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재발견 – 일
가족의 재발견 – 일
  • 홍기확
  • 승인 2019.10.15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상의 조각모음]<19>

올해 2월. 아내와 아이가 태국으로 놀러갔다. 나는 집에 홀로 남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가족들의 7가지 습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직업은 일시적인 것이다. 은퇴하고 나면 곧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고 회사는 계속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의 역할은 끝나는 법이 없다.”

아이와 아내가 사라진 그 순간, 나의 두 번째 질문은 이랬다.

“집에서 뭘 하지?”

회사에서는 물론 역할이 있었다. 즉, 내 일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나는 집에서 역할이 없어졌다. 즉, 내 일이 없어졌다. 흔히 1인 기업이라는 말이 있고, 1인 가구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1인 가족기업이 없는 것처럼, 1인 가족이라는 말도 없다. 결론내리자면, 1인은 가족이 아니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책임, 가족을 위한 일도 없다.

그래서 심심해졌다. 시간은 더디게 갔다. 나를 위한 집 청소는 의무가 아니게 되었고, 넓은 집안의 공간은 불필요한 방들과 가구, 집기류로 가득한 것을 느끼게,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옷장의 1/3만이 필요했고, 3개의 방중에 1개의 방만 있으면 충분했고, 침대는 혼자 쓰기에는 불필요하게 컸다. 뭐, 그랬다.

회사로 치면 나는 선배 회사원에서, 방금 입사한 신입사원이 된 느낌이다. 이건 또 무슨 느낌일까?

대학생일 때는 과거의 것을 공부했다. 그것도 반복해서 외우거나 충분히 이해를 할 정도로 익혔다. 하지만 모두 몇 달, 1년, 10년 전들의 정보였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니 하루하루가 역동적이고 모든 게 새로운 것들이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시대에 이미 뒤떨어져있고, 낡은 정보와 지식이었던 것을 격렬히 깨달았었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집에서 새로운 것이란 별로 없다. 모든 것들이 낡은 정보와 지식이다. 나는 금세 신입사원처럼 신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낡은 도화지 바탕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는, 중학교 이후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40대 어른처럼. 어쩔 줄 모르는 신입사원처럼.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질문이 떠올랐다.

“그럼, 이제 집에서 뭘 하지?”

먼저, 식탁에서 아이의 자리(어느 집이나 가족의 자리는 정해져 있을 듯하다)에 앉아 술을 마셨다. 그리고 아내의 자리로 옮겨가 책을 읽었다. 그리고 느꼈다. 가족들과 자리를 바꾸어 앉은 순간의 풍경, 그 풍경에서 나를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은 이런 것이었구나. 가족들은 밥먹을 때 항상 나의 왼쪽 얼굴을 바라보고, 아내는 침대에서 보통 나의 왼쪽 어깨쯤을 지켜보았겠구나.

미래학자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가 『미래쇼크』에서 참고한 문헌이 359권, 『제3의 물결』이 534권, 『권력이동』은 무려 580권이었다. 미래학자가 미래를 알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를 공부한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의 미래. 가족이 떠난 과거와 현재. 이 시점.

직업은 일시적임을 깨달았다. 직장에서의 일은 내가 떠나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 사람만 바뀔 뿐 나의 정체성이 아니다.

하지만 가족에서 역할은 영원함을 알았다. 가족 안에서의 일은 사람이 바뀌면 익숙한 것이 낯설게 되는 법. 가족에서의 내 역할, 내 자리, 나의 일.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이렇게 가족이 없어진 가정에서, 어쩔 줄 모르는 미래를 미리 경험한 순간에야, 이토록 할 일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가족과 일을 재발견했다.

계속할 수 있는 평생의 일을 찾는 노력과 그 끝.

가족의 빈자리에서 진정한 내 일을 찾았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