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이름에 아름다운 별이 등장하는 마을 맞죠
이름에 아름다운 별이 등장하는 마을 맞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12.28 10:5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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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청춘예찬’ 일기] <8> 언제부터 화북으로 불렸나

‘별도’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쓰인지 1700년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화북’이라는 이름 등장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동아리 ‘청춘예찬’은 겨울방학 중에도 활동을 한다. 학기 중엔 이런저런 일 때문에 빠지는 일이 많지만, 방학은 뭔가 ‘특별한’ 일을 꾸며도 좋을 듯하다. 어쩌면 더 알찬 일이 속속 터질 그런 기분이 든다.

문제는 알 걸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청춘예찬 활동을 하며, 제주시 화북 지역을 돌아보고는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왜 제주동중이 화북동에 있는지도 아이들은 궁금하다. 더구나 화북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그래, 화북이라는 이름을 우선 뒤져보자.

화북은 여러 이름이 쓰인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부르는 지명인 화북이 있고, ‘별도’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보다 더 낯선 이름으로 ‘공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역사를 거슬러거슬러 올라가면 화북이라는 이름이 먼저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만나는 이름은 ‘별도’이다. 고려 충렬왕 26년(1300)에 탐라를 동서로 나누고 10개의 현을 둘 때, ‘별도현’이 등장했다고 한다. 청춘예찬 아이들이 뛰노는 이 지역에 대한 첫 이름은 무려 1700년 전에 등장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르는 화북이라는 이름은 언제쯤 나왔을까. 제주목사로 와 있던 이원진 목사가 쓴 <탐라지>에 ‘화북포’가 등장을 한다. 화북포는 화북포구를 말한다. 1653년에 나온 책에 그렇게 등장을 했다면, 그 전부터 화북이라는 이름이 쓰인 건 분명하다. 제주목사는 제주도 전체를 다스리는, 지금으로 따지면 도지사였기에 그가 쓴 책에 ‘화북’을 넣었다면 관리들은 ‘별도’보다는 ‘화북’이라는 이름을 썼겠지.

화북은 동이름이기에 친숙하고, 별도라는 이름도 그런 셈이다. 화북에 있는 오름이름이 별도봉이니 더 그렇다. 가장 궁금한 건 ‘공북’이라는 이름이다. 대체 언제 그런 이름이 쓰였다가 사라졌나. 기록을 마구 훑어봤다. 그랬더니 1879년부터 1907년 사이에 ‘공북’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채 30년도 쓰이지 않은 이름이다. 왜 그런 이름을 썼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공북은 필요없어”라고 말하면 안되겠지. 그것도 역사에 등장하는 이름 중 하나이니까.

그렇다면 아주 오랜기간 불리고 있는 별도라는 이름과 지금 불리는 화북이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하다. 그것도 알아보자.

별도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연구하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이별을 하기에 ‘별도’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별도’를 한자로 쓰면 ‘이별할 별(別)’과 ‘칼 도(刀)’가 된다. 조선시대엔 제주사람들은 함부로 육지로 가지 못하기에 화북포구 등을 이용해야 했다. 아무래도 이별하는 포구였기에 그렇게 한자로 달았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는 별도봉. 베리오름이라고도 불린다. 벼랑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하늘에 있는 별을 뜻한다고도 한다. 미디어제주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는 별도봉. 베리오름이라고도 불린다. 벼랑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하늘에 있는 별을 뜻한다고도 한다. ⓒ미디어제주

제주어로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벨’이라고도 한다. 별도봉이 그런 모양이다. 마치 칼로 자른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벨도’라고 부르던 이름에 한자를 붙이면서 ‘별도’가 됐다고도 말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이건 칼과 관련이 된다. ‘이별할 별(別)’의 한자를 뜯어보면 칼이 2개나 보인다. ‘칼 도(刀)’에도 칼이 있으니 ‘별도’라는 한자엔 무려 3개의 칼이 존재한다. 아주 날카로운 별도봉의 형세는 마을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면서, 이걸 방지하려면 지명에 ‘칼 도’를 3개를 써야 한다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별도’라는 한자를 썼다고 한다. 이건 좀 믿기엔 그렇다.

