원에 지각해 혼난 적이 여러 번 있다. 학원 선생님께 ‘뭐라고 핑계를 댈까’ 늘 고민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꾸준히,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재원은 너무 힘들어 오케스트라를 그만뒀지만, 악기를 변경하면서까지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탐라중 오케스트라의 어엿한 단장으로 활약하며, 필요할 땐 조금의 ‘군기’를 잡는, 악역도 자처한다.

채린은 한때 바이올린 전공을 꿈꿨지만, 재능에 한계를 느낀 뒤 지금은 취미로 바이올린을 한다. 제삼자의 눈엔 단순한 취미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채린에게 오케스트라 활동은 삶에 없어선 안될 행복이다.

소민의 꿈은 외교관. 재원의 꿈은 의사. 채린의 꿈은 교사. 모두 꿈은 다르지만, 입을 모아 말한 한마디.

“고등학교에 가서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싶어요.”

이들은 제주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들며,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계속 하고 싶은데, 이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올까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기사를 통해 어른들께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청소년들이 마음껏 연주할 수 있도록. 청소년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다양하게 생기고, 연주 기회도 다양하게 주어지기를 소망해요." / 임채린

이토록 오케스트라를 사랑하는 세 학생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있어 ‘오케스트라’란 무엇인가요?”

“저희에게 오케스트라는 ‘밀당(밀고당기기)’이에요. 연습하며 힘들 땐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무대에 올랐던 순간을 기억하면 그만둘 수가 없어요. 심지어 이젠 연습 시간마저 즐겁다니까요. 마치 오케스트라와 밀당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왼쪽부터)(왼쪽부터) 고재원, 박소민, 임채린 학생.
이들에게 오케스트라란 '밀고 당기기'라고 한다. 그만하고 싶다가도 계속 하게되는, 마성의 취미다.

무료한 삶을 반짝이게 만드는 특별한 취미.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악기 연주’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찾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우리 아이들처럼, ‘문화예술’을 행하고 즐겨보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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