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전문]노무현 대통령님께 드리는 호소문
[전문]노무현 대통령님께 드리는 호소문
  • 미디어제주
  • 승인 2007.09.12 17: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17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차기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 모습들을 보며 5년 전 떨리던 목소리로 당선 소감을 말하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때에 대통령님께서는 말씀 하셨습니다. “원칙과 정의가 분명히 자리 잡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습니다.” 가난했지만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항상 대의를 걷던 대통령님의 말씀이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리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제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분명한 건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통령님! 제주도 서귀포시에 강정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66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고 언제나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서 제주도의 보석과 같은 곳이라 하여 예로부터 ‘제일강정’으로 불려 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마을 발전을 위해 서로가 한 마음이 되었고, 강정마을은 정말 평화스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강정마을은 너무나 참혹하게 되었습니다.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형제간에, 친척간에, 친구간에, 선후배간에, 그리고 이웃간에 서로 찢어지고 갈라져서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4.3의 갈등을 치유하는 데 60년이 걸렸습니다. 앞으로 해군기지건설을 강행한다면, 강정마을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데 이보다 더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400여년 동안 한 식구처럼 살아왔던 우리 마을이 그처럼 반목과 갈등 속에 100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러한 시련과 고통을 주었는지 하늘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그래서 지금 절실한 아주 절실한 마음으로 대통령님께 고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민주적 절차가 무엇이냐고 초등학생인 딸이 물어봅니다. 서로의 다른 뜻을 모아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라고 저는 딸에게 말합니다.

불행히도 강정 마을에는 이러한 민주적 절차가 없었습니다. 해군기지 문제로 화순마을에서 5년, 위미마을에서 2년 동안 격렬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정에서는 불과 며칠만에 몇 사람의 은밀한 결정으로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되었습니다.

제주도와 해군에서는 여론조사를 거쳐 내린 정당한 결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여론조사에 문제점이 있었음을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강정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일부 주민들이 반대하는 걸로 알고 있을 겁니다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저희 마을에서 주민들이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비밀투표를 하여 찬반 의사를 물은 결과 절대 다수가 반대하고 있음(725명 참여, 36명 찬성, 680명 반대, 9명 무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지금의 우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당신께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1987년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위해 걸어갔던 당신이기에, 대우조선 어느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눈물로 절규하던 당신이기에, 어처구니없는 탄핵을 당하며 남모르는 아픔 이겨낸 당신이기에 우리의 마음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면 대통령님께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한민족 공동체임을 거듭 확인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통령님께서 제주섬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실 걸로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께서는 불행히도 우리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고 안보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다며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보다 믿었던 대통령이었기에 우리 강정주민들은 슬픔을 넘어 분노를 느꼈습니다. 지금 국방부와 해군, 그리고 제주도와 서귀포시에서는 정부의 뜻이라며 우리를 회유하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국책 사업이라 하나 민심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허울 좋은 “주민 동의”란 말을 하며 상식 이하의 방법으로 결정하여 몰아붙일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제주도가 세계 자연유산의 섬으로 된 것을 치하하면서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보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타가 공인하는 제주도의 보석인 강정마을은 우리나라의 보석중의 보석입니다. 부디 강정마을을 우리나라의 최고의 보석답게 사용하십시오. 

해군기지가 강정에 들어서는 날, 제주도는 더 이상 평화의 섬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름도 역사에 부끄럽게 기록될 것이 우려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당신이 보여주었던 양심과 올바른 길을 마지막으로 보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4개월의 시간은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은 당신이 퇴임한 후에도 계속 논의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어려운 길이 기다리고 있어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으며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역사가 말해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해군기지 반대투쟁에 우리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제 추석 명절이 다가 옵니다.  조상의 은덕과 하늘에 감사하며 가장 즐거워야 할 추석에 가장 슬퍼 해야만 하는 곳이 있습니다. 친지, 이웃, 형제, 자매 들이 갈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그곳은 바로 강정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코스모스가 가을의 풍경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 맑은 가을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다시 평화롭고 아름답던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해군기지 철폐’라는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대통령님께서 그래도 몰라준다면 하늘이여, 우리의 뜻을 이루게 해주소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