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재발견 – 밥
가족의 재발견 – 밥
  • 홍기확
  • 승인 2019.09.24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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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18>

올해 2월. 아내와 아이가 태국으로 놀러갔다. 나는 집에 홀로 남았다.

프랑스의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말했던가? ‘무슨 답을 하는지 보다는, 무슨 질문을 하는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라.’고.

아이와 아내가 사라진 그 순간, 나의 첫 질문은 이랬다.

“그럼 내 밥은?”

과식을 하는 건 인간뿐이다.

야생동물들은 과식을 하지 않는다. 배고파 죽은 동물은 있어도, 배 터져 죽은 동물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배고파 죽거나 배불러 죽거나 둘 다 가능하다.

야생동물들은 과시를 하지 않는다. 보석과 과식은 과시다. 야생동물들은 어떤 치장도 하지 않지만, 인간은 몸에 보석을 달고 남에게 과시한다. 또한 과식을 하며, 비만에 이른다. 세계인구의 1/7은 기아(飢餓)에 시달리고, 1/3은 비만에 시달린다. 안타까운 건 기아치료제는 없고, 비만치료제만 있다는 것이다.

좋다. 점점 미쳐가는군. 그래서 내 밥은?

아침에는 아내가 먼저 일어난다. 내가 씻고 아이를 깨운다. 아이가 씻은 후 우리는 함께 아침밥을 먹는다.

결혼 후 15년간 아침밥을 못 먹은 경우(숙취, 아내와의 전쟁, 지구의 위기 등)는 몇 번 있을지라도, 밥을 안 먹은 경우는 없다. 특히 아이는 태어난 지 4,410일이 되었는데 아침 4,410끼는 물론이고 점심, 저녁까지 모두 13,230끼 중 단 한 번도 끼니를 거른 적이 없다.

밥을 먹은 후. 거의 항상 우리 가족 세 명은 서로 다른 시간에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가장 먼저 직장으로 출발하면, 다음으로 아이가 학교에 가고, 마지막으로 아내가 허겁지겁 꽃단장을 하고 직장에 간다.

그런데 평범한 일상에서 아내와 아이가 모두 사라졌다.

군대로 치면 전력의 2/3이 빠져나갔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내 밥은 어떻게 하지?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굶자.

물론 굶은 건 아침밥뿐이다. 점심은 직장에서, 저녁에는 약속을 잡고 술을 마셨다. 하지만 공허한 기분은 질문과 답변을 복기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집안일도 2/3로 줄어들어 시간이 남기도 해서 곰곰이 꼼꼼히 생각해보았다.

예전에는 밥을 같이 먹으면 직장동료든 친구든 지인이든 식구(食口)로 여겼다. 하지만 가족(家族)이 떠나고 나니, 예전에 식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밥이 맛이 없었고, 그다지 함께 먹을 이유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차하고 깨달았다.

식구가 바로 가족이요, 가족만이 식구가 됨을 깨달았다.

밥을 먹을 이유가 가족이 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어른들이 일상에 힘겨워하면서도 흔히 말하던 ‘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짓’이라는 것의 빠진 말을 찾았다. 바로 ‘가족들과’다. 다 가족들과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짓이었던 것이다.

밥이 결핍된 순간에서 지독히 평범한 존재인 가족을 찾았다.

가족을 밥에서 재발견했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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