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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알고, 주민과 함께하면 '좋은 축제' 된답니다
자연을 알고, 주민과 함께하면 '좋은 축제' 된답니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5.18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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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투입되는 제주의 축제, 현장 진단]
<4> '비양도 북카페'의 모범 사례

-한림읍 주민의 주체적인 참여로 이뤄져
-비양도 생태 자연 이용한 체험 행사 기획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미디어제주>에서는 제주 지역의 축제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 혹은 잘된 사례에 대한 기획기사를 게재 중이다.

이번에는 지난 기사에서 예고했던 대로 '비양도 북카페'의 모범 사례를 소개하겠다.

700만원의 예산으로 일주일 간의 생태 체험 행사를 만든 사람들, 한수풀도서관과 한림읍 지역 주민들이다

# 수십 개 제주의 축제, 막상 가보면 ‘공산품 장터’?

제주에는 축제가 참 많다. 방어축제, 성산일출축제, 들불축제, 벚꽃축제, 유채꽃축제... 대다수가 제주에 주어진 자연 혹은 환경을 주제로 한 축제들이다.

2017년 한국은행 제주본부에서 발간한 ‘제주 관광산업 재도약을 위한 지역의 축제 문화 및 개회 문화 개선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월 말 기준 집계된 제주 지역의 축제 수는 65개다. 일 년 동안 65개의 축제가 열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 축제 중 상당수는 세금을 지원받아 운영한다. 예를 들면, 작년 제주들불축제에는 15억원이 지원됐는데, 올해는 대폭 늘어 38억430만9000원이 보조금 예산으로 잡혔다.

작년 탐라문화제에는 12억원이 보조금으로 지급됐고, 서귀포칠십리축제에는 7억원, 왕벚꽃축제에는 2억9200만원이 지급됐다. 모두 사업비가 억 단위를 초과한, 대형 축제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들 축제는 모두 특정 기관이나 단체의 주도로 열린다는 사실이 문제다. 지역 주민들은 먹거리 장터, 공산품 판매, 공연 등 축제 주최 측이 마련한 판에 참여하는 수동적인 형태로만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인지 축제장을 방문하면, 이곳이 장터인지 축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공산품 혹은 먹거리 판매장’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 판매장이 해당 축제에서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것들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축제장마다 판매 품목은 큰 차이가 없다.

지역에서 축제를 개최하는 이유는 ‘도민들에게 즐거운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함’일 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 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과 논의가 없는 단발성 행사는 지역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매주 토요일 산지천 북수구광장에서 '놀젠놀장' 콘서트가 진행되지만, 공연 때 외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 비양도의 구석구석을 알게 하는 ‘비양도 북카페’

하지만 제주에도 희망은 있다. 바로 마을 사람들과 마을도서관이 합심해 만든 작은 지역 행사, ‘제11회 비양도 북카페’의 사례다.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약 5분가량 들어가면 비양도를 만난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북카페가 열리는 ‘비양리새마을 작은도서관’이다.

비양도에 입도한 이들을 대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이재훈 해설사.

“비양도를 흔히 ‘천년의 섬’이라고 하지만, 지질학적 나이는 2만7000년이랍니다. 지하 용암굴에서만 만날 수 있는 형상인 용암굴뚝을 지상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섬이죠. 그 모습이 마치 아기를 업었다 하여 ‘아기 업은 돌’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과거 용암굴뚝은 비양도에 여러 개가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만 남았죠. 태풍이나 거센 바람에 의해 잘려나간 건데요. 용암굴뚝은 그 이름처럼 돌의 내부가 텅 비어있어 쉽게 쓰러질 수 있거든요. 여러분은 비양도에 하나 남은 용암굴뚝 앞에서 오늘 꼭, 사진을 찍고 가세요. 언젠가 하나 남은 용암굴뚝이 쓰러졌을 때, 여러분의 사진이 소중한 사료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작년 10월부터 비양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재훈 해설사의 말이다. 비양도를 찾은 관광객들은 배에서 내리면서부터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이곳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양도에 대한 이해는 이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호기심이 충족되면 곧 애정이 된다.

이재훈 해설사가 언급한 비양도의 '용암굴뚝'. 돌의 내부는 텅 비어 있다.

5분가량 핵심만을 짚은 해설사의 설명이 끝나면, 관람객의 시선은 자연스레 북카페 현수막으로 향한다.

