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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휴 수필가의 ‘억새꽃 핀 들녘’ 3번째 수필집 펴내 화제
오승휴 수필가의 ‘억새꽃 핀 들녘’ 3번째 수필집 펴내 화제
  • 유태복 시민기자
  • 승인 2018.11.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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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휴의 ‘억새꽃 핀 들녘’수필집 ‘현대수필가 100인Ⅱ’ 45번째 선정
‘현대수필가 100인Ⅱ에 선정된 오승휴 수필가
‘현대수필가 100인Ⅱ에 선정된
오승휴 수필가

오승휴 수필가의 ‘억새꽃 핀 들녘’ 3번째 수필집이 ‘현대수필가 100인Ⅱ’ 45번째에 선정되어 화제다.

이번에 펴낸 3번째 수필집 ‘억새꽃 핀 들녘’에는 발행인 서정환님과 현대수필가 100인선 간행 편집위원 박재식, 최병호, 정진권, 강호형, 오세윤님의 글이 닮긴 ‘책머리에’를 시작으로 ▲제1부 ‘이상하게 맺은 우정’편에 10편, ▲제2부 ‘압록강아, 말해다오’편에 10편 ▲제3부 ‘들썩이는 섬’편에10편, ▲제4부 ‘토성 밖에 샘물 있었네’편에 10편 등 4부로 구성, 엄선된 총 40편의 수필에 이어 작가 연보가 수록됐다.

오승휴 수필가는 1948년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태생, 오현고와 제주대 법대를 졸업, 1972년 농협중앙회 11기 공채입사, 32년 동안 상무, 지점장, 시군지부장을 두루 거치고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했다.
 
퇴임 후 조엽문학회, 제주수필아카데미 등에서 늦깎이로 수필공부를 하여 2007년 ‘수필과 비평’에서 ‘어머니의 자리’로 신인상을 받으면서 수필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2009년 ‘내 마음을 알거야’란 첫 수필집을 펴낸 후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여 2012년 ‘수필과비평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 두 번째 수필집 ‘담장을 넘을까 봐’를 펴냈고, 2015년 ‘제주수필과비평’ 동인지 창간호 발간에 회장으로서 크게 기여했다.

오 작가는 2007년 '냇가의 풍년마을' 공저,  동년 ‘제주수필과비평작가회’ 창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국장과 2대 회장을 역임했다. 2014년 귤림문학회(오현고졸업문인) 회장, 제주수필아카데미 회장 역임, 현재 수필과비평사 이사, 수필과비평작가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제주문인협회, 제주수필문학회, 제주수필과비평작가회 등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펴고 있다.

한편, ‘현대수필가 100인 Ⅱ’에 제주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필 작가로는 11번 오차숙의 ‘밧줄 위에서 추는 춤’, 34번 허상문의 ‘낙타의 눈물’,  43번째 김길웅의 ‘구원의 날갯짓’, 45번째 오승휴의 ‘억새꽃 핀 들녘’, 88번째 서경림의 ‘금강산의 메아리’ 등이 선정됐다.

고향 마을에 오승휴의 ‘억새꽃 핀 들녘’수필집 ‘현대수필가 100인Ⅱ’ 45번째 선정 축하 프랭카드가 걸려서 동네 축제 분위기다.
오승휴 작가의 고향마을에 ‘현대수필가 100인Ⅱ’선정 축하 프랭카드가 걸려서
성산읍 신풍리 동내는 축제 분위기다.

 

아래 오승휴 작가의 수필집 중에 한 편을 소개 한다.


