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예술가의 자생력 기르는 지원사업, 고민해주세요”
“예술가의 자생력 기르는 지원사업, 고민해주세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6.13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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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로 ‘오늘의 이야기’ 전하는 밴드 ‘클랜타몽’
“문화의 질적인 성장 위해, 예술가도 자생력 길러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영화 ‘어벤져스’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아마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히어로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벤져스처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예술인이 모여 만든 밴드가 있다. ‘클랜타몽(CLAN.TAMONG)’이다.

클랜타몽은 지난 6월 12일,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의 쇼케이스 무대에 올라 큰 환호성을 받았다. 판소리, 전자음, 타악기, 피리와 태평소, 한국무용.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무대에서 펼쳐진 날이다.

6월 12일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쇼케이스 무대에 오른 클랜타몽. 사진은 공연의 서막 부분이다.

공연의 시작과 함께 암전된 실내 공연장. 어두운 무대 위를 관객들이 바라보는 상황이다.

삐---------------.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모든 방송이 종료된 새벽 시간,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전자음 소리같다.

음향 기기에 문제가 생긴걸까? 관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귀를 울리는 이 소리는 몇 초 간 지속된다.

딸랑, 딸랑.

종소리가 들린다. 듣기 좋은 경쾌한 종소리가 아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상여를 매고 갈 때 들을 수 있는 서글픈 소리다.

곧 여성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판소리 같기도, 곡소리 같기도 하다.

종소리는 점점 커진다. 관객석에서 무대로,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걸어 들어오고 있다. 여자의 손에는 종이 들려 있다. 종을 흔들며, 여자는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다. 한껏 괴로움을 표현하던 여자의 몸짓은 공연 내내 이어진다.

이제 자연스럽게 피리와 태평소, 전자음 소리가 덧붙여진다. 둥, 둥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도 들린다.

위 내용은 클랜타몽의 공연 서막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다소 난해한 느낌이 드는 이 공연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미상관법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결말을 먼저 보여준 뒤, 발단-전개-위기-절정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클랜타몽의 이수인. 한국의 소리로 현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인이다.

곡의 맨 처음 들리는 종소리는 죽음의 소리다. 관객은 공연의 서막부터 이야기의 결말을 알게 된다.

종을 흔들며 등장한 여자가 무대에 오르면,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과거에는 생전에 겪은 고뇌와 고통이 존재한다.

곡은 관객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다. 하지만 왠지 알 것 같다. 이것은 인간의 괴로움이다. 자신의 힘으로 도무지 바꿀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현대인의 표상.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내던지는 것으로 자유를 얻게 된다. 아이러니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드는 공연이다.

공연을 선보인 밴드 ‘클랜타몽’의 평균 나이는 30.5세. 상당히 젊은 밴드라 할 수 있다.

밴드는 총 네 명의 예술가로 구성된다. 팀의 리더이자 타악·소리를 맡고 있는 최재학, 소리(노래)·키보드 담당 이수인, 한국무용을 하는 변상아, 작곡을 하고 피리·생황·태평소를 연주하는 박준형.

이 네 명이 뭉칠 수 있었던 건, 리더 최재학의 ‘보물찾기’ 덕이다.

클랜타몽 리더 최재학.

“팀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보물찾기하듯 팀원을 찾아다녔어요. 인터넷에서 멤버들의 공연 영상을 찾아 연락처를 수소문했죠. 그리고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찾아가 함께하자고 말했답니다.” / 클랜타몽 리더 최재학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섭외(?)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는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하는 사연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처음에 유비의 제안을 거절했던 제갈공명과는 달리, 클랜타몽의 멤버들은 모두 흔쾌히 최재학의 제안을 수락했다.

“신생 팀의 경우,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해체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장르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밴드라면 더 그렇죠. 새로운 장르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지속성을 가지기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요, 클랜타몽은 벌써 올해로 3년 차예요.” / 클랜타몽 리더 최재학

결성된 지 3년이 된 밴드. 3년이란 시간이 그리 긴 세월은 아니지만, 신생 밴드가 3년째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가진다.

클랜타몽은 올해 8월경 이탈리아 투어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작년에는 약 한 달가량의 프랑스 투어를 마쳤다. 2017년 7월에는 프랑스 남부 주요 도시에서 8번의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처럼 승승장구, ‘잘 나가는 밴드’로 보이는 클랜타몽. 그들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밴드지만, 장르가 다 달라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닌, ‘낯설다’라는 감정에서 파생된 어려움이죠. 그런데요, ‘낯섦’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함’으로 변하기 마련이잖아요. 우리도 그랬어요.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융화되어 지금의 클랜타몽이 되었습니다.” / 클랜타몽 무용수 변상아

의견 공유를 위해 항상 회의를 많이 한다는 클랜타몽. 문득 궁금해졌다. 모두 전공이 다른 네 사람이 하나의 곡을 만드는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저희는 각자 곡에 참여하는 비율이 모두 비슷해요. 예를 들면, 제가 작곡한 기본 멜로디에 수인이가 노래 음을 덧붙이죠. 각자 맡은 연주, 춤을 스스로 고민하고, 만들어낸 후 합주를 해봐요. 이런 작업이 반복되면 하나의 곡이 탄생하게 되는 거죠.” / 클랜타몽 작곡가 박준형

상당히 민주적인(?) 방법으로 곡 작업을 한다는 클랜타몽. 리더 최재학은 이 클랜타몽에 모든 것을 걸었단다.

