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청소년이 만든 광복절 행사, "815를 추며, 815를 기억해"
청소년이 만든 광복절 행사, "815를 추며, 815를 기억해"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8.15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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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청소년 중심의 8.15 광복절 기념행사, 탐라문화광장서 열리다
기획부터 행사 진행까지 청소년의 손길로 이뤄진 뜻깊은 문화 행사
남녀노소 참여 가능한 체험부스 운영, “광복절의 의미 함께 나눠요”
8월 15일, 탐라문화광장에서 열린 '춤, 8.15를 추다' 행사장 모습. 제주의 청소년들이 '만세'를 외치는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매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고, 다시는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지역은 다르지만, 행사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몇몇 대표자가 단상에 올라 광복절 기념사를 발표하고, 공연팀이 관련 공연을 펼치는 순서다.

물론 이러한 형식의 행사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제주에서 아주 특별한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렸기 때문에. 기존 '어른들'이 중심이 되어 열린 행사와는 사뭇 다른, 이 모범사례를 소개해볼까 한다.

2019년 8월 15일. 3.1운동 100주년임과 동시에 광복 74주년이 되는 날. 제주에서는 그 어느 행사보다 특별한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바로 ‘제주 청소년'이 만든 ‘춤, 8.15를 추다’ 행사다.

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오후 4시, 탐라문화광장은 남녀노소 제주 시민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광복절과 관련된 퀴즈가 한창 진행 중인 탐라문화광장, 아이들의 모습. 손을 들고 정답을 말하려는 모습이다.

이번 행사는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를 비롯해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가온누리, 노랑개비와 어깨동무, 담쟁이협동조합, 보물섬학교, 북초등학교, 청년평화나비 등 다양한 단체가 함께 준비했다.

그리고 이들 중 주축이 된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의 송승호 지부장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제주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열리는 행사예요. 탐라문화광장 행사장을 보시면, ‘독립운동가와 사진찍기’, ‘대형태극기 만들기’, ‘콩폭탄 만들기’, ‘위안부 문제 깨닫기’, ‘손도장 찍기’ 등 많은 체험부스가 있는데요. 기획 단계부터 실제 체험부스 운영까지, 모두 아이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꾸려졌어요.” / 송승호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장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의 송승호 지부장.

송승호 지부장에 의하면, 제주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 열린 광복절 행사는 올해로 2회 째다. 만세를 외치는 플래시몹 등 간단한 퍼포먼스는 수년 간 진행해왔지만, 이렇게 광장 전체를 빌려 학생들이 공연과 체험부스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는 것이다.

“작년에는 규모가 올해처럼 크지 않았어요. 중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된 작년 행사에 비해, 올해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과 가족 단위까지 참여 규모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광장을 찾은 시민의 수도 늘어난 것 같아요. / 송승호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장

이번 행사에서 어른들의 역할은 “아이들을 뒤에서 서포트해주는 것” 정도다. 행사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어른들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작년에 참여한 학생 중 올해도 참여하고 싶다며 지원한 경우가 많아요. 더운 날씨에도 한마디 불평 없이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기특하죠.” / 송승호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장

8월 15일 탐라문화광장에서의 행사 모습. 행사에 참여한 관람객과 청소년들이 직접 손도장을 찍어 대형 태극기를 만들었다.

1945년,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지만 일제의 잔재는 아직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당시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일본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풀어야 할 숙제도 아직 많다.

'위안부'로 불렸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진정성 있는 사과를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날 탐라문화광장 한편에서, '위안부 문제 깨닫기' 체험부스를 운영 중인 제주평화나비 정희수 나비를 만났다.

“제주도, 한라대 맞은편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하나 있어요. 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평화를 염원하는 도민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소녀상이죠. 그런데 2016년, 한 해동안 소녀상은 두 차례의 훼손을 겪어야 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그 원인조차 찾을 수 없었죠. 그래서 제주평화나비는 2016년부터 ‘제주 평화의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하기 위한 1만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어요.” / 제주평화나비 정희수 나비

제주평화나비의 체험부스에는 '평화의 소녀상' 모형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찍은 사진은 즉석 인화해준다. 

제주평화나비 회원들은 서로를 ‘나비’라고 부른다. 나비가 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곁에 서서, 늘 이들과 뜻을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담긴 호칭이다.

정희수 나비는 올해 19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입시 준비가 아닌 다른 활동을 한다는 것. 혹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을까?

