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연중 노동…포탄 떨어지는 곳에서도 일했다”
“일제 강점기 연중 노동…포탄 떨어지는 곳에서도 일했다”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8.11.07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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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한경면 출신 91세 강공남씨
7일 ‘제주 집단소송 설명회’서 당시 상황 증언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주는 콩밥도 모자라 집에서 가져간 미숫가루를 물에 타 먹으면서 노동 일을 했고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서도 일을 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에 징용돼 일을 한 '강제징용 피해자' 강공남(91)씨의 말이다.

강씨는 7일 제주미래컨벤션센터 3층에서 열린 '제주도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집단소송 설명회'에 참석해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 제주본부(본부장 최주연) 주최.주관 '제주도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집단소송 설명회'가 7일 오후 제주시 소재 제주미래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미디어제주
(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 제주본부(본부장 최주연) 주최.주관 '제주도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집단소송 설명회'가 7일 오후 제주시 소재 제주미래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미디어제주

(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 제주본부(본부장 최주연) 주최 및 주관으로 열린 이날 설명회는 지난 달 30일 대법원으로부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 이후 제주서 열린 첫 설명회다.

강 씨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고향을 한경면 조수1리라고 소개하며 "증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입을 열었다.

강씨는 "(일제 강점기) 당시 모슬포비행장(알뜨르비행장)과 제주시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일을 했다"며 "한 부락에서 몇 십명씩 조를 짜서 농번기 농한기 구분없이 연중 계속 일을 했다"고 토로했다.

강씨가 강제동원에 처음 나선 시기는 1943년. 우리 나이로 16살때였다.

강씨는 "그 때 아버지가 노무자로 모슬포에서 일을 하는데 농번기가 돼 집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 대신에 모슬포에서 일을 했다"며 "주는 밥은 순 콩밥인데 그 마저 양이 모자라 집에서 가져간 미숫가루를 물에 타 한 사발씩 먹으면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한 일은 비행기가 앉는 집(격납고)을 만드는 것"이라며 "순전히 인력이다. 곡괭이로, 삽으로 비행기 앉는 집을 지었다"고 이야기했다.

1943년 16살 나이로 아버지 대신 강제동원 처음 나서

18살까지 3년 간 정뜨르‧모슬포 비행장 공사장서 노동

“삐라로 알았는데 땅에 떨어지자 터져…그런데서 일해”

7일 열린 '제주도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집단소송 설명회'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강공남(91)씨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7일 열린 '제주도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집단소송 설명회'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강공남(91)씨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강씨는 다음 해에도 아버지를 대신해 동원에 나섰다. 이번엔 제주시에서 노동을 했다.

강씨는 "아버지에게 또 제주시 정뜨르비행장 출동 명령(강제동원 명령)이 떨어졌는데 마침 농번기여서 내가 대신 일을 하러 갔다"며 "거기서는 비행장을 넓히는 공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정뜨르비행장 동원을 마치고 돌아와 열여덟살이 되던 해, 이번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동 통지서'를 받았다.

강씨는 "할 수 없이 모슬포에 가서 중노동을 했다"고 당시의 어려웠던 삶을 회고했다.

특히 "하루는 일을 하는데, 하늘에 반짝거리는 게 보여 '삐라'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땅에 떨어지자 터지면서 불이 번졌다. 포탄이었다. (나는) 그런데서 일을 했다"고 당시 얼마나 위험했던 상황이어는지를 구술하기도 했다.

장덕환 (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 공동대표겸 사무총장이 7일 열린 '제주도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집단소송 설명회'에서 소송 취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장덕환 (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 공동대표겸 사무총장이 7일 열린 '제주도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집단소송 설명회'에서 소송 취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날 설명회에서 주최 측은 "진지동굴 구축과 비행장 건설까지 선친들의 피와 땀, 서러움 및 한이 맺혀있지만 월급 한 푼 받지 못 하고 사죄나 보상은 커녕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 가고 있어 (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가 선친들의 미불 노임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장덕환 (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자연합회 공동대표겸 사무총장도 이날 "우리 권리를 찾지 못 하고 역사 속에 묻혀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그 돈은 반드시 받았어야 할 돈이고, (지금이라도) 받아야 할 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달 30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1인당 1억원식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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