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기억 흔적을 지우면 공간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
기억 흔적을 지우면 공간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01.28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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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청춘예찬’ 일기] <17> 이승수 작가와의 대담

화북 중마을에서 1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해 와
“화북은 다른 지역보다 역사성을 많이 지닌 곳”
목적성 가지고 일하면 어려운 일도 어렵지 않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시 화북 출신은 아니지만 화북을 지키는 예술가들이 있다. 조소 전공인 이승수 작가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10년 넘게 화북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승수 작가는 화북동 중마을(청풍마을)에 위치한 창고에서 작업을 한다. 비록 ‘창고’라는 이름을 달기는 했으나 이승수 작가의 작업실은 역사성을 지녔다. 제주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닌 제주4·3의 아픔이 담긴 곳이다. 예전 화북지서 터였으며, 그 자리에 공회당이 들어섰다. 한때는 농협 창고로도 쓰인 건물이다.

이승수 작가의 창고는 제주시가 추진한 ‘제주 NEW 삼무형 주거환경관리사업(화북금산지구)’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 사업은 추진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창고도 덩달아 살아나게 됐다.

이승수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동아리 ‘청춘예찬’ 아이들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에게서 좀 더 진솔한 얘기를 들으려고 작업실을 택했다. 하지만 이승수 작가가 ‘청춘예찬’ 아이들에게 다른 걸 제안했다. 자신의 작업실이 아니라, 그가 진행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전시회에 와달라는 주문이었다.

청춘예찬 동아리 아이들이 화북에서 활동하는 이승수 작가(가운데)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미디어제주
청춘예찬 동아리 아이들이 화북에서 활동하는 이승수 작가(가운데)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미디어제주

그의 전시는 ‘숨비’라는 이름의 개인전이다. 2018년 12월 2일부터 2019년 1월 27일까지 그의 이름을 걸고 개인전을 진행했다. 장소는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다목적공간이다. 김창열미술관은 저지예술인마을에 있다. 화북에서 저지리로 가려면 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가는데만 1시간이다.

아이들에게 전시는 쉽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단체활동 때나 만날 수 있는 게 전시였다. 청춘예찬이라는 이름을 걸고 전시회에 나서는 건 처음이다. 아이들에겐 김창열미술관이라는 이름도 낯설었다. 그래도 1시간은 아깝지 않았다. 화북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직접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승수 작가는 청춘예찬 동아리 아이들을 반겼다. 우선은 자신의 개인전인 ‘숨비’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화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유를 풀어갔다.

“화북에 있는 작업실은 예전 4·3터랍니다. 또한 작업실에서 조금만 가면 화북공업단지가 있어요. 재료를 구하기가 쉽죠. 화북은 옛날 느낌도 많은 지역이죠. 제주시에 있는 마을이면서도 옛날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화북에서 활동하는 이유를 든 그는 자신이 화북에서 해오고 있는 일도 설명했다. 화북 서쪽 방파제는 ‘시가 있는 등대길’이 있다. 그는 공모사업을 통해 여러 작가들과 그 일을 했다고 들려줬다. 아이들은 “진짜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화북 방파제에서 본 작품을 만든 작가를 직접 만났으니 신기할 수밖에.

조소라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다. “힘들지 않느냐”고 아이들이 이승수 작게에게 물었다. 어떤 답이 돌아왔을까.

“목적성이 있으니까 힘들진 않아요. 자신이 뭘 잘하는지 찾는 게 중요해요.”

어쩌면 이 대답은 아이들에게도 맞을 듯싶다. 과연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청춘예찬 아이들은 뭘 잘할까. 서로 다르다. 이승수 작가는 그걸 찾아서 도전해보라고 한다. 이왕이면 ‘목적성’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어려움도 쉽게 극복하고, 어려운 일이라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에.

그렇다면 이승수 작가가 느끼는 화북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이 그걸 묻고, 작가에게 답을 듣고 싶어했다.

“섬에서 나가려면 비행기를 타야겠죠. 옛날은 배가 이동수단이죠. 화북은 3대 포구였고, 관문이었어요. 추사 김정희도 여기로 들어왔어요. 어떻게 보면 화북은 중심지였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 곳이랍니다. 해신사도 있고, 비석거리도 있고, 4·3터도 있잖아요. 너희들 나이 때는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역사를 알면 내가 뭘 하겠다는 계획을 짤 때 도움이 돼요. 선생님의 할아버지도 4·3 때 행방불명이 됐어요. 내가 처한 환경과 관심사가 작품이랑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이승수 작가를 만난 아이들이 김창열미술관 다목적공간에서 작가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승수 작가를 만난 아이들이 김창열미술관 다목적공간에서 작가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승수 작가가 4·3 때 화북지서 터에 자리를 틀고 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4·3이라는 인연이 화북으로 그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작가에게 화북은 덜 개발된 이미지가 가슴에 와닿는 모양이다. 그의 답을 더 들어본다.

“화북은 인공물이 덜 들어와 있어요. 도로가 생기면 이것저것 변하는데 화북은 다른 지역보다 많은 게 남아 있어요. 옛날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곳이 많은데, 기억의 흔적을 지우게 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간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게 돼 있어요.”

이승수 작가는 어릴 때 놀던 기억들이 작품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작가는 그래서 청춘예찬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어린 시절을 잘 보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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