한수풀도서관은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비양도에서 북카페 행사를 진행 중이다. 행사가 열리는 곳은 선착장이 있는 건물의 2층이다.

비양도 북카페가 열리는 '비양리새마을 작은도서관'.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의 2층이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수풀도서관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소속으로, 한림읍에 위치한 소박한 도서관이다. 김대성 관장과 두 명의 사서, 경비 담당, 청소 담당 등을 포함해 총 직원이 10명인, 그리 크지 않은 규모다.

그리고 북카페의 행사 내용을 살피면, 모두 비양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비양도에서 직접 꾸민 엽서로 친구, 가족에게 엽서를 보내는 체험, 제주 현무암 팔찌 만들기 체험, 비양도에서 채취한 식물로 전을 부쳐 먹는 체험, 과일청 담그기 체험 등이다.

현무암 팔찌 만들기를 체험 중인 아이의 모습.

 

# 비양도의 생태 자연 이용한 체험 행사

올해 11회를 맞이하는 비양도 북카페의 체험 행사는 매년 조금씩 달라진다. 항상 똑같은 내용으로 열리는 도내 다른 축제들과는 확연히 다른, 주최 측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행사 기획이요? 대략적인 구성은 미리 정해놓고, 세부 프로그램 준비는 한달 전부터 했어요. 올해는 어떤 특별한 행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 마을 이장님께서 비양도의 5월은 오디와 깻잎이 많이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비양도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직접 오디를 따서 오디청을 만들고, 깻잎을 따서 깻잎전을 만들어보는 체험 행사를 준비했답니다.” -한수풀도서관 진승미 사서

진승미 사서의 말처럼 당초 행사의 기획은 ‘오디청 만들기’와 ‘깻잎전 만들기’였다.

비양도 방문객들은 대체로 비양도를 한 바퀴 걸으며 관광하는 경우가 많다. 10리가 조금 안 되는, 약 3.5km의 거리를 걷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 내외.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이 아니라, 놀멍쉬멍 걸으며 비양도의 자랑인 오디와 깻잎을 따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을 한다면 비양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커질 거란 이유에서 기획된 행사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어요. 막상 행사 날이 되니, 오디열매가 설익어서 청을 담그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깻잎도 더 있어야 채취할 수 있다고 하고요. 지금은 아직 덜 자라서 크기가 너무 작거든요. 그래서 기획에 조금 변화를 줬습니다. 이곳에 유명한 자연 먹거리가 또 있는데요, 바로 ‘번행초’예요. 번행초는 해변가 모래에 나는 식물인데, 해열, 해독 기능이 있어서 위염, 위암에 매우 좋다고 합니다. 이 번행초를 따오면 전을 부쳐주는 체험 행사로 내용을 바꿨어요. 오디청 담그기는 한림 딸기와 레몬을 이용한 과일청 만들기로 대체했고요.” -한수풀도서관 진승미 사서

자연을 소재로 한 행사의 공통점은 이처럼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한수풀도서관이 변화를 준 ‘번행초 전’은 오히려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체험으로 이어졌다.

한수풀도서관 홍정희 회원이 번행초전을 만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비양도의 번행초 모습.

대구에서 캠핑카를 가져와 제주 여행 중이라는 어느 대가족은 한수풀도서관 책사랑동호회의 홍정희 회원이 만든 번행초 전을 시식하며 연신 감탄한다. 번행초 전은 향긋한 내음과 특유의 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데, 돌나물과 시금치가 만나 탄생한 듯한 매력적인 맛이다.

기자 역시 번행초의 맛에 반해 비양도를 한 바퀴 돌며 이를 채취했는데, 말 그대로 ‘지천으로 널린 것’이 번행초였다. 번행초를 따는 기자에게 지나가던 관광객이 묻는다. 처음 보는 풀인데, 먹을 수 있냐고.

기자는 말한다. 해변에 나는 ‘번행초’인데, 위에 좋다더라, 비양도에 많고 제주도 곳곳에도 있다 하니 기억했다가 꼭 한번 채취해보시라고.

‘비양도 책축제’ 덕에 도시 사람에게 이름 모를 풀이었을 번행초가 빛을 보고 있었다.

