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한 풀지 못한 채 영면한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자”
“평생의 한 풀지 못한 채 영면한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자”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1.30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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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인권운동의 상징 김복동 할머니, 향년 93세 나이로 별세

-평생 소원인 일본으로부터의 사과, 결국 받지 못한 채 영면
-위안부 피해 생존자, 23명 남아..."모두 함께 목소리 내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평생 분노와 한을 품고 살아온 이의 마음을 누가 감히 짐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군의 만행으로 아무런 죄없이 아픔을 겪어야 했을 위안부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린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오후 10시 41분 별세했다. 그의 나이 향년 93세였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그의 소녀 시절은 멀리서 보아도 처참한 비극이었다. 14세 나이의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에 끌려가 성노예 고초를 겪었고, 암흑보다 더 캄캄한 이 비극은 8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1945년 대한민국은 일제에서 해방되었지만, 어렵게 위안부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은 아픔을 쉽사리 꺼낼 수 없었다. 일본의 고의적인 역사 왜곡,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하는 잘못된 시대 분위기 때문이었다.

일본군이 저지른 이 만행이 공식적으로 증언된 것은 이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까만 머리 소녀였던 그가 흰 머리 할머니가 된 1992년 3월이다.

1992년 3월,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자신의 성노예 경험을 용기 있게 증언한다.

그의 증언 덕에 일본군의 만행은 세계 곳곳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던 일본이건만, 이제 위안부를 마냥 ‘없던 일’로 치부할 순 없게 됐다.

오늘날 사회 각계각층에서 건강한 ‘미투’ 운동이 진행될 수 있었던 까닭도 그의 첫걸음 덕분일 것이다.

제주시청 앞에 세워진 김복동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제주 시민분향소’.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 한 시민이 분향하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 이후,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하나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증언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김복동 할머니도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증언대에 서는 등 전 세계를 넘나드는 인권운동을 이어갔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 요구한 것은 결코 거창하지 않았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 그것이면 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상처 깊은 그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난도질한 것은 우리 정부였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를 진행한다.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철저히 배제한 채 위안부 문제를 임의로 종결시켰다.

당시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서면’으로 전달했다. 어이없고 황당한 졸속 합의였다.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사과를 일본에 요구하며, 매일 피눈물을 흘렸을 할머니들은 또다시 분노해야 했다. 그렇게 정부는 ‘일본의 사죄만 받으면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했던 할머니들을 속절없이 하늘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문재인 정권이 탄생하고, 지금은 2019년. 아흔이 넘어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은 한겨울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여전히 일본 정부를 향해 외친다. ‘너희들의 만행을 사죄하라고. 그래야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이제는 할머니들과 함께 많은 국민들이 함께 외친다. ‘일본군의 만행,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 사죄하고, 죗값을 받으라고.”

이러한 변화는 김복동 할머니의 용기가 만든 소산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인권운동의 상징이 된 김복동 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다.

제주시청 앞에 세워진 김복동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제주 시민분향소’의 모습. 1월 29일부터 2월 1일 오전 11시까지 분향이 가능하다.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이후 제주시청 앞에는 ‘김복동 할머니 제주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제주평화나비에 의해 설치된 분향소는 1월 29일 오후 6시부터 2월 1일 오전 11시까지 4일간 운영되며, 김복동 할머니 추모를 원하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30일, 분향소 앞에서 만난 제주평화나비 김미선씨(21)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큰 기둥, 김복동 할머니 덕분에 힘을 얻고 활동할 수 있었다”라며 그를 추모헀다.

김씨는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화가 난다”라고 말하면서도, “이 슬픔을 이겨내고 위안부 문제 활동에 더 힘쓸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겠다”라는 다짐을 전했다.

그는 또한, “김복동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전쟁 없는 평화’를 만들기 위해. 먼 걸음일지라도 한걸음, 한걸음 걷겠다”라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제주평화나비 김미진씨가 ‘김복동 할머니 제주 시민분향소’에서 추모 중인 모습.

평생의 소원인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결국 받지 못하고 영면한 김복동 할머니. 그의 별세로 이제 정부에 공식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이 됐다.

사람이 죽고, 시간이 흐르며 기억 속에서 서서히 흐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보다 더, 기억해야 한다. ‘늘’ 생각할 순 없겠지만, ‘문득’ 하늘을 보며 추모하고 떠올려야 한다.

일본의 사과를 끝내 받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김복동 할머니를. 그리고 그보다 먼저 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말이다.

그래야만 23명의 위안부 피해 생존자, 그리고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들의 소원. ‘일본의 사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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