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독립영화가 우리에게 준 느낌들
독립영화가 우리에게 준 느낌들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06.0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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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귀포시 서홍동 주민 김상범씨

얼마 전, 서귀포에서 1시간 넘은 거리의 제주시 메가박스를 찾았어요. 사단법인 제주독립영화제가 주관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상작 앙코르 상영회라고 해서요. 나흘차 마지막 상영 영화를 관람했죠. 무려 오후 1시부터 6시반까지. 준비해간 편의점 음식들로 허기를 달래가며 주구장창 영화를 봤지요.

1. #올드마린보이/진모영 감독 다큐/ 이남과 이북의 국경 해안에서 막장 머구리 잠수부 생업을 이어가는 탈북 가장과 아들, 아내의 억센 이야기.

=> 탈북자 혹은 이북이탈주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일부 민족민주 계열은 ‘조국을 배신한 뭔가 흠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멀리 두거나, 사회 일반의 시선은 ‘조선족처럼 불쌍하긴 하나 뭔가 음모적일 것 같은 사람들’이라는 인상. 그러나 과연 이런 시선들이 올바른지, 영화를 보고 나서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속 주인공은 공산당원이었음을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등 그걸 후회하는 듯한 모습도 아니었고 이북 정권을 욕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냥 이남 사람들의 배타와 텃세 속에서 아무런 연고도 백도 없는 일가족이 억척스럽게 살아내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과 대화를 담담히 영화는 비추어 줍니다. 무조건적으로 조국의 배신자라고 관심 영역에서 제껴 놓은 사이 그네들이 이남 사회 국정원으로부터 배신당하고 이남 주민들로부터 차별받도록 놔두는 것은 온전한 동포애가 아닐 거라는 반성이 들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2. #안녕_미누/지혜원 감독 다큐/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밴드를 하다가 강제추방당했지만 고국 네팔에서 꿋꿋이 한국과 네팔 사이의 공정무역 활동과 한국행 네팔 예비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이름 미누’라는 인물의 어둡지 않은 이야기.

=> 정권이 바뀌기 전 표적 단속을 통해 미누를 체포하여 강제추방했던 한국 외교부의 모습을 보노라면 영화는, 다소 무거울 수도 있지만 낙천적인 주인공 미누 덕분인지 시종일관 희망과 밝음을 잃지 않습니다. 영화 말미에 강제추방자 입국 금지 때문에 재회하지 못했던 미누가 속한 다국적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 크랙다운(=강제추방을 멈추라는 뜻의 밴드명)’이 미누 형이 있는 네팔까지 와서 네팔 시민들 앞에서 열광적인 공연을 하는 영화 후반부의 모습.

정권이 바뀌었어도 과연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크게 개선됐는지 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이주노동자를 막 대하는, 갑질재벌 모방하는 악덕기업주들은 과연 제대로 처벌받았나요? 정권보다 힘센 외교부 관료들의 이주노동자 사냥은 줄어들었나요?

떼인 월급 받게 해달라는 노래를 부르고 목소리를 내는 게 탄압의 대상이 되고 있다니 이게 정상적인 선진국의 모습입니까?

영화는 불안정한 고용허가제 때문에 강제추방 당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이자 문화활동가의 과거 정권 시절 사연을 다룹니다만 문재인 정부는 왜 이주노동자들을 더 통크게 포용하고 있지 못한지, 여전히 강제추방을 위한 사냥감으로만 바라보고 있는지, 전면적인 노동허가제로 왜 나아가고 있지 못한지 참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하기에, 영화를 보고 나서 저라도 미누를 비롯해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사과하게 되더군요, 앞서 본 영화의 이북이탈주민들에게도 한국 사회의 천대에 대하여 역시 한국인으로서 사과하게 됩니다. 독립영화를 계속 본다는 것은, 어쩌면 계속 한국 사회의 시민으로서 사과해야 할 게 늘어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충분한 사회에서 시민 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 분들과 엘리베이터를 앞에 있었죠. 내려가길 기다리는데 영화 상영을 주관한 분을 만나게 됐어요. 그 분께 “덕분에 영화를 잘 보았다. 영화 속 미누에게 한국인으로서 또 사과하게 된다. 강자에게 받은 불이익과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푸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극장 청소아주머니께서 정말 ‘강자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푼다’는 그 말이 아주 맞다고 따끔하게 일갈해 주시더군요. 나는 오늘 누구에게 또 갑질러가 아니었나 돌아보는 시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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