 

# 700만원으로 일주일 생태 축제 만든 '한림읍 사람들'

비양도 북카페를 진행한 한수풀도서관 사람들. 도서관 직원과 동호회 회원들이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행사가 모두 한수풀도서관의 ‘책사랑 동호회’ 회원들 힘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행사를 진행하려면, 이를 도울 요원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안내하는 사람들이 각각의 체험마다 있어야 원활한 행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제주에서 열리는 대형 축제에서는 일일 요원, 혹은 아르바이트 요원을 뽑는다. 주최 측보다 축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일일 요원들은 행사 진행에 미숙할 수밖에 없다. 행사에 대한 애정도 주최 측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로 20~30대 청년들이 용돈 벌이를 위해 일일 요원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양도 북카페’는 다르다. 행사 진행 요원인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책사랑 동호회’ 사람들이다.

“책사랑 동호회는 한림읍 주민이 만드는 도서관이에요. 회원은 약 30여명이 있는데, 3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도 매우 다양한 편이죠. 자랑스러운 점은 이 모든 회원들 중 유령회원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한수풀도서관 책사랑 동호회 김란숙 회원

책사랑 동호회의 회원들은 모두 한림읍 주민들이거나, 한림읍 주민이었을 때 가입한 사람들이다. 회원을 받을 때, 특별한 자격요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한림읍 주민인 사람만 활동하기를 권장한다.

“책사랑 동호회의 정기 모임은 매월 1회인데요, 한 달 동안 읽은 책을 가지고 토론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해요. 그리고 정기 모임 외에도 한수풀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라면, 동호회 사람들이 꼭 참여하려 하고 있어요. 이번 행사도 동호회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행사라고 할 수 있죠.” -한수풀도서관 책사랑 동호회 홍정희 회원

‘비양도 북카페’의 현장 반응은 뜨거웠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16일은 목요일, 평일이었지만 비양도를 찾은 관람객 중 대부분이 이곳을 들러 체험을 즐겼다.

작은 공간에서 현무암 팔찌 만들기, 번행초 전 만들기, 과일청 만들기 세 개의 체험이 동시에 진행됐음에도 체험 내용이 겹치지 않아 이를 모두 즐기고 간 이들이 많다.

서울 출신, 제주를 여행 중이라는 두 부부는 '비양도 북카페'의 모든 체험 행사를 경험하고 비양도를 나섰다.

작지만 풍성하고 알찬 체험으로 ‘지역 축제’의 본보기를 보여준 비양도 북카페.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예산은 얼마나 들었을까?

“이번 비양도 북카페에 들어간 예산은 약 700만원가량 이에요. 거의 재료 구매비로 사용됐죠. 많지 않은 예산으로 일주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이유는 도서관 회원들의 도움이 커요. 자원봉사로 기꺼이 비양도까지 와서 도움을 주시니까 정말 감사하죠.” -한수풀도서관 진승미 사서

1억원 예산이 들어간 고사리 축제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한수풀도서관은 700만원으로 일주일 동안 열리는 생태 체험 행사를 개최했다.

이는 진승미 사서가 말했듯 도서관 회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애정을 가진 회원들이 스스로 행사를 만들어갔기 때문에 적은 예산으로 양질의 행사가 탄생한 것이다.

 

# 비양도 생태 파악한 기획 → 주민과 함께한 행사 → 성공적

비양도 북카페에서 체험할 수 있는 엽서 만들기. 준비된 도장으로 예쁜 엽서를 만들 수 있다.

비양도는 한림읍에 속한 섬이다. 그래서 타 지역보다 한림읍 사람들이 비양도를 더 잘 안다.

진승미 사서는 프로그램 기획을 하기 전, 비양도 이장과 주민들을 만나 이곳에 대해 배웠다. 비양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지역에 최적화된 행사 기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곧, 비양도의 자연을 활용한 체험 행사로 이어졌다.

행사 개최 장소로 '비양리새마을 작은도서관'이 선택된 것도 신의 한수였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선착장에 위치한 이곳 체험장을 들르게 된다.

비양도 북카페를 방문한 사람들은 안다. 이번 체험 행사가 결코 화려하거나 엄청난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동네 삼춘들이 번행초 전을 부치고, 과일청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현무암 팔찌도 만들어보는, 그야말로 소담한 행사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비결이 뭘까.

세금을 받아 축제를 기획하는 이들 모두가 고민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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