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1편
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1편
  • 이상우
  • 승인 2019.03.18 17:2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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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2> 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1편

나는 사극을 참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극뿐 아니라 중국이나 서양 같은 외국 사극도 잘 본다. 아니 더 열심히 보는 편이다. 우리나라로 흘러들어 오는 외국 역사 드라마나 영화는 나름 엄선(?)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우리나라 것의 단점들이 잘 보이지 않는 장점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역사극의 단점은 유치원생이 5분만 봐도 알 수 있는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닐까 한다. 보다 보면 눈 화장을 시퍼렇게 하고 있거나, 멋있는척 하면서 음흉한 미소를 띠고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악역일 것이다. 거기에 ‘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와 같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그건 정확하게 ‘내가 나쁜 놈이지롱’이라고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는 셈이다. 선한 주인공은 정확히 이와 반대로 들어맞게 되는데 이런 매회 동일한 등장인물 소개는 서사의 전개를 너무나 단조롭게 만든다. 요새 만들어지는 역사극들은 나름 인간의 입체성을 생각하여 다양한 인물 해석이 나오기도 하지만 극 후반부에 가면 어디에선가 아이라이너를 칠하고 와서는 또다시 악다구니질을 하곤 한다. 물론 외국이라고 많이 다를 바는 없다. 거기도 거의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 같은 역사극도 많다. 다만 인구에 회자되는 대작들이 종종 튀어나오고는 하는데 이하에서 다룰 역사 영화도 개중 하나이다. 바로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이다.

12세기 그려진 살라딘의 초상화
12세기 그려진 살라딘의 초상화

“예루살렘이란 게 뭡니까?(What is Jerusalem worth?)” “아무것도 아니지... 모든 것이기도 하고(Nothing... Everything)”. 「킹덤 오브 헤븐」의 절정 부분에 나오는 유명한 대화이다. 이슬람 군에 맞서 예루살렘을 방어하던 예루살렘 왕국 군의 발리앙과 이슬람 군의 지도자 살라딘이 전투 중지를 위해 만난 장면에서 나온다. 예루살렘 공성에 생각 외로 큰 피해를 본 살라딘과 더 이상 이슬람 군에 맞서기 어렵다고 판단한 발리앙은 협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 도시를 다 태워버릴 거라는 둥 노약자도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둥의 공갈 협박을 하지만 결국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을 넘겨주는 대신 조건 없이 모두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도 되는 나름 훈훈한(?) 결론을 맞게 된다. 그다음 등장하는 게 저 명장면이다. 문득 허무해진 발리앙은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다. 살라딘은 시크하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더 허무해하는 발리앙에게 살라딘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예루살렘은 모든 것이기도 하다고 말하는데 정말 멋있다. 나는 영화 대사를 마음에 새기고 그러는 사람은 아니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의 “희망은 좋은 정말 좋은 거에요(Hope is the good thing maybe the best thing)”와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의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게 만들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와 함께 저 대사는 계속 기억에 남는다.

제1차십자군원정이후
제1차십자군원정이후

십자군 전쟁의 기간은 십자군이 결의되는 클레르몽 공의회가 열린 1095년부터 동지중해 지역의 항구도시 아크레가 함락되는 1291년까지로 보통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흔히 프랑크왕국을 위시한 서유럽 세력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동지중해 지방을 공격한 전쟁을 십자군 전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스페인의 기독교 세력이 이베리아반도 내 아랍 세력을 공격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든지 독일 기사단(Teutonic Order)이 발트해 지역 국가들(폴란드, 리투아니아 등)과 벌인 전쟁도 십자군 전쟁의 일환이긴 하다. 다만 여기서는 레반트(Levant, 동지중해) 지역의 분쟁만을 십자군 전쟁으로 쓰도록 하자. 십자군 전쟁이 발발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간추리자면 인구의 증가에 비해 더딘 식량 생산력, 성전(聖戰)을 명분으로 정치적 공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교회, 말 그대로 예루살렘이라는 기독교 세력의 성지 회복, 상인들의 경제적 동기, 믿기지는 않지만 순수한 신앙적 동기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 일 것이다.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결의된 구호는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Deus vult!!)”였다. 이 무시무시한 구호에 걸맞게 십자군은 9차례 200년에 걸쳐 원정을 떠나게 되고 많은 학살과 약탈을 동반했다. 중간중간에 십자군들은 어처구니없는 행동들도 보인다. 제4차 십자군의 경우 같은 신을 믿는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한 기사들이 땅을 갈라 먹고는 ‘라틴 제국’이라는 괴뢰 국가를 세우기도 한다. 그 외에도 소년들만 참여했던 십자군, 돈을 줄 테니 예루살렘을 넘기라는 십자군 등등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이런 광기에도 반감은 있었는지 잉글랜드의 성직자 랄프 나이저(Ralph Niger)는 1189년에 제3차 십자군을 비판하며 “신께서 그것을 원하시지 않는다(Deus Non Vult)”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독일기사단
독일기사단