“전혀 없었어요. 오늘도 엄마랑 같이 왔는걸요. 엄마는 저기 다른 체험부스에서 행사 체험을 하고 계세요. 저는 2016년, 16살때 부터 제주평화나비 활동을 했는데요. ‘제주 평화의 소녀상 공공조형물 지정 촉구 1만인 서명운동’이 시작되던 때였죠. 1만인 서명이 다 모이면 제주도에 정식으로 요청할 생각이에요. / 제주평화나비 정희수 나비

제주평화나비는 평화의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하고자 2016년부터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펼쳤다.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1만인 서명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 상태라 도민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단다.

또 제주평화나비에게는 장기적인 계획 하나가 있다. 평화의 소녀상을 중심으로 제주에 '평화 광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곳에서 정기적인 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살아있는 역사 공부의 장으로 가꾸는 것이 이들의 가시적인 계획이다. 

보물섬 학교 6학년 권순성 학생이 '독립운동가와 사진찍기' 체험부스를 운영하며, 카메라로 관람객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제주평화나비 부스를 지나 눈을 돌리면, 흥미로운 광경을 만난다. '독립운동가와 사진찍기'라는 이름의 체험부스에서, 한눈에 봐도 앳되어 보이는 학생이 카메라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보물섬 학교’에서 온 권순성 학생이다.

인터뷰 요청에 잠시 머뭇거리며 쑥스러워하던 권순성 학생. “카메라 다루는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친근하게 물으니 어색한 모습도 잠시, 유창하게 자신의 임무(?)를 설명한다.

“저는 보물섬 학교 6학년 권순성 입니다. 학교에서 사진 찍는 법을 배워서 체험 부스를 운영 중이에요. 우리 부스에 방문하신 분들의 사진을 찍어드리는데요. 김구,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분들의 모습을 프린트한 모형과 함께 찍어드려요. 관람객이 직접 존경하는 독립운동가를 선택하면, 제가 사진을 찍어드리는 거예요. 찍은 사진은 현장에서 바로 인화해서 드린답니다.” / 보물섬 학교 6학년 권순성 학생

보물섬 학교 6학년 권순성 학생은 학교에서 8.15 광복에 대한 내용을 배우며, 해설사 교육 및 카메라 다루기, 태극기 그리기 등의 교육을 받았다. 

그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 바로 ‘통일’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이뤘으니, 이제 다음을 이룰 차례. 바로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열세 살 학생에게, 친일파 청산 문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을까?

“친일파에 대해 계속 그대로 둘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한뜻으로 설득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친일파 후손들과도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 같아요.” / 보물섬 학교 6학년 권순성 학생

탐라문화광장에서 공연 중인 가온누리의 모습.

오후 5시경이 되자 탐라문화광장 중앙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며, 이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이날 공연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친구들 응원을 위해 방문했다는 제주대학교 신지은(21) 학생을 만났다.

신지은 학생은 탐라문화광장에서 난타 공연을 펼친 청소년 동아리, '가온누리'의 멤버다.

“저는 가온누리가 탄생했던 5~6년 전부터 활동한 ‘초창기 결성 멤버’예요. 당시에는 청소년 신분이었죠. 가온누리는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를 공연을 통해 알리고자 만들어진 청소년 동아리인데요. 지금은 초등학생 2학년부터 대학생까지 멤버로 구성되어 있어요. 청소년 동아리지만, 대학생 멤버가 있는 까닭은, 청소년 멤버가 세월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저처럼요.” / 가온누리 신지은 학생

가온누리는 난타, 부채춤, 국악 등 ‘우리의 소리’를 갖고 공연을 펼친다. 가장 한국적인 소리로, 한국의 역사를 전하는 이들의 공연은 해외에서도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저는 필리핀 공연을 두 번 다녀왔는데요. 필리핀 사람들은 저녁에 굉장히 일찍 잠이 드는 편이래요. 그런데 저희 공연은 늦은 시간 열릴 예정이었어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을 많이 했었죠. 그런데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밤늦은 시간에도 굉장히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아주셨거든요. 그때 공연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때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며, 앞으로도 가온누리는 전 세계를 누비며 공연을 할 거예요. / 가온누리 신지은 학생

8월 15일, 청소년 동아리 가온누리는 탐라문화광장에서의 공연에 앞서, 관덕정에서도 공연을 펼쳤다.

신지은 학생은 유관순 열사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유관순과 같은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면서.

“그 젊은 나이에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다”라고 말하는 신지은 학생.

8월 15일 탐라문화광장에서의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했던 모든 청소년에게 이 말을 돌려주고 싶다.

그 젊은 나이에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다고. 역사를 잊지 않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제주평화나비가 탐라문화광장 중앙에 전시한 조형물 중 일부.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의 태도를 비교하며, 일본의 그릇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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