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0:14 (금)
“분재, 나무를 가꾸며 깨달은 진리를 통해 자신을 개조해가는 것”
“분재, 나무를 가꾸며 깨달은 진리를 통해 자신을 개조해가는 것”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9.02.06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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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저지오름 조성사업’ 진단] ④ ‘신병매관기(新病梅館記)’ 에서 듣다
성범영 원장이 ‘명품 저지오름 조성사업’을 신랄하게 비판한 이유는?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신병매관기(新病梅館記)’. 지난달 19일, 제주시 한경면이 추진중인 ‘명품 저지오름 조성사업’ 관련 취재를 위해 저지오름 인근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을 찾았을 때 성범영 원장이 얘기를 꺼낸 중국 인민일보에 실린 칼럼 제목이다.

지난 1995년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이 곳 생각하는 정원을 방문하기에 앞서 성 원장과 만남을 가졌던 인민일보 편집장이 쓴 이 칼럼을 계기로 해서 중국 분재가 다시 부활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은 평생을 바쳐 일궈온 이 곳의 가치를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데 대해 거듭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미디어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은 평생을 바쳐 일궈온 이 곳의 가치를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데 대해 거듭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미디어제주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던 중에 성 원장이 이처럼 중국 인민일보 편집장의 칼럼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중국 청나라 후기 유명한 문인이었던 꿍띵안(龔自珍)이 쓴 ‘병매관기(病梅館記)’라는 글을 찾아봤다.

‘병든 매화를 치료한다’는 뜻의 이 고전 산문의 일부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매화의 가지가 자연 그대로 비스듬하고 성기고 굽은 멋스런 운치와 풍치라는 것은 부지런히 돈만 밝히는 인간들의 얄팍한 지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몇몇의 사람들이 이러한 문인화가들의 괴팍한 취향을 매화를 기르는 이들에게 드러내고 확실하게 알려줘 그 곧은 것을 잘라내고, 옆 가지를 억지로 기르고, 그 빼곡한 것은 쳐내고, 어린 가지조차 죽여버리고 하여 곧은 것을 파버려 생기를 억제하여 이로써 비싼 값을 받게 하였다. 이로써 강소, 절강 지대의 매화는 모두 병이 들어버렸다. 문인화가들이 만든 이러한 폐해는 그 심함의 정도가 극에 달하여 멀쩡한 매화를 모두 병들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성 원장의 설명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꿍띵안의 이 산문으로 인해 중국 분재의 명맥이 끊겼고, 이를 애통히 여긴 인민일보 편집장이 생각하는 정원을 방문했다가 ‘신병매관기(新病梅館記)’라는 글을 통해 일본 고유의 문화로 잘못 알려진 중국 분재 예술의 부활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한 시간 넘게 생각하는 정원 안에 있는 장쩌민 주석 등의 기념 휘호와 사진 등을 보여주며 설명하던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자신이 장쩌민 주석에게 했던 얘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분재는 나무가 아름다워서만 가꾸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나무를 가꾸면서 깨달은 진리를 통해 나 자신을 개조해가는 것입니다. 나무를 가꾸게 되면 일이 많아서 나 자신도 모르게 근면해집니다. 그리고 이걸 수년간 멀리 내다보고 키워야 하기 때문에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기획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만들 것인가 늘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창의력이 발달합니다. 미적 감각, 즉 아름다운 걸 볼 수 있는 눈이 트입니다. 그리고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정직함을 배웁니다. 그리고 이웃과는 나무를 통해 교류함으로써 화합이 이뤄지고 국제간 평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예술입니다.”

‘해송 분재형 오름’을 조성해 명품 저지오름을 만들겠다고 하는 이 사업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는 질문에 “내가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며 손사레를 치던 그가 결국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이걸 폄하하거나 헐뜯는 건 아닌데, 저건(명품 저지오름 조성사업은) 백분의 일, 만분의 일도 산만 버리는 거다. 저걸 하려면 밀식된 나무들이나 솎아서 아름드리 크게 잘 자라게만 해놓으면 좋을 거다. 소나무재선충병을 방제하고 그렇게만이라도 키워놓으면 그게 오히려 오름이 더 살 거다. 거기다 조명등을 해놓고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야간에 거기 누가 보러 간다고 하느냐. 우리도 야간에 조명등을 했더니 온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서 갉아먹더라. 야간에 풍뎅이고 뭐고 안 오는게 없어서 야간개장을 했다가 큰 일 나겠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집어치워버렸다.”

분재에 대한 호불호, 또는 이를 극찬하거나 반대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는 찬반 논란을 떠나 성 원장이 평생을 바쳐 가꿔온 ‘생각하는 정원’과 분재 예술의 대한 그의 굳건한 신념, 그리고 제주시 한경면이 34억원이라는 예산을 들여 조성중인 ‘명품 저지오름 조성 사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생각하는 정원' 내부 전경 뒤로 멀리 저지오름의 모습이 보인다. ⓒ 미디어제주
'생각하는 정원' 내부 전경 뒤로 멀리 저지오름의 모습이 보인다.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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