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섬이 피와 눈물, 시체의 삼다도(三多島)가 된 이유?”
“제주 섬이 피와 눈물, 시체의 삼다도(三多島)가 된 이유?”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8.11.0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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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책임 규명을 위한 심포지엄, 당시 미 군정 책임론 전면 제기
양정심 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당시 미 군정장관이 강경진압 주장”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주제로 열린 제주4.3 책임 규명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강우일 주교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주제로 열린 제주4.3 책임 규명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강우일 주교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70주년을 맞아 미국의 책임 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제주4.3 책임 규명을 위한 심포지엄이 6일 오후 2시 제주시 아스타호텔 3층 코스코스 연회장에서 열렸다.

제주4.3유족회 주최, 제주4.3 해결을 위한 국제연대포럼 주관으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제주4.3,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주제가 다뤄졌다.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는 ‘20세기 냉전체제와 미국’이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을 통해 4.3이 국가가 저지른 범죄라는 점을 들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한 뒤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생부터 냉전시대를 거치는 동안 어떤 여정을 걸어왔는지 긴 시간을 들여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쿠바와의 분쟁이나 베트남전 참전, 라오스 전쟁 개입의 배후에 미국 내 강경파와 군산복합체가 얽혀 있다는 점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그는 “4.3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 규명과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너무 조급하기보다 좀 더 긴 눈으로 우선 미국 사회에 4.3을 알리는 일을 겸해 미국 정치계와 문화계를 통해 설득과 인내로운 공동작업이 선행돼야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그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한 직후 한반도의 북쪽에 소련군이, 남쪽에 미군이 주둔한 것을 두고 “미국은 한반도를 일본 영토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제주에 7만명에 가까운 일본군이 최후 항전의 채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로 제주에 상륙해 일본군 항복을 받아내면서 미군의 의식 속에는 제주를 일본 본토의 연장으로 볼 수밖에 없었고, 4.3의 비극이 바로 이같은 국제적 맥락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나면서 우리는 일본의 적인 미군이 우리를 일본 제국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줄 해방군으로 기대했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 진영과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다”면서 제주4.3이 바로 미국의 이같은 패권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이 ‘제주4.3과 미국 – 학살의 책임을 기억하기’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이 ‘제주4.3과 미국 – 학살의 책임을 기억하기’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제주4.3과 미국 – 학살의 책임을 기억하기’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4.3 당시 미 군정의 대응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면서 “미 군정의 목표는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세우는 것이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5.10 선거가 성공적으로 치러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4.3이 발발된 직후 미 군정은 겉으로는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단독선거 저지를 목적으로 일어난 4.3을 예의주시하면서 선거 감시활동을 벌이는 유엔 조선임시위원단을 안심시키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제주도에서 선거를 성공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강경 진압책을 시작하고 있었다”고 당시 미 군정의 움직임을 설명했다.

또 그는 “4.3 발발 직후 이미 미 군정장관인 딘 소장은 강경 진압을 주장했으며, 제주의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는 방법은 초토화 작전 뿐이라는 의사를 자신의 정보장교들을 통해 제주 지역 책임자들에게 수시로 전달했다”면서 당시 제주에 대한 진압 작전 지휘권이 미군에 있었으며 브란 대령이 직접 강경 진압 작전을 벌였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작전통제권은 군사고문단을 통해 제주 진압작전에 투영됐고, 초토화 작전이 전개될 당시 제주에 임시 고문단원과 방첩대, 미군정 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당시 미 군정이 제주 해안에 괴선박이 출현했다거나 소련의 기지설 등 허위 첩보를 유포하면서 이승만 정부의 강경 진압을 부추겼다면서 당시 미 군정이 진압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그는 “미 군사고문단은 토벌대의 과도한 잔혹성을 보고하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서 “이승만 정권이 원조를 요청했을 때도 국내 소요를 완전히 진압할 것을 요구하는 등 강경진압의 명분을 만들어줬다”고 지적. 미 군정이 대규모 학살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역설했다.

겉으로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한국인들의 야만적인 진압행위를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도리어 이를 방조하거나 부추겼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그는 “남한을 반공의 전초기지로 상정한 냉전 시기의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결론이었다”면서 “드러나지 않고 이면에서 움직이는 미국의 의도대로 4.3에 대한 진압은 한국인을 통해 이뤄졌고 학살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그 결과 제주 섬은 고립된 채 피와 눈물, 시체의 삼다도(三多島)가 되어갔다”고 지적, 4.3 당시 대학살을 방조 또는 조장한 미 군정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제주4.3 책임 규명을 위한 심포지엄이 제주4.3희생자 유족회 주최로 6일 오후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열렸다. ⓒ 미디어제주
제주4.3 책임 규명을 위한 심포지엄이 제주4.3희생자 유족회 주최로 6일 오후 제주시 아스타 호텔에서 열렸다.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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