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읍 상가리 강옥춘씨 가옥에서 만난 기억 이야기
안거리는 제주 전통가옥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집이란 무엇일까. 그 공간에 들어가서 살기만 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집은 기억이 실려 있는 유기체이다.
제주국제화센터와 제주마을미디어협동조합이 제주시 문화도시 조성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다정 마실 가게마씨’ 프로그램. 11월 한달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모두 5개 팀으로 나눠 진행된다. 그런데 자신의 어머니가 살았던 집을 보여주겠다는 이가 나타났다. 제주도생태연구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강옥춘씨였다.
전화를 건 이유는 있었다. ‘모다정 마실 가게마씨’ 프로그램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서였다.
18일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모다정 마실 가게마씨’를 진행하는 4팀에 강옥춘씨 부부도 참여했다.
“안거리는 20년간 사람이 살지 않았어요. 형태만 유지를 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길래 전화를 했어요.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해서요.”
강씨의 어머니는 올해 2월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흔아홉까지 사셨다. 강씨의 어머니는 7남매를 키웠다. 잘 컸고, 모두 잘 됐다고 한다. 터가 워낙 좋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현재 이 터는 강옥춘씨 소유로 돼 있다.
“당분간 집을 놔두고 싶었어요. 옛날 기억을 생각하면 (집을 부수는 걸) 마음이 허락을 하지 않았어요. 보존가치가 있는지도 알고 싶었고요.”
사람이 오래 살지 않은 안거리는, 쓰지 않은만큼 낡았다. 강씨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안거리가 크다면서 밖거리로 옮겨 살았다고 한다. 안거리는 관리는 되지 않았지만 제주가옥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상방과 큰구들, 작은구들, 고팡도 그대로였다. 챗방은 아주 넓다. 강씨는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관리를 맡기겠다고 했다.
제주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기대려 하지 않는다. 강씨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흔아홉의 나이였지만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다. 몸이 불편했기에 멀리는 나가지 못하지만 마당에 텃밭을 일구며 콩이나 참깨 등을 키우기도 했다. 오전·오후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았으나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기대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에 유입되는 인구가 늘면서 상가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마차가 다닐 정도로 큰 길이었는데 어느 순간 길이 아주 작아졌다.
“예전에 마차가 다니던 길이 있었죠. 좁은 길을 넓혀서 쓰기도 했어요. 이웃과 협의를 해서 길을 넓혀서 썼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마차가 다니던 길이 절반으로 줄었답니다. 외지 사람이 들어오면서 지적도만 기준으로 하다 보니 그렇게 돼 버렸어요. 아버지가 예전 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돌아가셔서 어딨는지 알 수 없네요.”
어쩌면 제주의 옛 공동체가 변화하는 모습이 상가리에서도 감지된다. 그럼에도 강옥춘씨는 어떻게든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7남매의 기억이 오롯이 남은 옛집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