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허락하지 않은 성산일출봉의 일출
귀신도 허락하지 않은 성산일출봉의 일출
  • 황병욱
  • 승인 2019.05.17 11: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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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저, 별빛 제주 버스 여행일기]<1>

오늘도 여전히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명사인 “봄” 사전을 뒤져보면 겨울과 여름 사이로 3~5월, 입춘부터 입하까지를 이른다고 말한다. 오늘 따라 그 봄은 정신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찬바람에 얼굴을 할퀴는가 하면 따스한 햇살을 내려 보듬어 주기도 했다. 그런 봄을 마주해 제주에서 가장 많이 갔던 곳을 말해 보라면 단연코 “성산일출봉”일 것이다. 너무 잘 알려져 있어 이름만 말해도 “아~ 거기”라며 떠올려지는 성산일출봉은 항상 마주하여도 안겨주는 것은 편안한 미소뿐이다.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201번, 211번, 212번)를 타고 1시간 넘게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제주의 풍경은 마치 포근한 엄마의 품같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시간은 훌쩍 지나고 목적지인 성산일출봉 정류장. 사람들이 많은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한적해 보이는 모습에 황량했다.

지난 1월 새해를 맞아 성산일출봉 일대에서 축제는 4일 동안 열렸고, 축제의 마지막 날 밤은 1월 1일의 떠오르는 태양을 찍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눈을 뜬 채로 밤을 꼴딱 넘겼다. 그러나 떠오르는 태양처럼 열정도 활활 타올랐지만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까만 먹구름은 하늘을 삼키고 태양의 실오라기 하나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악몽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1월 1일의 일출을 보기란 귀신을 마주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보여줄 듯 말 듯 한 그 모습이 가슴 조이게 성산일출봉을 찾게 되는 매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길을 따라 뚜벅뚜벅, 허전했던 성산일출봉 정류장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주차장에서는 봇물 터지듯 손님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모습에 괜한 걱정을 했나 싶었다. 북적이는 장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있어 이 많은 사람은 나에게 득일까. 독일까. 잠시 생각에 머물렀다. 여하튼 성산일출봉의 정상으로 가는 넓은 돌길이 길을 열었고 주변에서 쑥덕쑥덕 수다를 떨던 말든 마음은 신기하게도 평온해져 왔다. 나무가 있고 새들이 노래를 했다. 그럭저럭 완만한 길은 누워서 떡 먹는 일보다 쉬웠다. 그것도 잠시 성산일출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고 가파른 돌계단이 “오를 것인가 말 것인가”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 숨은 오를수록 턱밑까지 차오르고 삐질삐질 땀은 몸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환청 일지 모르지만 귓가엔 아리따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누굴까? 땀도 삐질삐질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마주하기 힘들다는 귀신인 것은 아니겠지. 소름이 끼쳤다. 다행히 지나가던 연인들의 조잘조잘되는 수다였고 가파른 계단이 나에게 주는 환청으로 끝났다. 중간지점쯤일까. 바위 하나가 정상을 향해 바라보는 듯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 바위를 성산 주민들은 “등경돌” 또는 “징경돌”이라고 부르며 지나갈 때마다 4번의 인사를 하는 풍습을 가졌던

만큼 수호신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일까. 강함의 기운이 풍겨져 나왔고 영화 “고질라”의 힘센 모양을 닮은 것 같았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돌계단을 오르며 숨이 껄덕껄덕 할 때쯤 쉼터가 나타났다. 탁 트인 전경에 입이 벌어졌다. 오른쪽으로는 소가 누운 형태를 닮았다는 우도가 왼쪽으로는 반짝반짝 빛나는 광치기 해변의 모습이 눈동자에 담기었다.

정상에 도착.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빼빼 마른 다리에게 자리를 내어줬다. 힘들게 올라온 보상이라도 받는 기분이다. 동쪽 제일 끝자락에 위치한 180m 높이의 성산일출봉은 약 5천 년 전 해안가 얕은 바다에서 분출한 화산으로 모래가 쌓여 굳어진 것처럼 보여 물이 고이지 않는다. 오름의 일종으로 다른 오름에 비해 분화구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분화구의 주변으로 99개의 봉우리가 빙 둘러싸여 있는데 왕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지금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지만 만약에 99개가 봉우리가 아닌 100개였다면 왕관의 모습이 아닌 왕이 되어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다. 성산일출봉의 분화구는 한라산의 백록담보다 직경이 600m로 10m가 더 길고 길이는 1.7km로 같다. 비슷한 모습에 한라산의 축소판이라 볼 수도 있다. 성산일출봉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더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끝없는 사랑을 받는 그런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 왕관을 쓴 성산일출봉 귀신도 볼 수 없는 태양의 떠오름을 언젠가 이곳에서 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산을 길에 오른다. 짧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성산일출봉은 인생의 길과 평행선에 놓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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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구리 2019-05-17 14:48:00
성산일출봉 그냥 올라갔다 오기만 했는데 ... 99개의 봉우리가 있다니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