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들의 배 만들기 실력은 아주 남달라
제주사람들의 배 만들기 실력은 아주 남달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01.12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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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청춘예찬’ 일기] <15> 옛날 배의 모습은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시 화북은 바다에 접해 있고, 더욱이 조선시대엔 가장 중요한 교통의 출발점이면서 도착점이었다. 출륙금지령이 풀리고부터는 조선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화북엔 조선소가 있었다.

조선소라면 어느 정도 규모였을까. 울산이나 거제에 있는 조선소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어마어마하게 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화북에 있었던 건 아니다. 가까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선을 주로 만드는 곳이 화북에 있었다.

예전에도 그런 조선소는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옛날 배는 어떤 모습을 했을지 궁금하다.

기록으로만 보면 제주의 배는 조선시대 다른 지역의 배와는 달랐다. 섬이었던 제주도는 이동수단이 배였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도 배였다. 신석기 유적을 보면 제주에서는 나오지 않는 흑요석으로 만든 화살촉 등이 발견되는데 모두 배를 통한 이동이었기에 가능했다.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 발굴된 토기와 같은 문양이 제주에서도 나오는데, 그 역시 이동이 가능한 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아리 학생들에게 묻겠는데 역사를 정리한 기록으로 기억나는 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조선왕조실록>을 알테고, 그렇다면 고려의 역사를 정리한 기록으로는 뭐가 있는지 알까. 답을 해주자면 <고려사>가 있고, <고려사절요>라는 기록물이 있다.

고려의 역사를 정리한 <고려사절요>를 들여다보면 제주사람들이 고려 조정에 배를 만들어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8번째 왕인 현종 3년(1012)의 기록이다. “탐라인들이 큰배 2척을 바쳤다”고 나온다.

큰배라면 얼마나 컸을까. 추측을 해볼까. <고려사>에 등장하는 왕건의 배를 참고로 해보자. <고려사>는 “태조 왕건이 100여척의 배를 다스렸고, 10여척의 큰배는 길이가 16보”라고 나온다. 1보는 6척으로 대략 180cm가 된다. 그렇다면 큰배 크기는 30m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예전 배의 크기도 그렇지만 하나의 선단을 이루고 이동을 하기도 했다. 고려 헌종이 즉위했을 때 기록을 보자. 1094년 기록인데 탐라에서 헌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대규모 사절단을 보냈다는 기록이 <동국통감>에 나온다. 이때 탐라에서 참석한 축하 사절단 규모는 194명이었다. 대규모 선단이어야 가능한 규모이다. 아니면 큰배도 보통 큰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조선시대에 섬과 해안을 돌면서 가장 귀찮게 했던 이들이 있다. 우리가 해적으로 부르는 ‘왜구’이다. 이들은 배를 이용해서 도둑질을 일삼았다. 물론 제주에도 이들이 많이 침범을 했다. 화북 해안으로도 들어왔던 이들이 왜구이다. 거로마을까지 피해를 입기도 했다.

왜구들이 사용하는 배는 가벼워서 순식간에 해안에 도착했다가 도둑질을 하고선 재빠르게 빠져나가곤 했다. 조선 조정은 이들이 골칫거리였다.

15세기 <성종실록>을 보면 제주사람들을 활용해서 여러 포구에 가벼운 배를 만들어서 왜구들이 도둑질하는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아무튼 제주사람들이 만든 배는 달랐던 모양이다. 일본인 학자인 다카하시 기미아키는 “조선의 배는 공격과 수비능력은 뛰어났지만 속도가 느려 왜인들의 배를 쫓아오지 못했다. 때문에 조선군은 제주사람들의 배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제주사람들의 배를 만드는 기술력을 높게 평가했다.

<탐라순력도>의 ‘화북성조’에도 배가 여러 척 등장한다. 그 배는 아주 날렵하다. 그림에 나오는 배는 정말 제주사람들이 만들었고, 육지부 배와는 달랐을까.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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