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응시
우산응시
  • 홍기확
  • 승인 2019.05.1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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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12>

사자성어(四字成語) 같은 제목이지만, 우산을 바라본다. 우산응시(雨傘凝視)

손에 들거나 잡고 다니는 모든 것들을 잘 잃어버린다. 단, 집사람과 아이만 빼고. 집사람과 아이는 지능과 생명이 있어 잃어버려도 집에 잘 돌아오곤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개, 말, 코끼리, 말미잘, 삼엽충, 미토콘드리아 등 어떤 생명체도 내 손 안에 들어오면 문제가 생긴다. 코끼리는 남극에서 잃어버리고(의외로 매머드의 부활을 일으킬 수도 있다), 말은 아프리카에서 잃어버려 얼룩말 무리에서 생활하게 만들 수도 있다.(‘미운 오리 새끼’와 비슷한 ‘미운 말 새끼’ 혹은 ‘미운 망아지’라는 동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생명이 없는 것은 더 자주 잃어버린다. 특히나 우산같이 익숙지 않은 휴대물품은 열에 아홉 번은 잃어버린다.

그래서 노력했다. 각고의 노력과 무수한 시도를 했다.

우산을 예로 들어본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세 가지 방법을 차례로 시도했다.

첫 번째 방법. 비가 오지 않기를 비나이다.

세상은 확률 싸움이다. 비가 자주 오지 않으면 우산을 잃어버릴 확률도 적다. 이 방법은 고등학교 때부터 포기했다. 자연을 숭배하며 기우제를 지내고, 동식물을 경외하는 토테미즘(Totemism)이 이른바 원시적 종교라는 것을 국사교과서에서 알아버린 이후다. 현대인으로써 자존심이 있지!

두 번째 방법. 비가 와도 우산을 가져가지 않는다.

차량을 이용하여 이동하면서 최대한 비를 맞지 않고, 맞더라도 뛰어다닌다. 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면서 쓴 방법인데, 위험부담이 꽤나 있다. 경쟁이 센 탓이다. 대부분의 차량운전자들이 비가 오면 이 전략을 썼다. 대한민국 차량보유 대수도 매년 증가했다. 결국 주차하는 곳이 멀어 자주 비에 흠뻑 젖는 경험을 한 후 포기했다.

그러나 마침내 깊은 사유(思惟)와 많은 독서(?!)를 통해 최후의 합리적인 방안을 개발했다. 그리고 3년 전부터 흐뭇하게 활용하고 있다.

두둥. 마지막 방법이다.

우산을 꼭 써야만 하는 10㎜ 이상 강수일수(공사작업 불능기준)는 23일(1993~2012년 평균)이다. 나는 열에 아홉 번 우산을 잃어버리니 일 년에 20개 정도는 우산을 분실한다는 얘기다.

우산의 가격은 보통 만원이다. 1년에 20개를 잃어버리니 20만원의 손실을 입는다. 하지만 문제는 더 있다. 내 아이도 마찬가지다. 가져간 우산을 가져오지 않는다. 즉, 우리 가족은 우산 구입에 일 년에 40만원을 소비 한다.

여신(女神)인 아내는 우산을 분실하지 않는다. 아니 생로병사희노애락인생만사에 문제가 없다. 말이 가족(家族)이지, 여신인 아내는 별도다. 나약한 인간 둘을 키우는 천상의 존재다. 우산을 잃어버리고 오는 우아한 형제(?)들의 귀환을 넉넉한 눈 흘김과 서툰 웃음으로 저격할 뿐이다.

하지만 비용은 이것뿐이 아니다. 우산을 잃어버리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왜 이러나 자괴감도 든다. 나아가 ‘나 너무 인생을 대충 사는 건 아닐까?’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수없이 던져진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싸구려 비닐우산을 100개 샀다. 한 개에 2,000원. 총 20만원이다. 완전 이득이다. 이유는 아래에 있다.

먼저 심적으로 편안하다. 우산은 잃어버리면 된다. 그래 봤자 2,000원이고, 우산을 주운 사람에게 기부한다는 기쁨도 얻는다.

다음으로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우산 구입 후 우리 형제(!)는 지극히 평균적으로 일 년에 40개를 잃어버렸고, 2.5년간 100개를 모두 잃어버렸다. 하지만 잃어버리는데 2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기존에는 일 년간 우산구입에 40만원을 썼다. 2.5년이면 100만 원가량 되는 큰돈이다. 2.5년간 우리 형제는 무려 80만원을 번 것이다. 갑자기 드는 뭉클한 형제애는 무엇인가. 해냈다는 뿌듯함?

우산 100개를 모두 잃어버린 후, 다시 우산 50개를 흔쾌히 주문했다. 아! 이렇게 마음 편한 인생으로 바뀔 줄이야!

비오는 날에는 우산을 잃어버릴까 하는 걱정으로 10㎜이상 비가 오는 23일이 불안하고 불행했다. 비만 오면 짜증이 나고, 신경질적으로 변했었고 가족들과 말다툼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부하는 마음을 담아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지경까지 왔다. 비가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365일 중의 하루일 뿐!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우산을 응시한다.

우산을 잃어버린 후 더하고 살 생각만 했던 압박감.

우산을 잃어버려도 더 이상 뺄 필요가 없는 편안함.

현관에 놓인 넉넉한 우산들을 매일 바라보며, 오늘은 무엇을 버릴까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명품 철학자나 종교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왠지 흐뭇한 웃음을 잉태하는 삶의 역리(易理)가 아닐까?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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