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사교육 없이 영어 실력 쑥쑥! 들엄시민 예산 지원해주세요"
"사교육 없이 영어 실력 쑥쑥! 들엄시민 예산 지원해주세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12.12 22: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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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들엄시민 예산 전액 삭감 예고한 도의회..."우려의 목소리"
들엄시민 효과 톡톡히 본 학생·학부모의 바람은? "들엄시민 지원"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많은 이들이 지방자치를 논한다. 정권이 바뀌며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방자치를 강조하고, ‘지방분권 강화’를 말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제주도는 일찍부터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이 시행되어, 일반 자치단체보다 한층 고도화된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교육’은 어떨까?

지방자치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에는 교육부의 권한을 각 시, 도에 이양하려는 교육자치의 이념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방자치, 교육자치의 성격을 띤 제주도만의 특별한 교육과정이 있다. 바로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의 핵심 공약이기도 한 ‘들엄시민’ 사업이다.

들엄시민이란, 제주어로 ‘듣다 보면’을 의미한다. 영어 사교육비에 대한 학부모 부담을 덜고 학생들이 영어를 즐기며 학습할 수 있는데, '학부모와 학생이 주체가 되어 학습하는 영어교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들엄시민은 단순한 주입식 수업이 아니다. 집에서 영어로 된 DVD를 자막 없이 시청하는 것. 이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너무 간단하다고? 그런데 상당수가 그 효과를 체감한다.

지역 학부모들의 정기적인 모임과 동시에 각 가정에서 진행되는 ‘들엄시민’은 타 시·도에서도 모범 사례로 손꼽히며 EBS 특집방송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들엄시민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2019년 제주특별자치도 교육비 특별회계 예산안’에서 들엄시민 관련 예산 6240만원이 전액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도교육청에서는 ‘영어 학원에 다니지 않는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라는 학부모의 걱정을 덜기 위해 '들엄시민 멘토'를 지원 중이다. 또한, 원어민과의 소풍 행사와 각 학교에 영어 콘텐츠 DVD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도움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들엄시민 예산 지원이 불가능해진다면, 이러한 지원 또한 끊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들엄시민 사업 예산의 ‘전액 삭감’ 소식에 학부모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관련 논평을 발표하면서까지 '들엄시민'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이들에게 직접 물었다.

“들엄시민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무엇인가요?

 

“들엄시민 덕분에 외국인과의 대화가 즐거워요!”
-강주연 학생 사연

신성여자중학교 1학년 강주연 학생은 올해로 들엄시민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어머니의 반강제(?)로 들엄시민을 시작했다는 그는 처음에는 걱정이 꽤 많았단다.

“처음 들엄시민을 접했을 땐, 그 방식과 교육관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당시 학원에 다니며 영어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엄마는 ‘자막 없이 영화보기’를 하면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믿을 수가 없었죠.”

강주연 학생은 ‘믿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들엄시민을 시작했다. ‘친구들의 영어 실력은 이미 자신보다 한발 앞서 있는데, 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어릴 적 원어민과 화상영어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너무 어려워서 ‘나는 절대 외국인과 대화를 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요, 들엄시민을 접한 지금은 원어민과 대화하는 것이 즐거워요. 두렵지도 않고요.”

처음부터 들엄시민에 익숙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막 없이 미국 영화를 보고 있으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지루하기도 했다.

“엄마는 ‘언젠가 들린다’면서 TV 앞에 저를 앉히고 영화를 보게 했어요. 당분간은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단어 하나가 귀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 단어는 제가 알고 있었던 단어였어요. 그동안 들리지 않던 단어인데, 반복해서 시청하다 보니 귀가 트인 거죠.”

강주연 학생은 들엄시민 덕분에 영어 회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고백했다. ‘학교 성적’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언어’라는 매개체로 영어를 받아들일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실력이 길러졌다고 말이다.

“저희 언니는 미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면서, 농담을 이해하고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수준이에요. 저 또한 귀가 트이고 난 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요. 문장에서 모르는 단어의 뜻을 유추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제는 모르는 단어도 앞뒤 문장의 맥락을 파악해서 뜻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가 추측한 단어들이 모두 ‘정답’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맥을 파악해 단어의 뜻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은 ‘단순 암기’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영어 회화 실력뿐 아니라 독해 능력이 요구되는 고난도의 수준에 속한다.

“‘나는 영어로 된 영화, 자막 없이 보는데?’라며 친구에게 자랑한 적도 있어요. 들엄시민이 곧 저의 자부심이 된 거죠.”

강주연 학생은 들엄시민 교육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바로 일부 교사의 ‘들엄시민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들엄시민으로는 영어 실력을 키우기 어렵다고, 영어 단어를 더 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그리고 영어 콘텐츠, DVD에 대한 학교의 지원이 아쉬워요. 들엄시민 학생들을 위해 들여온 DVD인데, 영어 음성 지원이 되지 않아 볼 수 없었던 적이 있어요. 다양한 종류, 양질의 DVD가 학교에 구비된다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영어는 ‘언어’다”라고. 5년간 들엄시민을 계속해온 결과, 들엄시민은 영어 사교육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교육 방식이라고.