사실 한자로는 ‘별도’라고 말하지만, 지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벨도’라고 하거나 ‘벨뒤’라고 많이 불렀다고 한다. ‘벨’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말하기도 한다. 다른 의미보다는 별이 제일 좋지 않나. 낭만적이어서.

그럼 별이라는 뜻을 음미하면서 별도에 다가서보자. 조선시대엔 제주목사가 실질적인 제주도 정치를 맡았으나, 그 전은 달랐다. 제주도의 으뜸 정치인은 ‘성주’라고 불렸다. ‘성주’라고 할 때 ‘별 성(星)’이라는 한자를 썼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성주라는 아주 귀한 사람이 있는 뒤”라는 뜻으로, ‘벨뒤’라고 써다고 한다. 나중엔 ‘벨뒤’가 ‘벨도’로, ‘벨도’는 한자를 입혀서 ‘별도’가 됐다는 설명이다. 그럴싸한 설명이다.

그러고 보면 별도봉의 이름도 베리오름이라고 했고, 화북천도 ‘베릿내’라고 부르곤 했다. 이런 이름들이 전부 별이었으면 참 좋을텐데.

화북이라는 이름은 ‘벼 화(禾)’를 쓰긴 하지만 이 역시 마을사람들이 부르던 ‘별뒤’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실제 벼를 재배해서 그랬다는 설명도 있긴 하지만.

지명이 어떻게 탄생을 했는지를 캐내기는 무척 어렵다. 그래도 유추를 해보자면 한자가 먼저 만들어진 건 절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지명은 한자가 아니었다. 지식인들이 그걸 옮기면서 한자로 바꾸지 않았을까. 아~ 예전부터 쓰이던 고유어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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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룡 2019-01-25 14:50:21
① 고려 충렬왕 26년(1300)에 이르러 원나라는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설치하여 몽고의 직할지로 바꾸었다. 또 같은 해에 동·서 도현(東西道縣)을 설치하였다. 이에 따른 속현(屬縣)으로는 동도 도현에는 신촌현(新村縣)·함덕현(咸德縣)·김녕현(金寧縣)·토산현(兎山縣)·호아현(狐兒縣)·홍로현(洪爐縣)과 서도 도현에는 귀일현(貴日縣)·고내현(高內縣)·애월현(涯月縣)·곽지현(郭支縣)·귀덕현(歸德縣)·명월현(明月縣)·예래현(猊來縣)·산방현(山房縣)·차귀현(遮歸縣) (李元鎭, 1653, 『耽羅志』 「濟州-建置沿革」, 忠烈王 二十六年庚子 設東西道縣 縣村卽貴日高內涯月郭支歸德明月新村咸德金寧狐村烘爐猊來山房遮歸等地也) 등이 소속되어 있다.

강창룡 2019-01-25 14:50:59
② 조선 태종 16년(1416) 5월 6일에 제주목(濟州牧)에는 동도 도현의 신촌현 · 함덕현 · 김녕현과 서도 도현의 귀일현 · 고내현 · 애월현 · 곽지현 · 귀덕현 · 명월현을 소속시켰다. 동도의 현감(縣監)은 정의현(旌義縣)으로 본읍(本邑)으로 삼고, 토산현 · 호아현 · 홍로현 3현을 소속시키고 서도의 현감은 대정현(大靜縣)을 본읍으로 삼아 예래현 · 차귀현 2현을 소속시켰다(『太宗實錄』 太宗 十六年 五月 丁酉 願自今本邑則屬以東道新村縣咸德縣金寧縣 西道貴日縣高內縣厓月縣郭支縣歸德縣明月縣 東道縣監以旌義縣爲本邑 屬以兔山縣狐兒縣洪爐縣等三縣 西道縣監以大靜縣爲本邑屬以猊來縣遮歸縣等二縣).

강창룡 2019-01-25 14:49:51
‘고려 충렬왕 26년(1300)에 탐라를 동서로 나누고 10개의 현을 둘 때, 별도현이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 충렬왕 26년(1300)에 동·서 도현(東西道縣)을 설치할 때에 17개 속현 중에 별도현은 없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