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때 ‘봉개리’가 ‘함명리’로 바뀌었던 사연 알고 보니…
4.3 때 ‘봉개리’가 ‘함명리’로 바뀌었던 사연 알고 보니…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9.09.09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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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 거로마을 김춘자 할머니, 4.3평화재단에 사진·성금 기탁
봉개리 초토화시킨 연대장과 작전참모 이름 딴 ‘함명리’로 바꿔
4.3 유족인 80세 김춘자 할머니가 4.3평화재단에 기증한 사진.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기념사진. 사진에 마을 이름이 봉개리가 아닌 함명리라고 적혀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4.3 유족인 80세 김춘자 할머니가 4.3평화재단에 기증한 사진.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기념사진. 사진에 마을 이름이 봉개리가 아닌 함명리라고 적혀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당시 제주시 봉개마을을 초토화시킨 연대장과 작전참모가 자신들의 이름을 따 마을 이름을 아예 ‘함명리’로 바꿔버렸던 사연이 담긴 사진이 공개됐다.

이같은 사연은 제주4.3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온 팔순의 할머니가 4.3 당시 사진과 성금을 제주4.3평화재단에 기탁하면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9일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4.3 유족인 김춘자 할머니(80)가 최근 재단을 방문, 70년 동안 간직해온 사진 6점과 성금 100만원을 기탁했다.

김 할머니는 제주시 화북 거로마을 출신으로, 4.3 당시 9세였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막내고모가 총살당했고 쌍둥이였던 다른 작은아버지는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는 아픔을 겪었다.

아버지와 당시 여중생이었던 막내고모는 1949년 2월 20일 도두리 궤동산에서 주민 70여명과 함께 집단 총살을 당했지만, 김 할머니에게는 아버지와 막내고모의 죽음을 슬펴할 겨를도 없었다.

농업학교에 다니던 쌍둥이 작은아버지 한 분은 고산동산 근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행방을 알 수 없던 다른 작은 아버지는 인천형무소로 끌려가 수형인이 돼 있었다고 한다.

당시 9살이었던 김 할머니에게는 아들과 딸을 비롯해 자식 4명을 잃은 할아버지 김광수씨가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과 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고이 간직하면서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에 재단에 기증한 사진 6점은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품이다. 제주공립농업중학교 졸업 기념사진과 화북보통학교 졸업 기념사진, 제주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기념사진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1949년 9월 14일 촬영된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사진은 당시 경찰 간부와 지역 유지, 마을 주민들이 참석한 모습이 담겨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1949년 2월 봉개마을을 초토화시킨 2연대 함병선 연대장과 작전참모 김명 대위가 나중에 봉개마을을 재건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조합해 마을 이름을 ‘봉개리’에서 ‘함명리’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이같은 수모를 견딜 수 없었던 마을 주민들이 훗날 ‘봉개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는 사연이 함께 소개됐다.

4.3 당시 사진과 성금을 4.3평화재단에 기탁한 김춘자 할머니(사진 오른쪽). /사진=제주4.3평화재단
4.3 당시 사진과 성금을 4.3평화재단에 기탁한 김춘자 할머니(사진 오른쪽). /사진=제주4.3평화재단

김 할머니는 사진을 건네면서 “늘 4‧3평화공원에 모셔져 있는 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님 위패에 위안을 받는다”며 “이렇게 사진을 기증하니 4‧3평화기념관과 4‧3평화공원에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든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또 성금 100만원을 함께 기탁한 김 할머니는 “4‧3 영혼들의 안식과 평온을 위해 평화공원에 작은 나무 한 그루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에 조그만 정성을 보탠다”는 말을 덧붙였다.

양조훈 이사장은 “역사적인 사료의 가치를 지닌 사진과 성금에 너무 감사드린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사진은 온라인 이용자들이 볼 수 있도록 디지털 스캔을 통해 아카이브 자료로 등록하고 성금은 4‧3평화공원 평화의 숲에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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