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당시 미군 개입, 명확한 진상 규명 필요”
“제주 4.3 당시 미군 개입, 명확한 진상 규명 필요”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9.04.09 1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도의회 정책연구실 ‘4.3사건 미군이 얼마나 개입했나?’ 소식지 발간
정민구 4.3특위 위원장 “미국·일본·러시아 사료 등 체계적인 자료 수집 필요”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 4.3사건 당시 미군의 개입 정황이 드러난 다양한 자료와 증언 분석을 통해 진상 규명 필요성을 제기한 제주도의회 차원의 보고서가 나왔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연구실은 ‘4.3사건 미군이 얼마나 개입했나?’라는 제목의 정보 소식지 ‘정책차롱’을 8일 발간했다.

한국경비대 미군자문관이 진압계획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1948. 5.15 Mootz 촬영, NARA, 사진 왼쪽)과 1945년 5월 15일 제주항에서 촬영된 미군 함정(Mootz 촬영, NARA).
한국경비대 미군자문관이 진압계획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1948. 5.15 Mootz 촬영, NARA, 사진 왼쪽)과 1945년 5월 15일 제주항에서 촬영된 미군 함정(Mootz 촬영, NARA).

보고서에서는 ‘미군이 제주도를 거대한 킬링필드로 바꿔놓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언급한 미국의 사회학자 조자 카치아피카의 말을 인용, “4.3 당시 미군측의 개입에 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고서는 4.3 당시 미군의 개입 사례 유형을 △주한 미군 사령관과 고문관들이 한국 경찰과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경비대에 직접 명령을 하달했으며 △제주의 미군 고문단들이실제 공직과 육상 작전을 관리, 감독했다는 점, △제주도에 주둔한 미군 부대가 우리 측 진압군에게 군수 지원 및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강경진압을 지휘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프랑스 파리7대학 버트랜드 로에너 교수의 논문과 당시 미군 측의 비밀 문건, ‘주한미군사’ 사료, 미군 증언 등을 토대로 1947년과 1948년에 제주도에 미군이 최소 중대 규모인 100명에서 최대 연대 규모인 1000명까지 주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한국전 참전 미군 조셉 그로스만은 “1947년 봄에 6주 동안 20보병연대 제2대대의 500~1000명의 미군 병력이 제주도로 파견됐다”고 증언하는 등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군의 개입 형태와 정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어 당시 제주도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의회 정책연구실은 “현재까지 밝혀진 미군의 지휘 책임과 함께 특별히 미군 병력이 어느 정도 규모로 제주도에 주둔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미국의 개입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척도가 된다”면서 “반드시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하고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민주 도의회 4.3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파비앙 살비올리 UN 특별보고관이 제주4.3사건 해결을 위한 지원을 약속한 점을 들어 “오는 6월 UN에서 개최되는 4.3 심포지엄을 계기로 향후 미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러시아에 있는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 수집을 통해 4.3 당시 미군의 개입 정도를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