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때부터 억울한 옥살이 “70년만에 누명 벗었는데…”
16세 때부터 억울한 옥살이 “70년만에 누명 벗었는데…”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9.02.10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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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생존 수형인 현창용 할아버지, 7일 지병으로 별세
3개월 모진 고문 끝에 인천형무소로 … 20여년만에 풀려나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 4.3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인천형무소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현창용 할아버지가 지난 7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이 된 현 할아버지는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에 묻고 싶다. 나를 잡아간 이유가 뭔지. 재판정에 가서 말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내가 잡혀간 이유를 모른다고, 너무 억울하다고.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재심이 이뤄져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지난 7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故 현창용 할아버지가 지난 2017년 3월 자신의 억울한 옥살이를 증언하고 있는 모습(가운데).  ⓒ 미디어제주 자료사진
지난 7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故 현창용 할아버지가 지난 2017년 3월 자신의 억울한 옥살이를 증언하고 있는 모습(가운데). ⓒ 미디어제주 자료사진

지난달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에서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지면서 70년이 지나서야 누명을 벗게 됐지만 함께 재심을 청구했던 생존 수형인 17명을 남겨두고 먼저 눈을 감았다.

그는 잠을 자던 중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인천형무소로 옮겨졌다.

현재 월랑초등학교 인근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던 중 ‘폭도와 연락했느냐, 삐라를 붙였느냐. 무허가 집회를 했느냐’는 등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니 돌아온 것은 매질이었다. 현씨가 계속 모른다고 답하자 다음날은 물고문이 이어졌다.

코로 물을 붓고 그 물이 배에 가득 차면 배를 발로 밟혔지만 끝까지 부인하자 실탄을 하늘로 쏘면서 죽이겠다고 총을 머리에 갖다대기까지 했다. 결국 경찰이 내민 진술서에 손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경찰서로 옮겨져 다시 취조를 받으면서 관련 사실을 부인하자 그는 다시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3개월 가량 모진 고문을 받은 그는 관덕정에서 군사재판을 받고 목포로 옮겨진 뒤 인천형무소에 도착해서야 징역 5년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가기록원에서 발견된 4.3 수형인 명부에 기록돼 있는 그의 군사재판 판결 날짜는 1948년 12월 9일.

1년 7개월 가량 인천형무소에서 지내던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풀려났다가 다시 형무소로 옮겨졌지만 결국 인천이 함락돼 인민군들에 의해 풀려나 평양에서 보름여 기간 동안 사상 교육을 받은 뒤 남한으로 보내졌지만 지리산에서 붙잡혀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 무기징역,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20년의 형기를 다 채우고 풀려난 그는 1970년대 초반에야 다시 제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6세의 나이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그는 70년이 지나서야 재심을 청구한 끝에 자신의 누명을 벗고 한많은 생을 마감하게 됐다.

빈소는 S-중앙병원 장례식장 6분향실에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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