“들엄시민이 저 혼자 진행하는 교육이라면 금방 싫증이 났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같은 초등학교의 들엄시민 친구를 알게 되어 서로 경험도 공유하고, 계속할 수 있었어요. 더 많은 사람이 들엄시민에 대한 효과를 알고,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들엄시민을 접한 11살 우리 아이, 벌써 영어로 듣고 말해요”
-김미정 학부모 사연

삼양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김미정씨는 들엄시민 교육에 대한 지원이 어려워질 전망이라는 소식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미정씨는 ‘들엄시민’을 접하기 전, 자녀의 영어교육을 위해 여러 학원을 찾아다녔다.

“사교육을 진행해봤지만, 마음에 드는 학원을 찾지 못했어요. 저는 회화 위주의 수업 방식을 원했는데, 대부분 문법 위주로 수업하더라고요.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무렵 들엄시민을 알게 되었고,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김미정씨는 “외국어를 배워도 막상 외국인 앞에서 입을 떼지 못하는 아이가 많다”라면서 “들엄시민 교육은 아이들의 입을 열게 한다”라고 자신했다.

“들엄시민을 알게 된 후, 당장 교육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멘토 선생님께서 ‘아이가 너무 어리니 3학년 때부터 교육을 시작하고, 지금은 일단 모국어인 한국어 그릇을 키우도록 하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미디어 끊기’를 시작했죠. 집에 오면 TV부터 켜기 바빴던 아이의 TV 시청을 금지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들엄시민 멘토 교사의 조언에 따라 ‘미디어 끊기’를 시작한 지 3주째 되는 날, 아이는 책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는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아 먼지가 쌓인 책을 스스로 꺼내 읽기 시작했다.

“멘토 선생님 말씀으로는, '모국어 그릇이 커야, 외국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생긴다'라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아이가 3학년이 되어 들엄시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외국어로 대화를 하더라고요.”

김미정씨가 아이를 위해 했던 일은 들엄시민 학부모 모임에 나가는 것.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를 위한 영어 DVD를 빌려 오는 것. 단 두 가지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아이의 영어 교육에 최고의 대안을 만들어냈다.

“아이가 매일 5분씩, 잠깐이라도 영어 DVD를 볼 수 있도록 습관을 들였어요. 그러자 5분이 10분이 되고, 지금은 1시간 동안 아이 스스로 영어 DVD를 시청한답니다. 영어 실력이요? 학급에서 공개수업을 할 때면, 그 누구보다 자신있게 손을 들고 영어로 말을 해요. 놀라운 변화죠.”

 

“아이는 ‘학습하는 법’을, 부모는 ‘아이를 믿는 법’을 배웁니다”
-문정하 학부모 사연

‘자막 없이 영어로 된 영상 보기’ 교육을 7년째 해온 문정하씨는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 세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아이가 셋인 만큼 교육에 대한 관심과 사교육에 대한 고민도 컸다.

“들엄시민은 부모가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교육이에요. 부모는 영어 미디어를 자막 없이 아이와 같이 봅니다. 독서도 같이 하죠. 아이들은 서서히 부모를 믿고 따라옵니다. 부모는 아이를 기다릴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고, 아이는 부모가 이끄는 교육을 통해 기존 사교육에서 느낄 수 없는 신뢰와 책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문정하씨는 들엄시민을 혼자 진행했다면, 지금처럼 오래 해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뜻을 함께하는 다른 학부모와 함께했기에, ‘들엄시민’을 택한 자신의 선택을 믿고 나아갈 수 있었다.

“사교육비가 아까워서 들엄시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죠. 하교해서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어두운 밤이 되는 현실. 늦은 저녁을 먹고 방으로 각자 들어가버리는 가정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들엄시민을 통해 이러한 가정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이 교육뿐 아니라 가정의 행복도 가져다주는 거죠. 예산을 잔뜩 들여서 진행하는 다른 교육 방식보다 들엄시민은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교육 방식이에요.”

문정하씨의 세 자녀는 “학교에서 하는 영어는 어렵지 않다”라고 말한다.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이미 들엄시민을 통해 영어와 친해진 아이들은 영어 과목을 ‘부담 없는 과목’으로 손꼽는다.

“들엄시민 덕분에 아이가 영어는 어려워하지 않지만, 수학과 과학은 어려워해요. 하지만 따로 사교육을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이 또한 아이가 스스로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부모는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교육 없이 아이의 영어 실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들엄시민은 충분히 매력적인 교육 방식이지만, 장점은 또 있었다. 아이가 ‘혼자 하는 학습법’을 배우고, 부모는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미디어제주>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내년도 들엄시민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된다면, 멘토 활동비나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그는 “동아리 활동 등 학부모 자체 모임을 막는 것은 아니”라면서 “원래 각 가정에서 이뤄지는 들엄시민인 만큼, (예산 지원이 중단되더라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입장은 다르다.

한 학부모는 “멘토 선생님의 교육이 없다면, 학부모 모임 또한 흐지부지될 확률이 높다”라면서 “‘들엄시민’에 대해 잘 모르는 학부모들이 가정에서 교육을 지속하려면 도교육청 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2019년 제주특별자치도 교육비 특별회계 예산안’에 대한 의결은 14일 제주도의회 본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이미 전액 삭감이 예고된 들엄시민 예산이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 들엄시민을 진행하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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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엄시민 응원합니다 2018-12-13 07:53:56
들엄시민을 꼼꼼하게 취재하고 학부모와 학생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경쟁과 성과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들엄시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