클랜타몽 공연의 한 장면. 연주에 맞춰 변상아 무용수가 춤을 추고 있다.

“예술인의 공통적인 고민 중 하나가 ‘생계유지’의 문제예요. 예술가가 양질의 작품을 개발하고, 발표하려면 안정적인 창작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잖아요. 정부의 다양한 지원사업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죠. 저희도 그러한 사업에 지원하기도 해요. 그런데 지원사업에만 기대는 것은 결코 생계 문제의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결국 중요한 건, 예술인들도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 클랜타몽 리더 최재학

최재학은 2016년, 기획사를 하나 차렸다. 전통예술공연을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 ‘더원아트코리아’다. 클랜타몽의 자생력, 그리고 전통예술공연계의 발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기획사를 차리려 대학원에서 공연기획을 배우기도 했고, 이는 클랜타몽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졌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공모 사업의 경우, 목적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요. A라는 목적의 사업이니, 예술가는 A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죠.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해요.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의 종류, 범위가 제한되기 때문에. 예술가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기가 힘들어요.” / 클랜타몽 리더 최재학

그는 예술 관련 학과를 졸업한 주변 친구들 사례를 들었다. 주변 예술인들의 꿈이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는, 슬픈 현실 이야기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은 예술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고 했다. 일회성, 단발성의 지원사업은 결코 예술인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현재 클랜타인의 구성원들은 각자 소속사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 소속사는 더원아트코리아다. 매달 일정 수준의 급여를 받기 때문에 이들의 생계는 큰 문제 없이 이어진다. 이는 작품 활동에 전념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최재학은 이러한 사실을 알리며,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지원제도의 문제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지원제도가 쓸데없이 많아요. 주입식 지원이죠. 지원을 다양하게 하는데, 이들 중 정말 예술인에게 필요한 사업은 드문 것 같아요. 예술로 먹고살기 힘들면 예술가 그만두는 편이 나아요. 투잡(Two job, 두 개의 직업)을 갖더라도 예술을 즐기고 싶은, 그런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예술을 해야죠. ‘나는 좀 가난해도, 예술을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술을 해야 전체적인 문화 수준이 높아질 수 있어요.” / 클랜타몽 리더 최재학

최재학은 문화 수준 향상을 위한, 보다 내실 있는 지원사업이 생기기를 바란다. 지원금과 제도의 ‘양’이 늘어난 것처럼, ‘질’적인 향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원사업의 모범 사례로 서울문화재단의 ‘최초 예술 지원사업’을 들었다. 공공지원금 수혜 경력이 없는 39세 이하, 데뷔한 지 10년 이하의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이다.

그는 이처럼 ‘꼭 필요한’ 지원사업을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미 기득권층이 된 예술단체, 예술인이 매번 같은 사업으로 보조금을 받는 형태는 그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랜타몽에서 작곡을 하고 피리·생황·태평소를 연주하는 박준형이 화면이 깨진 노트북을 들고있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지만, 사실 마음은 울고 있단다. 
그는 제주에서의 공연 전날(11일), 노트북을 잃었다. 높은 곳에 있던 노트북이 떨어지는 사고을 겪은 것.
노트북 안에 모든 데이터가 들어있어 클랜타몽 멤버 전원은 '멘붕(멘탈붕괴)'를 겪었지만, 임시로 가져온 여분의 노트북 덕에 살았다.

대한민국에서 문화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인구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 또한 예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매해 다양한 문화 행사가 이뤄지는데, 제주에서 열리는 축제에 투입되는 세금만 올해 89억원가량이다.

문화예술에 지원되는 금액, 예술 행사의 수, 규모 등 양적인 성장은 이뤄진 오늘날. 과연 질적인 성장도 함께 이뤄졌을까?

은갈치, 고사리, 벚꽃 등 ‘축제’의 이름을 달고 보조금을 받는 제주의 행사들. 막상 현장에 가보면 먹거리 부스와 장터로 이뤄진 비슷한 풍경인 경우가 많다.

최재학은 이러한 사실에 공감하며,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사업이 늘어난 사실은 기쁘지만 세금 낭비가 되는 단발성 행사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 꿈이요? 문화를 즐기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프랑스 가서 느낀 건데, 공연의 좋고 나쁨을 평하기 전에 모두 진심으로 즐기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공연을 보는 문화가 ‘평가’가 아닌, ‘즐김’의 형태로 바뀐다면 좋을 것 같아요.” / 클랜타몽 리더 최재학

(왼쪽부터) 클랜타몽의 변상아, 박준형, 이수인, 최재학.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노래하는 이수인은 “천천히 가더라도 이 멤버 모두가 오래오래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소리와 춤, 악기, 기계음이 모여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클랜타몽의 도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면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로 제주를 찾았던 클랜타몽. 이들의 공연을 제주에서 관람할 수 있을 날을 기대하며. 최재학 씨의 말처럼, 세금을 집행하는 관계자들은 예술인의 자생력을 위한 지원사업의 방향을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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