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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주택의 좌향
제주 주택의 좌향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10.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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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선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 / 건축사사무소 지안

이번 글은 <제주건축> 제4호에 실린 내용이다. 배한선 제주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이 설계를 하면서 겪었던 일을 적고 있다. 제주에서 집을 지을 때 풍수 등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해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주택은 건축물 중에서 사용자의 요구사항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물이다. 비바람이 심하니 창틀을 튼튼하게 하고, 습한 곳이니 창문을 많이 내야 하는 등 자연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드러난다. 짐이 많으니 수납방을 따로 마련하고, 추위를 많이 타니 창문을 작게 내는 등 사용자가 집에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도 올곧이 보여준다.

반면 일반적인 설계방법과는 전혀 다른 생뚱맞은 건축주의 요구에 건축사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한번은 입구와 주요 실을 남향으로 배치하는 것이 가능하였음에도(사례1-가) 북쪽으로 출입구를 두어 전면도로에서는 집을 빙 돌아서 출입하게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사례1-나) 왜 그런 요구를 하는지 물었다. 이유는 “지관에게 물었더니 그리해야 가족이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건축주는 지관에게 물었더니 착공일을 정해주어 건축허가는 봄에 받았음에도 늦가을이 되어서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심지어는 공사가 덜 된 상태에서 상량일자를 맞추느라 우선 기둥 두 개와 보를 걸기도 하였다. 공정을 이렇게 현장과 맞지 않게 정해버리는 경우에도 애써 짓는 집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면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한번은 근린생활시설의 설계에서 지관에게서 출입문도 조금만 보이게 하고 간판도 작게 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사례2-다) 결국 직영을 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임대하기로 하고 나서야 (사례2-라)처럼 도로변에 배치하게 되었다. 임대상가는 건축주의 사주와 무관하다는 이유였다.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지관의 말을 건축사는 무시할 수도 없고 달리 설득할 방법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바람과 좌향

일단 건물의 좌향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주택의 좌향은 일반적으로 남향(동남, 서남 포함)을 최우선으로 한다. 한국의 4계절을 고려하면 추운 겨울에 많은 일조를 얻을 수 있고 더운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적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도 주택의 좌향은 육지와 다르다고 한다. 최재권의 ‘제주지역 농촌주거공간의 생활 문화적 특성과 변화에 관한 연구’를 보면 대상은 농촌주거로 한정되지만 북제주 지역의 주거는 동향, 서향에서 높은 분포를 나타낸 반면 남향은 적게 분포되었으며, 남제주 지역의 주거는 남향 배치가 높은 분포를 보인다고 한다. 제주도의 지형이나 바람 등 환경적 특정에 의해 지역별로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성필은 제주인에게 바람을 이해하는 것은 목숨 줄을 이어가는 것과 같다고 책 <신화와 건축공간>에 적었다. 그중에 11월에서 2월까지 불어오는 겨울 북서풍의 찬바람이 제주를 바람의 섬으로 불리게 한 주범이라고 한다. 건물의 좌향과 관련해서 북촌가옥을 예로 들어 “채광에 유리한 남동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거의 서향에 가까운 남남서향을 주로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중략) 반대로 산남지역에서는 대부분 남향의 가옥이 흔하다. (중략) 산북지역은 북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창을 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남서향의 가옥배치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언급한다.

제주도에서 북제주 지역의 주택은 남향의 일조를 누리기보다는 북서풍의 바람에 대처하는 남서향의 좌향으로 배치되었다는 말이다. 기계설비시설이 발달한 지금도 북서쪽에 창문을 크게 내면 “이런 데서 한 번 살아봅써”라면서 핀잔을 듣는 이유이다.

 

민간신앙과 좌향

풍수지리의 양택론에서 혈(穴)은 건축물이 세워지는 곳이고 이 혈의 중심을 좌(坐)라 하며 이 좌가 정면하는 방위를 향으로 하여 좌향이 결정된다.

제주도 주거에는 거의 모든 장소에 신이 좌정해 있는데 성주신은 위계상 최고의 가택신으로 신봉된다. 성주신은 인간에게 집짓는 법을 처음 가르쳐 준 신으로 추앙되고 또한 새로 집을 짓는 것은 성주신의 성립도 의미한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성주신보다는 문전신이 중시되는데 문전신이 성주신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과 별개로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성주신의 좌정처는 큰 구들과 고팡, 상방사이의 ‘생깃기둥’의 상부이고 문전신은 상방 대문의 높은 곳에 좌정한다고 추측되는데, 모두 상방(마루)에 봉안된다. 여기서 주택을 ‘혈’이라 하면 상방은 ‘좌’에 해당되고 ‘좌’가 정면하는 방위가 ‘향’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명당인 마당쪽으로 향하게 된다. 이와 같이 제주의 주택은 풍수지리의 틀로만 설명하기 어려우며 제주도의 신화를 포함한 무속신앙이 개입된다.

또한 정영철은 ‘무속의례를 통해 본 제주도 전통주거의 공간구조 및 의미에 관한 연구’에서 “무속신앙은 종교라기보다는 생활양식의 일부로 문화의 저변을 형성시켜온 지배적 사상으로 생활의 모체가 되는 주거와 특히 밀접히 관련되어 인간과 공존하며 현재까지도 원형대로 잔존하여 주민의 생활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홍식은 자신의 저서 <한국의 민가>에서 “양택론은 (중략) 추상적이고 상징적 언어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봉건적 사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관에 의해서 기운이 평가받고 주택 간살의 방위가 결정되는 것은 제주도에서만 아직까지도 횡행하여 근대적 주택발전에 커다란 암적 요소가 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건축주가 그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도 제주도의 무속신앙이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가치를 가지고 역할을 수행하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면서

지금까지 제주건축의 좌향과 관련된 글을 간략하게나마 따라가면서 제주 주택의 좌향에는 바람 등 자연환경 뿐 아니라 민간신앙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후자의 경우 다소 생뚱맞은 설계를 요구하는 건축주의 당당한 모습에 일면 수긍하게도 되지만 동시에 “극복하는 방법은 무조건 거부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부터 철저히 이해하고 그 가운데서 근대적 요소를 발견하여 이것을 확대·극대화시키는 것뿐이다.”라는 김홍식의 주장을 곱씹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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