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자식이라도 낳아둘 걸..."
명절이 더 외로운 독거 노인들
"자식이라도 낳아둘 걸..."
명절이 더 외로운 독거 노인들
  • 한애리 기자
  • 승인 2007.09.22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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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연용점 할머니의 '쓸쓸한 추석'

가을이 주는 넉넉함을 만끽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오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추석이다.

그러나 올 추석이 제주도민들에게 썩 반갑지만은 않다. 추석을 일주일도 안 남긴 지난 16일 제11호 태풍 '나리'가 제주를 휩쓸면서 너무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전 재산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피해민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자식과 손자들에게 괜히 마음의 짐만 실어주는 게 아닌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기쁨을 함께 나눠 두 배가 되게 하고, 슬픔을 나눠 절반이 되게 하는 '상처의 치유책',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음에 위안을 삼는다.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그런지 찾아올 사람도 없고 찾아갈 곳도 없는 이들에게 추석명절은 그저 어제와 같은 '평범한 오늘'이다. 추석이 어제와 같은 '평범한 오늘'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다름아닌 형제, 자매,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이다. 오히려 일가 친척이 모여 차례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이웃집의 '사람사는 소리'가 담너머로 들려올 때쯤에는 평소보다 더 외롭고, 더 쓸쓸하다고 얘기한다.

"추석? 나한테는 평일과 다를 바 없는 날이지. 혼자 밥 챙겨먹고 TV보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또 저물겠지."

21일 제주시자원봉사센터 부설 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소장 김영호) 생활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전태심씨와 제주시 건입동에 살고있는 연용점 할머니(84)를 만났다.

연 할머니는 추석이면 홀홀단신인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난다고 한다. 23살 때 제주에 와서 이제껏 제주에서 살고 있다는 연 할머니는 다 늙고 이제서야 자식없이 살아온  삶을 후회한다.

"제주에 와서 자매지간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던 동생이 하나 있었더랬어. 나도 잘 해주고, 동생도 언니처럼, 어머니처럼 지냈는데 그애가 몇 살 때였더라. 결혼을 한다는 거야. 결혼을 하고 얼마 안 있어서 아기를 낳았는데, 그 핏덩이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더라고. 동생이 그렇게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니까 결혼생각도 안나고 자식 생각은 더더욱 안났어."

연 할머니는 그 동생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눈이 올 때나 혹은 비가 올 때면 그리운 이들이 더 보고 싶어진다는 연 할머니. 연 할머니는 "20살 때부터 충청도 고향에서 술 도매상을 했었는데 6.25전쟁이 나면서 하나 건진 거 없이 제주에 왔다"며 잠깐 과거를 회상했다.

"난 불교에 다니는데 사람은 자고로 공덕을 많이 쌓아야 해. 공짜를 좋아해서도 안되고...건강한 몸뚱이 하나 믿고 열심히 살면서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도와줬지. 한 번은 제주에 여행왔다가 차비가 없어서 돌아가지 못하는 학생에게 차비를 쥐어 보냈더니 지난해까지 꼬박꼬박 편지를 써서 보내왔었어.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참 남모르게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늙고 병들어서 그런지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네."

연 할머니는 무엇을 바라고 베푼 것은 아니지만 외로움이 사무칠 때는 젊은 시절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도 지난 제11호 태풍 '나비'가 제주를 강타하던 그날이 가장 고독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어찌나 비가 오던지, 윗층 젊은 사람들은 나와보지도 않고 어떻게 해. 도와 줄 사람도 없고, 혼자 현관 앞 물을 바가지로 계속 퍼냈더니 그 날 저녁엔 사지가 욱신거리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안정제를 먹고서야 잠이 들었지 뭐유."

한 숨을 토해내던 할머니의 마지막 한 마디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의 외로움을 전부 말해주는 듯 했다.

"늙어서 이렇게 외로울 줄 알았으면 온전치 못한 자식이라도 하나 낳아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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