얘야, 인동꽃을 보아라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저녁에 벗들과 소주 한잔 마시고 집에 와보니 멀리서 누나가 와 계셨다. 뜻밖이었다. 칠순은 이미 넘겼고 팔순을 눈앞에 둔 누나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었는데 예고도 없이 오시다니.                  
  사연인즉 숲이 우거진 동네에 사는 동생 보고파 왔다는 것이다. 나들이 좋아하는 누나는 이제 삶의 여유를 만끽하며 인생을 즐기신다. 아들딸 다 잘 키우고 얻어낸 자유랄까. 나와는 연령차가 꽤 있지만, 얼굴 풍경이 말해주듯 예나 지금이나 활달하고 스스럼이 없다. 어릴 때처럼 ‘누나’로 불러주길 원한다. 그래서 누나가 더 좋다.
  속내를 털어낸 얘기로 지새운 그 밤은 짧기만 했다. 옛 시절이 얼마나 그리우면 동생을 찾아와서 그럴까. ‘며칠 머물고 가시라’는 권유에 고개 끄덕이며 산책길도 함께 걷겠단다.
  늦은 아침, 함께 산책에 나섰다. 숲속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숨어드는 햇살이 곱다. 살랑살랑 부는 상쾌한 바람에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산자락 따라 걷다 얼마 지나 들어선 들길. 무성한 잡초와 들꽃들이 나들이객을 유혹한다. 꽃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돌담에 기어오른 가시넝쿨엔 찔레꽃이 눈꽃처럼 덮여있고, 가장자리에는 덩굴을 타고 핀 인동초가 눈길을 옭맨다. 누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나 보란 듯 꽃을 활짝 피워낸 인동초다. 놀랍게도 이 꽃은 ‘헌신적인 사랑’이란 꽃말이 붙어있다. 해독, 해열 등 여러 질병치료에 약재로 많이 쓰이는 덩굴식물이다. 꽃잎뿐만 아니라 줄기나 잎도 달여 마신다.
  “동생아, 이 꽃 알지? 어린 시절이 기억나니?”
  “그럼요. 그 꽃을 함께 땄었죠.”
  꽃 핀 돌담 길옆에 둘이 나란히 앉았다. 소꿉친구 만난 듯이 인동꽃을 반기는 누나의 눈빛. 어린아이처럼 글썽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친다. 덩달아 나도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어릴 적에 나는 몸이 허약해 가족들의 속을 많이 태웠다. 아기 때는 줄곧 누나 등에 업혀 자랐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감기를 달고 살았다. 시골 중산간마을에서 학교까지는 꽤 먼 길이어서 마중 온 누나 손 잡고 오가길 밥 먹듯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길가에는 이른 여름부터 인동꽃이 만발했다. 꽃향기 또한 그만이었다. 어머니가 기특하게 여길 만큼 누나는 그 꽃을 좋아했다. 풀꽃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꼈을까. 하굣길에 둘이 함께 꽃을 따다가 말려 약초로도 팔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용돈이 두툼해져 좋았다.
  어느 날, 누나가 팔짝팔짝 뛰면서 집에 왔다. 어데서 듣고 왔는지 인동초가 감기에 특효약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그럼, 약으로 써보자.”라고 하셨다. 그로부터는 그 꽃을 따 말려 감기약초로 썼다. 한동안 달여 마시자 감기란 놈이 내게서 어디론가 행방을 감춰버렸다. 날아갈 듯했던 기분과 그 기쁨, 지금도 생생하다.
  한데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세상일이다. 몇 년 사이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없어 어머님도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의지할 곳 없는 어린 여동생과 나는 눈앞이 캄캄해 왔다.
  그때 선뜻 ‘친정동생 둘을 다 떠맡겠다.’고 나선 게 시집간 그 누나였다. 피붙이라는 혈육의 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측은지심의 발로였을까. 매형도 흔쾌히 팔 벌려 감싸줬다. 세끼 먹기도 힘든 시절이었으니 주변에 깔린 불안의 먹구름을 예측이나 할 수 있었으랴.
  때라도 맞춘 듯 누나는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농사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왔는데, 쌍둥이 키우는 모습은 ‘엄마도 울고 아이도 울어’ 정말 눈물겨웠다. 두 아이를 품어 안아 젖을 물리면서 한숨을 쉬곤 했다. 쓰러질 것 같았지만 하소연할 곳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한숨과 눈물짓는 그 안타까운 자태는 보이지 않았다.
  “얘야, 울지 마라! 인동꽃을 보아라.”
  꿈속 들길에서 만난 어머님이 울고 있는 누나를 달래준 말이었다. 이 한마디가 용기를 주었다고 훗날에야 들려줬다. 오호라, 그래서 그랬었구나. 유신시절 서른 살 젊은 나이에 직장에서 잘린 나를 보고, 누나는 “얘야, 인동꽃을 보아라!” 하며 눈물로 위로했었지.

  가녀린 덩굴에 달린 인동꽃이 오늘따라 더 곱다. 눈보라치는 북풍한설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꿋꿋이 고통을 견뎌내는 인동 덩굴. 가녀린 덩굴이 말라죽지 않아 더 관심을 끈다. 산야와 계곡, 양지바른 인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나약해 보여도 겨울을 이겨낸다고 해서 인동초(忍冬草)라 이름 붙여진 꽃. 혹한을 참아내서인지 꽃내음이 퍽 향기롭다.
  하얀 꽃이 하루 이틀이면 점차 노랗게 되니 금은화라고도 불린다. 흰 꽃이 노랗게 변하는 것은 벌 나비에게 옆의 다른 하얀 꽃을 찾으라는 신호. 수정(受精)을 끝냈다는 뜻이렷다. 꽃의 변색이 참으로 놀랍다. 언니꽃이 같은 뿌리와 덩굴에서 나고 자란 동생꽃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헌신적인 사랑이 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만 가능할 터다. 자연의 울림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보니 누나가 인동초를 닮았다. 시집살이에다 친정동생들까지 떠맡아 살았으니,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얼마였으리. 포기할 수 없다며 연약한 생명의 끈 부여잡고 견딘 인내와 끈기 그리고 사랑. 주어진 운명 앞에서 자기 희생으로 일궈낸 보람이 당신의 오늘 아닐까. 오, 인동꽃 핀 길가에 앉은 누나 얼굴에 번져가는 저 온화한 미소!
  누나의 삶과 사랑이 꽃바람 타고 향기를 풍긴다. 길가에 핀 인동꽃처럼.

오승휴 수필가의 수필집 ‘억새꽃 핀 들녘’중에  ‘애야 인동꽃을 보아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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