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2편
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2편
  • 이상우
  • 승인 2019.04.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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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3> 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2편

예루살렘(Jerusalem), 히브리어로는 예루샬라임(יְרוּשָׁלַיִם, Yerushaláyim) ‘평화의 도시’, 아랍어로는 알 쿠드스(القُدس, al-Quds) ‘성스러운 도시’, 그리스어로는 히에로솔류마(Ἱεροσόλυμα, Hierosolyma) ‘신성한’, 라틴어로는 움빌리쿠스 문디(umbilicus mundi)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도시이다. 모두 ‘평화’와 ‘신성’을 나타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 3대 유일신교인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聖地) 다운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이 도시 명칭의 내력에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가나안 시대(BC 3000~ BC1000)의 샬림(Shalim)이라는 신의 사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샬림은 ‘평화’를 상징했고 예루살렘에 그의 신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샬림은 이외에도 ‘황혼’, ‘하루의 완성’ 등을 관장하는 신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렇듯 예루살렘은 형식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그리고 이하에서 살펴보겠지만 경험적으로도 모두 종교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종교를 빼놓고는 이 도시를 설명할 수 없음 또한 우리에게 알려준다.

가나안지도(BC1400년경)
가나안지도(BC1400년경)

보통 큰 도시는 산으로 둘러싸이고 강이 흐르는 분지에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예루살렘도 이 같은 조건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더불어서 지도를 한 번 보면 예루살렘이 상당히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지대가 무슨 분지냐 하겠지만 나름 분지는 맞다. 주변이 더 높은 산들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이처럼 골짜기 중간 언덕에 건설된 도시이다. 그렇다면 왜 건축자재 나르기도 힘들었을 높고 험준한 곳에다가 도시를 만들었을까.

고대에 가장 선진적인 땅은 현재의 이라크 남부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현재의 이집트 북쪽의 나일강 하구 지역을 꼽을 수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라 불리던 이곳에 살던 수메르인들과 이집트인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쓰고 있는 수학, 철학, 역학, 천문학, 건축학, 신학, 문학, 역사학 등 모든 지식의 기초들을 발명해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양 지역에는 현재 미국과 같은 위치의 강대국들, 이집트 각 왕조,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레니즘 제국, 로마제국 등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땅이 가나안 지역이었고 이 한복판에 예루살렘이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를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가는 길과 산맥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가는 길이다. 처음에는 해안 길이 많이 이용되었다. 위에 언급했던 가나안 시대는 이 지중해 동안(東岸) 지역에 여러 도시국가들이 번영했던 때였다. 가나안(Canaan)은 ‘저지대’, ‘자줏빛의 땅’이란 뜻이다. 자주색이 언급된 이유는 가나안 지역에 사던 사람들이 자주색 염료를 사용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다. 고대에 자주색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색이 아니었고 당연히 염색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이 고급 기술을 독점했던 가나안 사람들은 옷감 수출과 함께 무역중개를 통해 엄청난 부를 누렸다. 시돈, 티레, 비블로스(Byblos), 야파, 아슈도드(Ashdod)등이 대표적인 도시였다. 특히 비블로스는 질 좋은 나무가 많이 생산되었는데 그것으로 만들어진 파피루스가 ‘비블로스’라고 불리며 유명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 성경(이하 성경)에도 ‘레바논의 백향목’이라 하는 항목이 나오는데 이 ‘비블로스’라는 명칭에서 성경의 명칭인 「바이블(The Bible)」이 유래되었다. 이 문화 간의 교통로를 통해 수많은 문명의 교류와 무역이 이루어졌다.

가나안지역에서 주신으로 셤겨지던 풍요를 관장하는 바알신
가나안지역에서 주신으로 셤겨지던 풍요를 관장하는 바알신

하지만 이곳은 돈이 모였던 곳답게 늘 강대국의 공격과 불안정한 치안에 시달리는 지역이기도 했다. 자기들끼리 외부의 침략을 막을 통일국가를 이루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고대에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를 이루려면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정착민들이 어느 정도 이상은 확보가 되어야 했다. 집단 농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개시설의 정비가 필요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관료 제도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농업에 종사하는 많은 정주민들이 존재하여야 이들이 전시에 군대로 동원될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어진다. 이 두 요소를 통해 중앙집권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고만고만한 도시국가들이 모여 있던 가나안 지역은 장사하기에 꽤나 좋은 조건이었지만 제국이 탄생할 만한 배후지를 갖춘 지역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계속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고 지배층도 계속 바뀌었으며 덩달아 각양각색의 해적과 산적들도 함께 날뛰는 곳이었다. 문명의 교차지점답게 이 지역 저 지역의 신들도 다 들어와 최신 경향에 따라 주류 종교도 바꿔가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가나안 땅에 큰 변수가 하나 나타났으니 그들이 바로 히브리인(Hebreians)들이었다.

