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평안 기원하는 해신제, 제날을 찾았어요"
“제주의 평안 기원하는 해신제, 제날을 찾았어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2.09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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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청춘예찬’ 일기] <18> 옛 원형 해신제, 제날을 찾다

70여년 전의 홀기 복원해 제모습 찾은 화북 해신제
해신제 지원 조례 제정으로 마을제에서 도제로 격상
작년 봉행위 구성으로 미뤄진 날짜, 올해 제날 찾아
화북포구에 위치한 해신사에서 음력 1월 5일(양력 2월 9일), 해신제가 열렸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과거 제주의 옛 조상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진행했던 해신제.

70여년 전 제주 화북포구에서 진행되던 해신제가 원형을 찾았다.

2017년 말, 제주특별자치도가 ‘해신제 봉행위원회 지원 조례’를 공포하며 해신제는 ‘마을 잔치’에서 ‘제주의 큰 잔치’가 됐다.

작년 3월 17일(음력 2월 1일)에는 홀기(笏記]) 복원한 첫 해신제가 화북포구 해신사에서 열리기도 했다. 홀기란, 제사나 제례 의식 순서를 기록한 기록물이다.

하지만 해신제를 치르는 본래 날짜는 음력 1월 5일이다. 작년에는 해신제 봉행위원회 구성 등으로 부득이 일정이 미뤄졌다.

그리고 올해 2019년. 해신제가 드디어 제날을 찾았다.

해신제가 제날을 찾으며, <미디어제주>와 함께하는 제주동중 동아리 ‘청춘예찬’의 오용빈(15) 학생도 해신제를 찾았다.

청춘예찬 동아리는 화북, 삼양 지역의 어르신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사는 곳의 역사를 배워보는 이 활동은 추후 책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저는 삼양에 사는데, 아침부터 해신제를 보러 뛰어왔어요! 다 끝나갈 무렵에 도착해서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고시래는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오용빈)

 

고시래를 하러 제관들이 알자를 따라 화북포구로 향하고 있다.

고시래(고수레)란, 음식을 먹기 전 조금 떼어 허공에 던지는 민간신앙의 한 모습을 칭한다.

제사에서의 고시래는 제사 음식의 일부를 던지는 행위다. 화북에서는 어부들과 해녀들의 안전과 풍요로운 어획을 위해 바다를 향해 고시래를 했다.

이러한 고시래는 이날의 해신제에서도 어김없이 바다로 향한다.

고시래를 하기 전 제관들의 모습. 왼쪽부터 종헌관, 아헌관, 초헌관.

“사실, 청춘예찬 동아리를 하기 전에는 해신사에 와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도 관심이 전혀 없었죠.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오용빈)

모처럼 제날을 찾은 해신제, 마을 잔치에 참석한 오용빈 학생. 그는 청춘예찬 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는 <미디어제주>의 김형훈 편집국장과 반가운 조우를 했다.

김형훈 국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제사의 축문을 읽는 대축(大祝)을 맡았다.

또한, 올해 초헌관은 안동우 제주도 정무부지사, 아헌관은 이경용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위원장, 종헌관은 홍표민 화북동 어촌계장이 선출되어 제를 올렸다.

(좌)오용빈 학생이 (우)김형훈 국장에게 해신사 안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원래 해신제는 마을 소속 주민만 제관을 맡을 수 있어. 그런데 작년 해신제가 도제로 격상되며 제주도민 누구나 제관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오용빈 학생에게 해신제의 변화를 설명하는 김형훈 국장의 말이다. 그가 축문을 읽게 된 배경에는 화북 출신으로 해신제 대축을 오래 맡았던 아버지가 있었다. 

축문은 모두 어려운 한자로 되어있다. 따라서 이를 쓰고, 읽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제주도민 누구나 대축을 맡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축문을 읽게 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좌)오용빈 학생이 (우)김형훈 국장에게 해신사 안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용빈이가 오늘은 좀 늦어서 해신제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내년에 꼭 다시 올 거지?”

내년을 기약하는 김 국장의 말에 용빈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꼭 다시 오고 싶어요”라고 화답한다.

해신제 의식이 모두 끝난 후 흥겨운 자치 한마당이 벌어졌다.

해신제가 작년 원형을 찾고, 올해는 제날을 찾아 70여년 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먼저 해신제 봉행위원회 양순호 위원장은 해신사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원래 해신제는 바다를 향해 제를 지내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다를 등지고 집을 바라보며 제를 지내고 있어요. 이는 해신사가 잘못 지어졌다는 증거죠. 게다가 제를 지내는 곳 바로 옆은 화장실이에요.”

양순호 위원장은 “홀기를 복원하며 해신제의 원형을 찾는 데는 8년여 시간 동안 동분서주한 김두석 봉행위원장의 공이 컸다”라고 말하면서도 제주 화북마을 고유의 해신제를 다시 지낼 수 있게 됐지만, 가장 중요한 해신사의 위치가 잘못된 점은 매우 아쉽다고 평가했다.

아헌관이 제를 지내고 있다.

해신제가 치러지는 동안 여성 출입이 금지되는 점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제주연구원 문순덕 박사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여성은 해신사에 들어갈 수 없다. 제사 음식과 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 큰데, 여성은 제관을 맡을 수 없다는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화북포구의 모습.

해신에 대한 제사는 전국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다. 제주도 관청에서 공식적으로 제사를 인정한 것은 1820년 해신사가 생기고 나서다.

그 옛날 척박한 제주 땅에서 어업에 목숨을 걸었을 어부들과 해녀들의 노고. 그리고 해신제의 맥을 이어온 제주 조상들의 넋을 기리며 올해는 부디 이 땅에 평안이 깃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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