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기억 담긴 건축물이 또 사라집니다”
“4·3의 기억 담긴 건축물이 또 사라집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12.26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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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생각이 중요하다] <3> 도시재생을 떠들어봐도

역사성 지닌 제주시 원도심 옛 제주극장 결국 철거
1947년 제주도내 좌·우익 단체들 제주극장서 결성
역사를 한 몸으로 기억…서청 지부도 여기서 탄생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도심엔 포인트가 되는 건축물이 있다. 작품성으로 중요한 건축물이기도, 작품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도 역사적 상징이 아주 강한 건축물도 있다. 그런저런 이유로 건축물은 도심에 들어서는 순간 주목을 받는다.

사라지는 건축물도 있고, 사라졌다가 새로 만들어지는 건축물도 있다. 주목을 받는 건축물이 사라지기도 하고, 주목 대상은 아니었는데 행정이 무던 애를 쓰면서 복원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건축물을 바라보는 생각도 사람마다 다르다. 한쪽에서는 보존 가치가 높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땐 건축물의 작품성을 논하기보다는 건축물이 지닌 역사성에 관심을 기울이면 된다. 보존해야 할지, 그렇지 않아야 할지는 바로 건축의 역사성에 담겨 있다.

논란이 많았던 현대극장이 사라진다.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던 건축물이다. 제주극장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건축물이 현대극장이다. 단층 목조건축물이던 제주극장은 1960년대 들어오면서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됐다.

현대극장은 제주시 원도심에선 하나의 포인트가 되는 건축물이다. 행정이 적극적으로 이 건축물을 매입하려 애썼다. 하지만 행정은 손을 놓고 말았다. 행정이 손을 놓자 개인이 뛰어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곳이다. 바로 아라리오뮤지엄이다.

왜 아라리오뮤지엄이던가. 행정이 사들였으면 좋았을텐데. 아라리오뮤지엄이 현대극장을 매입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행정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아라리오뮤지엄은 현대극장을 사들여 일부 입면은 그대로 살리면서 건축물을 리모델링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건축주가 값을 높게 매긴다는 게 이유였다. 아울러 건축물은 두 필지 위에 세워진데다, 필지의 주인이 달라서 현대극장을 매입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랐다는 후문이다. 구체적 액수를 밝히기는 그렇지만 10억여원이다.

현대극장 내부는 옛 극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 중요한 건 역사성이다. 현대극장의 전신은 제주극장이라고 앞서 설명했다. 제주극장으로 운영되기 전에는 권투체육관인 조일구락부가 있던 곳이다.

조일구락부, 즉 제주극장의 역사성을 만나려면 1947년으로 가야 한다. 그해 1월 12일 좌파진영의 청년 조직인 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이 여기서 결성된다. 한달 후인 2월 23일은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도 결성된다. 민전 결성 때는 당시 박경훈 도지사가 참석해서 격려사를 할 정도였다. 좌파세력을 중심으로 3.1운동기념 투쟁 제주도위원회를 구성해 군정당국과 신경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급박하 돌아가던 제주 상황을 제주극장은 몸소 체험을 하고 있었다.

더더구나 1947년 11월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악명’ 그 자체였던 서북청년회 제주도지부가 만들어진다. 11월 2일 서북청년회 결성대회가 열린 곳이 바로 제주극장이다. “울던 아기도 울음을 그친다”고 하던 바로 그 ‘서청’이 여기에서 탄생했다.

이렇듯 제주극장은 4·3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좌익과 우익을 넘나들며 손님들을 맞았다. 각종 주요 행사는 여기서 열렸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옛 제주극장은 4·3의 기억이 스민 곳이다. 올해가 4·3 70주년이 아니던가.

철거를 기다리는 옛 제주극장. 미디어제주
철거를 기다리는 옛 제주극장. ⓒ미디어제주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현대극장, 아니 옛 제주극장은 영원히 사라진다.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면 우린 “여기에 제주극장이 있었지”라며 억지로 기억을 소환해야 한다. 4·3 70주년이라고 그렇게 떠들었다면 4·3과 관련된 온전한 건축물 하나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우린 4·3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 둘 없애왔다. 제주경찰서, 미군청정 등이 있던 자리는 제주목관아를 만든다면서 사라졌다. 9연대 헌병대, 9연대 정보과, 인민위원회 등 4·3의 주요지점은 한의 터로만 기억된다. 제주극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아쉽다.

역사는 기억이 되지만, 그 기억을 더 잘 이해시키는 매개체는 건축물이다. 4·3 70주년인데, 사라지는 극장의 기억을 바라보면 정말 올해가 4·3 70주년이 맞긴 한지 안타깝다. 이걸 제주 행정의 수준으로 봐야 할까. 한짓골 아트플랫폼 사업엔 현대극장 매입의 10배에 달하는 돈을 쓰려 안달인데, 4·3의 기억이 담긴 현대극장은 매입절차가 까다롭다면서 손을 놓는 행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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