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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함에 맞선 오현의 정신...배우고, 잇다”
“부당함에 맞선 오현의 정신...배우고, 잇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3.09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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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오현고 입학생 오리엔테이션, ‘오현 350년’ 역사 강의
오현고의 기원...불의 참지 않는 다섯 현인 ‘오현’의 역사와 함께해

“350년 된 학교의 역사를 알고, 여러분은 부당한 것에 항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해요”

오현고등학교 70회 입학생들에게 전하는 <미디어제주> 김형훈 국장의 말이다.

3월의 봄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나는 따뜻한 날씨의 3월 9일 토요일, 오현고등학교 2019학년도 신입생들이 이도1동에 위치한 오현단에 모였다.

오현고등학교 2019학년도 신입생들이 오현비 앞에서 역사 강의를 듣고 있다.

1951년 개교한 오현고는 ‘오현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오현’이란, 조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섯 명의 현인을 뜻한다.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이렇게 다섯 현인이 바로 ‘오현’입니다. 오현은 조선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역사를 따지면 무려 350년이랍니다” -김형훈 국장

김형훈 국장은 이날의 역사 강의를 맡았다. 그는 오현고 32회 졸업생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한참 넘은 지금도 ‘오현’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잇고자 노력한단다.

김형훈 <미디어제주> 국장이 오현고등학교 신입생들에게 오현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김 국장에 의하면, 다섯 현인의 공통점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이들 모두 ‘제주 입도 경험이 있는 성리학의 대가’라는 점, 그리고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김 국장이 설명한 오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충암 김정 선생은 오현단의 시초이자, 조광조 등과 더불어 정계의 핵심 개혁 세력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1520년 제주로 유배를 오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이듬해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나이 불과 36세였다.

충암은 제주에 대한 정보를 ‘제주풍토록’이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후대에 많은 이들이 제주를 기록하는 계기가 됐다.

규암 송인수 선생은 어릴 적부터 독서를 좋아해 23세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규암이 제주를 찾은 것은 제주목사로 부임된 덕인데, 이상하게도 목사 임기를 채우지 않고 수십일 만에 육지로 올라가버린다.

제주목사로 부임한다는 것은, 왕명을 받드는 일이다. 그런데 규암은 제주목사 자리를 박차고 돌연 제주를 떠났다.

왕의 지위를 생각해본다면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무모한 행위일 수 있다. 그런데도 그가 제주를 떠난 이유는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어떤 불의일까?

당시에 김안로라는 인물이 있었다. 각종 악행으로 악명이 높았던 자다. 김안로 일파는 늘 바른 소리를 하는 규암을 견제했는데, 결국 규암을 제주목사 자리에 앉히며 변방의 제주로 보내버리게 된다.

그렇다. 규암이 제주목사 자리를 관두고 육지로 떠난 것은 불의에 저항했던 그만의 방법이었다.

청음 김상헌 선생은 척화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청음은 1601년 선조 때, 그의 나이 32세로 제주에 입도한다. 제주도민의 아픔을 달래주는 ‘안무어사’의 임무를 맡고 제주에 파견된 것이다.

당시 그가 제주에서 해야 할 임무는 무려 17개나 됐다. 관리가 제 역할을 하는지 들여다보는 것부터, 한라산에 제사를 지내는 것까지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 중에서도 청음은 제주에서 ‘남사록’이라는 기록을 남기는데, 여기에는 제주 목사들의 폐단과 백성의 고통이 서술되어 있다. 이는 현재 소중한 제주의 향토 사료로 꼽힌다.

“김상헌은 제주목사보다 3~4단계 계급이 낮은데도 목사에게 인사를 안 합니다. 왕명을 받고 왔기 때문이죠. 청태조에게 붙잡혀 갔을 때도 ‘오랑캐’라는 이유로 인사를 하지 않고요. 돌아와서 인조에게도 인사하지 않습니다. 오랑캐에게 굽힌 왕이기 때문이죠.” -김형훈 국장

김 국장의 말처럼, 김상헌은 불의에 절대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다. 심지어 ‘왕’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굳건한 인물인 지 짐작케 한다.

김형훈 <미디어제주> 국장이 오현고등학교 신입생들에게 오현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동계 정온은 41세 나이로 늦게 정계 진출을 합니다. 선조가 죽고, 영창대군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정항이라는 인물은 영창대군을 죽이게 되는데요. 당시 영창대군의 나이 9세 때입니다. 그러자 정온은 광해군에게 상소를 올립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시키는 것이 국법인데, 임금의 동생을 죽인 자는 더 그렇다, 정항을 죽이지 않는다면 임금(광해군)께서는 선왕의 사당에 들 면목이 없으리라 여긴다’라는 내용이죠.” -김형훈 국장

감히 왕에게 ‘당신은 사당에 들 자격이 없다’라며 소신을 밝힐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을까?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 바로 동계 정온 선생이다.

정온의 상소를 본 광해군은 노발대발하며, 그의 관직을 박탈한 후 제주로 유배를 보낸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광해군은 결국 자신의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게 된다. 인조반정이 성공하며 1623년 정온은 유배가 풀려 육지로 올라가고, 반대로 광해군은 제주로 유배를 오게 된 것이다.

결국 바뀐 둘의 처지를 본다면,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라는 말이 허투루 나온 것은 아닌 듯하다.

성리학의 대가로 불리는 우암 송시열 선생도 오현의 인물 중 하나다.

우암은 두 가지로 평이 갈린다. 그를 대단한 인물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문제가 많은 인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암이 조선 성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은 대부분 공감할 것 같다.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조선 역사에서의 중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이죠. 송시열은 ‘송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공자나 맹자처럼 대학자의 의미가 담긴 별명이랍니다.” -김형훈 국장

김 국장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오늘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부당한 일을 겪게 될 경우. 불의에 참지 않고 ‘부당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답'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이날 오현단 탐방 행사에는 오현고 이계형 교장을 포함한 교직원은 물론, 오현고 동문도 상당수 참여했다.

이에 이계형 교장(24회)은 “오현단에서 신입생을 상대로 오현의 역사를 설명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며 “학생들이 자신의 뿌리를 알고, 오현고에서 꿈과 끼를 키웠으면 좋겠다”라는 격려를 전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를 제안한 오현고총동창회의 강기주 부회장(22회)은 자신이 오현고를 졸업한 사실이 ‘일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리고 곧, “신입생들 모두 오현의 얼과 정신을 오현단에서 느끼고, 오현 동문들처럼 자부심을 느끼길 바란다”라며 진심으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제주 사람들이 갖는 모교에 대한 애정은 타 지역에 비해 강한 편이다.

이는 아마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과거로부터 지금을 보는 법을 배우고, 미래를 설계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 이날 있었던 오현에 대한 역사 기행처럼 ‘나의 기원’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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