발리앙과 살라딘이 죽어라 싸웠던 예루살렘 공방전도 이 제3차 십자군이 시작되는 직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1차 십자군은 나름 성공을 거두어 예루살렘 왕국, 안티오키아 공국, 에데사 백국, 트리폴리 백국 등 4개의 나라가 세워진다. 이는 이슬람 세력이 분열되어 있었던 것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지난 호에 언급되었던 압바스 왕조는 무너지고, 그 가문은 칼리프라는 종교지도자의 명칭만 유지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권력은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행사했는데 이마저도 지배층 간의 세력 다툼으로 인하여 내전이 벌어지는 상태였다. 거기에 아나톨리아 지방(지금의 터키)에는 룸 술탄국(Sultanate of Rum), 이집트에는 파티마 왕조 등이 세워져 있었고 십자군 전쟁의 배경이 되는 레반트 지역은 이슬람 군벌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우리가 당시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꼭 전제해야 하는 것은 같은 알라를 믿는다 하여 자기들끼리 친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비상식적 행동들을 보였던 것은 십자군뿐이 아니었다. 이슬람 군벌들도 십자군을 끌어들여 자기가 싫어했던 다른 이슬람 군벌을 공격했다가 결국 둘 다 기독교 세력에 정복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비잔티움 제국도 이슬람 권과 손을 잡고 십자군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단순히 십자군 전쟁을 ‘문명의 충돌’ 혹은 ‘종교적 갈등’ 과 같은 이분법적 단순한 구도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런 논리는 후대에 정치적으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기 위하여 사용된 측면이 강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비슷한 말로 ‘빨갱이’도 있을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상대를 도무지 상대할 가치가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규정하는 저 교조적 신념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상황이다.

아무튼 그걸 나름 정리하고 토벌한 게 살라딘이었다. 살라딘(1137~1193)은 ‘살라흐 앗 딘’으로 읽으며 ‘정의로운 신앙(Righteousness of the Faith)’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살라딘은 이집트와 시리아, 아라비아 지방을 정복하여 ‘아이유브 왕조’를 세운다. 아이유브는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욥’과 동일인이다. 살라딘은 ‘하틴의 뿔’ 전투(Battle of Hattin, 1187)에서 예루살렘 왕국 군을 궤멸시키고 예루살렘을 되찾으며 이슬람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때때로 서구(西歐)나 기독교 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살라딘을 성인 반열에 올려 거의 숭배(?) 하는 듯한 경우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살라딘은 꼭 그렇게 자애로운 사람만은 아니었다. 하틴 전투에서는 전쟁 포로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범위 안에서 관용을 베풀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시의 희한한 군주들 사이에서 살라딘이 인격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킹덤 오브 헤븐」의 마지막 회담 장면에서 살라딘이 자신을 의심하는 발리앙에게 “나는 살라딘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그다지 자의식 과잉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살라딘이 정의라는 이름 뜻에 걸맞게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틴의 뿔 전투
하틴의 뿔 전투
프랑스 사령관 앙리 구로(Henri Gouraud, 1867~1946)
프랑스 사령관 앙리 구로(Henri Gouraud, 1867~1946)

 서유럽 세력은 이때 진 게 꽤나 억울했던 것 같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시리아를 점령하면서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프랑스 사령관 앙리 구로(Henri Gouraud, 1867~1946)는 살라딘의 무덤으로 달려가서는 “살라딘, 일어나라. 우리가 돌아왔다. 십자가가 초승달을 이겼다(Awake, Saladin. We have returned. My presence here consecrates the victory of the Cross over the Crescent)”라고 했을 정도였다.

사실 억울한 걸로 따지자면 아랍권이 더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아랍 세계의 활력이 상당히 약화되었고 논리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 교리가 붕괴되는 단초가 되었다. 원래 압바스 왕조 등의 종교 교리는 상식적인 방법론에 가까웠다. 특히 수니파는 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 4대 학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보편적 코란 해석뿐 아니라 개개인의 해석도 존중하는 모습을 초기에는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종교집단들이 그렇듯 급속히 부패했고, 이성을 중시하는 가르침은 자기들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계속되는 이슬람 제국의 확장과 승리로 그들은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의 계속되는 분열, 십자군 전쟁, 그리고 이어지는 몽골군의 침략, 결국에는 바그다드가 함락(1258) 되면서 압바스 왕가의 마지막 칼리프가 참수되었던 것은 이슬람교 신도들에게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신비주의적 이슬람 교리가 주류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의 배경에는 ‘예루살렘(Jerusalem)이라는 도시가 있었다.

-2편에서 계속 됩니다.

 

문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이상우 칼럼니스트

-  서울출생
-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졸업
-  제주교육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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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019-03-20 14:25:10
댓글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노형동 주민 2019-03-20 09:49:28
재미있네요 ㅎ 살라딘에 대해 흥미도 생기고요. 2편 기대할께요.

이도주민 2019-03-20 09:40:00
좀 어려운 말들이 있는데 재미있게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