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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미끄럼틀을…” 말이 떨어지자 “와~” 환호성이
“학교에 미끄럼틀을…” 말이 떨어지자 “와~” 환호성이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08.31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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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간을 바꾸자] <2> 건축수업

우리 곁엔 획일적인 공간이 너무 많다. 건물 하나만 보더라도 그 기능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변화를 주려 하지 않는다. 공간은 사람에 따라 달라야 하고, 사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함에도 지금까지는 무턱대고 맞춰진 공간에 사람을 끼워 넣는 형태였다. 특히 학교공간이 그랬다. <학교 공간을 바꾸자>라는 기획은 제주 도내에서 학교공간을 바꾸려는 이들의 활동과, 이를 통해 실제 공간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제주부설초, 사이공간 바꾸기 앞서 건축이해 작업

5학년 학생들 참여해 학교내 공간 알아가기 활동

몸으로 공간 크기 재고, 꿈꾸는 공간을 그리기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건축은 사람이 몸을 움직여 만들어내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런 행위는 태초부터 있었다. 그때는 자를 만들어서 길이를 재거나 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단위를 측정하는 자를 비롯한 건축 장비들이 등장하면서 보다 쉽게 건축행위를 가능하게 했다. 어쨌거나 사람은 공간을 창출하고, 그런 공간들의 조합이 바로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불린다.

건축이라는 이름. 알고 보면 어렵지 않다. 늘 우리 곁에 붙어있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그 존재는 너무 있어 보인다. ‘있어 보인다’는 의미는 ‘돈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건축은 돈이 들어가는 건 맞지만, 돈이 반드시 건축다운 건축을 일구지는 않는다. 그래서 건축은 제대로 읽어야 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건축을 접한다면 제대로 된 건축행위를 하게 된다.

제주학교컨설팅연구회 건축팀장을 맡은 권정우 건축가가 부설초 아이들이랑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학교컨설팅연구회 건축팀장을 맡은 권정우 건축가가 부설초 아이들이랑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디어제주

서두가 좀 길었지만 건축행위로 만들어지는 공간은 어릴 때 접하게 해주는 게 맞다. 틀에 짜인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공간을 만드는 활동은 무척 중요하다. 제주부설초등학교가 바로 그런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부설초는 건물과 건물이 만드는 사이공간을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하고 있다. 먼저 아이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건축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학교컨설팅연구회의 건축팀장을 맡고 있는 권정우 건축가(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와 부설초 5학년 담임들이 전면에 나섰다.

8월 30일. 부설초 5학년 3개반 아이들이 모두 체육관에 모였다. 아이들은 7개조로 나눴다. 아이들은 커다란 도면을 받았다. 건축 도면이다. 학교 시설을 나타낸 평면도였다. 도면은 아이들에겐 낯선 경험이다. 다음엔 미션이 주어졌다. 학교 공간을 찾아서 그 공간을 재거나, 혹은 새롭게 만들 구상을 하라는 주문이다. 힌트는 단 하나. 사진이었다. 사진에 담긴 공간을 찾아내고,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공간. 늘 곁에 있다. 우리는 공간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바꿔서는 안되고, 바꿀 수도 없다고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인식이 문제가 된다. 공간은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부설초가 그 작업을 하고 있다. 미션을 받은 학생들은 어떨까.

1조에겐 중앙현관의 크기를 재는 일이 주어졌다. 길이를 잴 도구가 없다. 단지 A4 용지의 대략적인 크기만 알 뿐이다. A4 용지의 대략적인 길이는 가로 20㎝, 세로 30㎝였다. 아이들은 해냈다. 바닥에 깔린 타일의 크기를 알아냈고, 타일 하나의 길이를 통해 중앙현관의 전체적인 면적도 밝혀냈다. 아이들이 밝혀낸 중앙현관 면적은 40만5000㎠였다.

복도 길이를 몸으로 재보는 아이들. 미디어제주
복도 길이를 몸으로 재보는 아이들. ⓒ미디어제주
하늘정원을 어떻게 꾸며볼지 고민을 한 흔적들. 미디어제주
하늘정원을 어떻게 꾸며볼지 고민을 한 흔적들. ⓒ미디어제주
부설초 아이들이 공간을 탐구한 뒤 발표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부설초 아이들이 공간을 탐구한 뒤 발표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부설초 아이들이 운동장 크기를 어떻게 잴지 논의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부설초 아이들이 운동장 크기를 어떻게 잴지 논의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2조는 부설초에 있는 하늘정원을 새롭게 꾸미는 과제였다. 편히 쉬는 장소로, 혹은 동물도 키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구상들이 나왔다. 2조의 과제를 발표할 때는 3층에 위치한 하늘정원에서 밑으로 바로 내려가는 미끄럼틀을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 순간 아이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6조 아이들은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은가보다. 팀 이름을 ‘아키피플’로 정했다. 이름 그대로 ‘건축하는 사람들’이다. 6조는 1학년과 2학년 구역을 탐색한 뒤 길이를 재고, 복도 벽을 바꾸는 미션을 수행했다. ‘어디로든’이라는 문을 만드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 문을 열면 아무 곳이나, 어디로든 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아이들이 있었다. 공간을 구상하고, 공간의 크기를 재보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먼저 5학년 1반 최규리 학생의 반응이다. 최규리 학생은 중앙현관을 재는 활동에 참여했다.

“내가 직접 참여해서 만든다는 게 좋아요. 완성되면 성취감이 있겠죠. 타일바닥을 자도 없이 잰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하늘정원을 새롭게 꾸미는 작업을 했던 아이도 만났다. 5학년 2반 김가영 학생이다.

“놀 수 있고,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내년에 그런 공간이 만들어지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놀러 오고 싶어요.”

아이들은 공간을 알아가고 있다. 건축수업이 내건 목표에 차근차근 다가가고 있다. 부설초 아이들의 건축수업은 다음주에도 계속된다. 아이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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