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과 함께 돌을 날라 포구를 만들었다는 그 전설
백성들과 함께 돌을 날라 포구를 만들었다는 그 전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01.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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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청춘예찬’ 일기] <11> 김정 제주목사

제주목사 임기 끝냈으나 화북포구에서 생명 다해
“화북 아낙네들 머리카락으로 운구할 끈 만들어”
현재 화북포구에 비석 있으나 비문은 녹아내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시 화북 이야기를 하려면 이 사람을 빼놓아서는 안된다. 중학생 아이들이 알지 모르겠다. 아니, 알 리가 없겠다.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도, 지역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김정 목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엔 김정 제주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련다.

제주목사 김정(1670~1737)의 호는 ‘노봉’이다. 중앙 정부와는 인연이 깊지 않다. 고작 3년간 중앙 정부에 근무를 했고, 나머지는 지역으로 돌아다녔다. 당시의 말을 빌리면 ‘외직’ 혹은 ‘한직’으로 불리는 그런 곳을 돌아다녔다. 그가 다녔던 곳은 함경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등지이다. 한반도의 끝에 해당하는 함경도 종성에서 목사로 일하기도 했다. 함경도를 한차례 근무한 것도 아니고, 여러 차례였다. 어찌 보면 유배지역에서 근무를 한 셈이 된다.

김정 목사는 제주에서도 근무를 했으니, 당시 조선의 북쪽 끝과 남쪽 끝을 오고간 인물이다. 요즘에 그렇게 인사를 하면 “보복인사를 당했다”고 난리도 아닐텐데.

비록 그는 중앙 정부가 아닌 주변을 돌아다녔으나 선정을 베푼 목민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제주목사로 와서는 도민들이 공부를 하게끔 서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지천 동쪽에 삼천서당을 지어서 공부를 시켰고, 목사 자신이 선생이 되기도 했단다.

예전엔 공부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수가문 출신들에게만 문이 열려 있었다. 서당을 통한 교육이 바로 일부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삼천서당은 좀 더 많은 이들이 공부를 하도록 문을 열어줬다고 보면 된다. <표해록>을 지은 장한철도 여기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김정 제주목사의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는 화북포구. 미디어제주
김정 제주목사의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는 화북포구. ⓒ미디어제주

그건 그렇고, 화북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김정 목사는 화북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당시 화북포구가 존재를 하고 있었지만, 김정 목사 때 방파제와 선착장이 제대로 정비됐다고 한다. <탐라순력도>에 담긴 화북포구는 김정 목사가 정비를 하기 전의 모습이다.

전설처럼 흐르는 이야기엔 김정 목사가 화북포구 공사를 벌일 때 직접 돌을 지고 날랐다고도 한다. 포구에 돌을 옮기는 작업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야 하기에 불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김정 목사는 도민을 마구 부려먹지 않고, 임금을 지급하며 일을 시키도록 했다고 전한다. 그게 돈은 아니라 곡식 형태이기는 했으나, 도민들을 함부로 대하려 하지 않으려는 김정 목사의 정성으로 읽힌다. 그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러지 않은 목사들도 있었겠지만.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김정 목사가 화북포구 공사를 마치고 제주를 떠나게 됐다. 이유는 제주목사 임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풍랑이 그치면 바다를 건널 계획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는 화북포구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제주에서 죽은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만들어낸 화북포구에서. 그때 김정 목사의 나이는 68세였다.

화북포구에 있는 김정 목사의 비. 그러나 비문이 녹아내려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제주
화북포구에 있는 김정 목사의 비. 그러나 비문이 녹아내려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제주

얼마나 안타까운 목숨인데, 그것도 타지에서 목숨을 잃다니. 김정 목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화북 일대에 퍼졌다. 죽은 그의 시신은 관에 싸여 고향으로 옮기게 된다. 그걸 ‘운구’라고 부른다. 운구를 할 때 화북지역의 아낙네들이 머리카락을 잘라서 끈으로 썼다고 한다. 김정 목사의 후손이 운구할 때 썼던 머리카락을 잘 보존하고 있었는데, 한국전쟁 와중에 잃어버렸다고 한다. 김정 목사 후손은 지난 1989년 화북에 들렀고, 화북포구에 와서 기념촬영도 했다. 김정 후손은 당시 일을 상상하며 전설처럼 내려온 머리카락 얘기를 전하고 갔다.

김정 목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야기로 만들어졌고, 화북포구에 비석도 설치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비문은 녹아내렸다. 김정 목사의 비가 있다는 흔적만 알 수 있으니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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