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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확
  • 승인 2019.05.3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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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14>

#1. 지구인의 모순

어렸을 때는 어른인 척 한다. 어른이 되니 어린 척 한다.

어렸을 때는 나이를 먹고 싶다. 어른이 되니 나이를 거꾸로 먹고 싶다.

어렸을 때는 조숙해 보이고 싶다. 그래서 어른을 따라한다.

어른이 되니 미숙해 보이고 싶다. 그래서 어른임을 가린다.

나이도 어린 데 어른답다는 말은 성인 이하 지구인의 로망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얘기는 말은 중년 이상 지구인의 로망이다.

이렇게 보면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어른이 싫어지는 게 인생처럼 보인다. 풀리지 않는 지구인의 모순일까?

#2. 여한과 여생

나는 이토록 평범한 지구인은 아니다. 나이보다 젊은 생각을 하면서도 나이만큼 값을 할 뿐이다.

흔히 어른들이 하는 말 중, ‘이제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죽으면 억울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지 못한 것도 많고, 하고 있는 것도 많다. 어쩌면 그래서 노인이나 은퇴자들의 ‘여생(餘生)을 보낸다.’라는 말을 흘려듣지 않고, 패배감에 젖어 남은 인생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느낀다.

#3. 중년 이전의 시간

학생을 보자.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하루하루가 다르다. 일주일, 하루가 역동적이다. 수업시간조차 여러 다른 과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만나는 친구도 다양하다. 최대 한 반에 30명, 대학수업은 무려 400명 이상의 사람들과 교류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다르다. 하루하루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여, 변함없는 사람들과 일한다. 농사일도 마찬가지다. 계절마다, 월마다 할 일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직장인과 같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처럼 중년 이전에는 하루가 여러 개로 쪼개져 있고 다양하다. 사람들도 많이 만난다. 그만큼 대화와 상호교류의 시간도 많고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따라서 스트레스는 중년 이전이 이후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어른들의 ‘학생이 무슨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어? 공부만 하면 되지.’라는 말은 적반하장, 아전인수 격이다.

#4. 중년 이후의 시간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한다. 20대는 20㎞로 가고 40대는 40㎞, 60대는 20대의 3배의 속도로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의 삶에서 10가지 사건을 꼽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탄생, 대학입학, 연애, 구직, 군입대, 결혼, 본인의 출산(여자), 자녀의 탄생(남자), 자녀의 결혼, 부모의 죽음, 본인의 죽음을 나열한다. 살펴보면 10가지 중 7가지가 모두 30대 이전에 일어난다. 100세 시대라 가정할 때 70%의 일들이 30대 이전에 끝난다는 말이다.

반면 중년 이후의 삶은 큰 사건들이 많지 않다. 하루하루가 비슷하다. 시간의 흐름을 잊고, 의미부여를 하기 힘들다. 그래서 오늘이 무슨 요일이고 며칠인지조차 헛갈릴 때가 많다.

#5. 아내와 아이의 시간

아이는 자기 전에 엄마에게 아침밥을 주문한다. 그리고 아침에는 그날의 저녁밥을 주문한다. 우리 집은 아침저녁마다 그때그때 다른 레스토랑이 된다. 아이는 식사주문시간과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단다.

내가 약속이 없는 날의 오후 5시. 아내는 어김없이 저녁밥 뭐 해줄까 전화를 한다. 나는 어김없이 안주를 주문한다. 난데없는 술집이 차려진다. 나는 밖에서 술을 잘 먹지 않는다.

아내의 휴대폰에는 맛집, 카페, 방문해야할 국내외 장소, 읽어야할 책들의 목록이 빼곡하다. 우리집은 아내의 체력비축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토일 및 공휴일에는 ‘우리집 레스토랑’을 휴업하고 외식을 한다. 이 때 아내의 맛집과 카페 리스트가 펼쳐진다. 아내는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엄마, 아내를 은퇴한다.

#6. 시간의 상대성

지구인의 모순. 내가 왕년에는? 언제까지 과거만을 반추할 것인가?

여한과 여생. 의미가 있으면 여한이 있고, 여생의 의미가 새롭다.

중년 이전의 시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세상의 몫이다.

중년 이후의 시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아내와 아이의 시간. 이벤트다.

#7. 이벤트

교과서로 공부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시험’을 봐야 한다.

밥만 먹어서는 생계만 유지한다.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한다.

여한이 없어서는 억울하다. ‘여한(餘恨)’을 남겨야 한다.

여생을 보내서는 비참하다. ‘여생(餘生)’을 맞이해야 한다.

하루가 단순하면 지겹다. 하루하루를 비틀어야 한다.

시간이 평온하면 졸립다. 화들짝 이벤트를 넣어야 한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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