 

천사와 싸우는 야곱- 외젠 들라크루아(야곱은 이 씨름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천사와 싸우는 야곱- 외젠 들라크루아(야곱은 이 씨름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히브리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히브리’라는 말이 가나안 시기에는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문서에 스스로를 히브리인이라고 지칭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은 동일한 유일신교를 믿고 있다는 정체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기에 ‘이스라엘(Israel)’이라는 말을 더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겨룬 자’라는 뜻인데 유일신이 자기 민족을 선택했다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럼 히브리라는 말들은 언제부터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것일까. 아마 영국의 교육자인 매튜 아널드(1822~1888, Matthew Arnold)가 1869년에 출판한 『문화와 무질서(Culture and Anarchy)』에서 헤브라이즘(Hebraism)이란 용어가 사용된 이후로 생각된다. 매튜 아널드는 세속과 인본주의를 상징하는 헬레니즘(hellenism)과 대비되는 용어로 도덕과 종교를 상징하는 용어로 헤브라이즘을 사용했다. 이즈음 해서 헤브라이즘은 세속주의를 극복하는 종교적 정화의 표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히브리인’들이란 말은 가나안 지역에 실제 거주했던 민족이 아니라 ‘유일신을 정결하게 따르는 집단’과 같은 관념상의 용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하에서는 편의상 히브리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겠다.

매튜 아널드(1822~1888, Matthew Arnold)
매튜 아널드(1822~1888, Matthew Arnold)

히브리인들에 대해서 성경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들이 가나안 지방으로 신의 언약에 따라 이주해왔다고 전한다. 그 언약이라는 것은 가나안 지방을 너희(히브리인)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가나안 지방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미 도시국가들이 들어서 있는 상태였으므로 이 약속이 이주의 명분이라면 분쟁이 발생할 여지는 처음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지방에 정착하여 아브라함(Abraham)이라는 사람을 시조로 모셨다. 사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히브리인들만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 이스마엘(Ishmael)은 아랍인들의 시조이자 이슬람교 믿음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가나안 지방에서 모두 섞여 있어서 명확하게 너와 나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히브리어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는 가나안어의 방계 언어였고 서로 자기 공동체 말로 떠들어도 의사소통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심지어 곧 히브리어는 ‘아람어(Aramaic)’라는 중근동 지방 공용어에게 자리를 내준 채 사라지고 만다. 참고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히브리어를 쓰지 않으시고 아람어를 사용하셨다.

아마르나 문서
아마르나 문서

이 히브리인들은 모종의 일로 이집트로 자리를 옮겼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BC 1400~1200년경 다시 가나안 지역에 나타난다.(이 모종의 일에 대해서는 언젠가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성경에서는 가나안 지방에 기근이 들어 이집트로 가라고 신이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 시기 이집트의 아마르나 문서(Amarna letters)라는 외교문서에는 하비루(Habiru)라는 집단도 등장한다. 때로는 이들이 히브리인들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하비루는 아피루(apiru)로 불리기도 하는데, 문서상의 이들은 노략질을 하고 용병으로 쓰이기도 하고 가나안 지방을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사실 하피루는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하층민을 가리키는 의미로 더 통용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기에 하피루와 히브리가 직접적으로 대응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하피루라고 불렸던 집단 내에 히브리인들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여겨진다. 여하간 유일신을 모신다는 강령 아래 단결한 이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지방을 침략하기 시작한다. 성경에는 그 지역을 점령했다고 나와 있지만 성경 내에서 그 이후의 서술을 보더라도 다신교의 영향이 여전히 강했고, 고고학적으로도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지방을 차지했다는 증거는 없다. 아무래도 그전처럼 모두 혼합되어서 살았던 모양이다. 다만 많게는 400만 여명까지 추산되는 집단이 같은 신을 믿는다는 유대감을 가지고 한 지역에 등장했다는 것은 추후의 역사 전개에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지방이라는 정치적 공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BC 1000년경 히브리인들이 자랑하는 민족의 영웅 다윗(David)이 등장하여 가나안 지방을 통일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문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이상우 칼럼니스트

-  서울출생
-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졸업
-  제주교육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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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한송이 2019-04-10 10:50:03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내용이네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