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열전(奇人列傳)
기인열전(奇人列傳)
  • 홍기확
  • 승인 2018.12.28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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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8>

나는 두 명의 기인(奇人)과 살고 있다. 두 명의 기인 중 어느 누가 뛰어난가는 용호상박, 난형난제, 백중지세, 막상막하다.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머리를 감으면서 노래도 부른다. 똥 쌀 때도 노래를 부르며, 물을 먹으러 가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사실 이 중 가장 대단한 능력 및 내가 부러워하는 능력은, 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게 가능해?

아이와 한 끗 차이인 아내. 노래를 부르며 책을 읽는 아이 옆에서 책을 읽는다. 책 읽는 아내는 건드리면 안 된다. 말해도 듣지 못할뿐더러 말시키면 표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반전이 있다. 책을 읽다가 벌떡 일어나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후다닥 돌아와 또 책을 읽는다. 그러다 종종거리며 집안일을 하다가 잽싸게 또 책을 잡는다. 아이나 아내나 책을 읽다가 챕터가 끝나지 않으면 책을 놓지 않는다. 똥도 참는다. 잠도 안 잔다.

이게 가능해?

그럼 나는 이때 무엇을 할까?

보통은 구경을 하거나, 딴생각, 잡생각 등 멍때리기를 한다.

가령 오전에 아내가 말한 놀이시설의 길이를 예측하다 원주율에 관련된 딴생각을 하는 식이다.

원주율은 원의 둘레다. π(파이)라고 표시하며, 흔히 우리는 3.14로 단순하게 외우고 있지만, 3.14159265358979323846…로 끝없이 계속되는 소수다. 이에 많은 과학, 수학자들이 이 신비를 풀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19세기 후반 영국 수학자 윌리엄 생크스는 평생 원주율의 소수점 자리를 707자리까지 계산했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는 528자리에서 틀렸다. 만약 생전에 알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다.

컴퓨터가 등장한 1973년에는 100만 자리까지 계산했는데 반복되는 숫자를 발견하지 못했고, 최근까지 10조자리까지 계산했는데도 신비는 풀리지 않았다.

수학이 정확하고 논리적이라고? 아니다. 정확은 하나의 예외라도 없어야 한다. 숫자로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원주율이 있는 한, 수학은 숫자놀음일 뿐이다. 뭐 이런 식이다.

한편 가장 좋아하는 딴 생각은 숫자 2를 2로 나눈 값을 암산으로 몇 회까지 계산할 수 있는지 전의 최고 기록과 경쟁하는 것이다. 가령 2를 2로 나누면 1, 다음 0.5, 0.25, 0.125, 0.0625, 0.03125, 0.015625, 0.0078125, 0.00390625, 0.001953125…. 뭐 이런 식이다.

어영부영 한 명의 기인(奇人)이 더 탄생했다.

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와, 책을 읽다가 벌떡 일어나 종종거리는 아내를, 이 둘을 구경하면서 딴생각을 하는데 더하여 암산놀이를 하는 게 가능해?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무협지처럼 동사서독, 동방삼협, 무림사패, 오악검파, 강남칠괴, 구파일방처럼 지극히 다른 사람이 모여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다. 함께 묶어서 불리지만 고유한 문화, 습성은 섞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흥얼거리며 책을 읽지 못하고, 집중해서 책을 몇 시간씩 읽지 못한다. 똥도 참으며 책을 끝까지 읽다가, 마지막장을 덮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는(심지어 노래도 부르며!)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졸립다면서도 책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 끝까지 읽다 장렬히 전사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아이는 책 다섯 권을 15분 단위로 바꿔가며 읽는 나를 이해 못하고, 아내는 1년에 500권의 책을 읽지만 끝까지는 열권도 못 읽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과. 껍질과 과육, 씨앗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과육만 먹지만 과육을 사과라고 하지는 않는다. 세 가지가 모두 있어야 한다. 가족도 어느 한 사람만 있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 뿐이라면 가족이 아닌 ‘가구’, ‘1인 가구’에 불과하다.

오늘도 기인 삼인방은 한 공간에서 각자 딴 짓을 하고 있다.

일상의 풍경은 일출이 돋는 극적인 순간, 태양이 주인공인 시점이 아니다.

오히려 제 멋대로 배치된 나무와 풀, 어정쩡한 곳에 떠 있는 태양, 그 안에 반바지로 산책을 하는 몇 몇 사람이 산만하게 배치된 장면이다.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명품이나 주인공이 아니지만,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배치된 그럭저럭 괜찮은 장면이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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