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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감동을 줄 때라야 건축물이 됩니다”
“사람에게 감동을 줄 때라야 건축물이 됩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03.0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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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생각이 중요하다] <11> 건축물의 힘

6년 전인 3월 6일 레고레타의 작품 허망하게 허물어
건축을 대하는 행정의 자세 전환이 무엇보다도 중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그는 색의 마술사다. 색에다 빛과 물. 그것만 있으면 건축물이 완성된다.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는 그렇게 세상에 건축물을 선물했다.

도시재생 이야기를 하는데 웬 레고레타냐고 하겠지만,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는 건축이기에 건축물 이야기를 하려고 그를 소환했다. 마침 3월 6일이기도 하다. 3월 6일은 24절기 중 하나인 경칩이지만, 제주 건축사엔 치욕적인 날이다. 2013년 3월 6일, 그날 리카르도의 유작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이하 더 갤러리)가 허망하게 파괴됐다.

2013년 3월 6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파괴 장면. 미디어제주
2013년 3월 6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파괴 장면. ⓒ미디어제주

더 갤러리가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제주에 오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그 건축물을 보지 않았을까.

건축물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건설과 건축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돌과 나무, 자갈 등의 재료를 다 주고 집을 짓는다면 그건 ‘건설’에 해당한다. 그런 ‘건설’ 행위가 사람을 감동시키면 달라진다. 그런 감동으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건축’이 된다.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가 그런 말을 했다.

더 갤러리는 감동을 준다. 아니 감동을 줬다. 그 건축물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서 천장을 바라보면 파란색이 가슴을 파고든다. 격자가 굽이치듯 하늘로 뻗어가며, 마치 하늘이 손에 잡힐 듯하다. 색감은 어떤가. 파란색이 칠해진 그 천장에 반하고 만다. 실내도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레고레타 그는, 색을 입히고 색에 빛을 더해 감동을 주는 건축가였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파괴를 부른다. 그 욕망에 건축물은 하나 둘 생명을 다한다. 더 갤러리가 그런 경우였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입구 천장. 미디어제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입구 천장. ⓒ미디어제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내부. 미디어제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내부. ⓒ미디어제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복도. 미디어제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복도. ⓒ미디어제주

더 갤러리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나섰다. 개인적으로도 그 건축물을 지키려고 70회 이상의 글을 썼다. 국내외에서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를 단칼에 거부한 건 업자인 부영주택이었다. 업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행정도 더 갤러리를 지키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서귀포시청이 그랬고, 제주특별자치도가 그랬다. 불법 건축물이었다고 해명을 하겠지만, 세상에 있는 불법 건축물을 죄다 철거하지도 않는 행정 아니던가.

어찌 보면 2013년 3월 6일은 건축물을 바라보는 제주 행정의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 일면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거기엔 침묵하는 언론과 파괴에 동조하는 교수들이 있었다.

사라진 걸 되살릴 순 없다. 되살려 봐야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건축물은 그 땅 위에 존재할 때라야 가치를 지닌다.

행정이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시민이 나서야 하는데, 그건 더더욱 어렵다. 돈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돈과 함께 행정을 휘두를 권력도 있어야 한다. 그런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있어야 행정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부영호텔을 바라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부영호텔도 사실은 레고레타의 유작이다. 하지만 레고레타가 살아있다면 스스로가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부영호텔은 레고레타의 설계 의도와 다르게 지어졌다. 설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제멋대로 집을 지었다. 행정은 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골칫덩어리였던 더 갤러리만 없애줬다. 지금의 부영호텔은 건축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건설 행위로 우뚝 선 건물일 뿐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을 제멋대로 지어올린 부영호텔. 미디어제주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을 제멋대로 지어올린 부영호텔. ⓒ미디어제주

그렇다면 보존가치가 있는 건축물은 어떻게 살리면 될까. 도시재생 측면에서 다뤄보자. 여기엔 건축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행정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역할은 건축가에게 있다. 그 바탕엔 행정이 건축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하나의 사례만 보자. 서울어린이대공원에 ‘꿈마루’라는 건축물이 있다. 어린이대공원의 방문자센터 역할을 하는 이 건축물은 헐 계획이었다가 살아났다. 우리나라 1960년대의 대표적 건축가인 나상진의 작품인 이 건축물은 철거 목전에서 살아났다. 살려내는 작업을 한 건축가는 조성룡이었다. 그는 나상진의 작품에 힘을 보탰다. 그 힘은 권력이 아닌, 작품을 대하는 힘이었다.

제주도도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서로의 역할이 중요하다. 행정은 건축가를 업자가 아닌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봐줘야 하고, 건축가 역시 제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2013년 3월 6일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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