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놀이터를 설계하는 것이나 집 설계는 같은 겁니다”
“놀이터를 설계하는 것이나 집 설계는 같은 겁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10.26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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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놀이터 <2> 이유에스플러스건축 서민우·지정우 소장

세이브더칠드런 노력으로 학교 놀이 시설 바꾸기 돌입
“놀이 공간은 이야기를 담고, 미래의 기억도 담는 곳”
일률적 놀이시설 거부하고 땅에 맞는 놀이시설 만들어

놀이터가 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콘크리트 숲에만 갇혀 있는 아이들에게 숨통을 죄여왔다. 삶의 질은 높아진 반면 아이들에겐 학습권이 굴레처럼 다가왔고, 이는 곧 놀이의 축소라는 다른 측면으로 작용했다. <미디어제주>는 이에 따라 서울과 경기 지역 사례를 통해 달라져야 할 놀이터를 생각해볼 시간을 2차례에 걸쳐 가져본다. [편집자 주]

 

건축가는 집이라는 그릇을 창조한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가를 향해 집을 설계하는 사람으로만 이해한다. 그건 잘못이다. 건축가는 공간을 연출하는 창조주이다. 도시설계를 할 때도, 어떤 공간을 만들 때도 건축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그런 경우엔 건축가들이 다른 직종에 한참 밀려야 한다. 공간 연출자에 대한 대접이 아니다.

놀이터만 놓고 보자. 놀이터에 건축가들이 참여한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여길까. 놀이터는 집이 아니기에 당연히 “안된다”고 할테이지만, 아니다. 놀이터도 공간이다. 그 공간을 창조하는 이들은 건축가여야 한다.

이유에스플러스건축은 나름의 철학을 바탕으로, 어린이 놀이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왼쪽부터 지정우 소장, 서민우 소장. 김형훈
이유에스플러스건축은 나름의 철학을 바탕으로, 어린이 놀이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왼쪽부터 지정우 소장, 서민우 소장. ⓒ김형훈

그래서일까. 지금 소개하려는 이들을 볼 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놀이공간에 대한 건축가들의 역할이 어떠한지를 이들을 바라보면 안다. 이유에스플러스건축사무소의 서민우 소장(48)과 지정우 소장(46)이다. 그들은 ‘놀이를 짓다’라는 구호를 내건다. 홈페이지를 들어가도 첫 화면이 ‘놀이를 짓다’이다. 그들이 얼마나 놀이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를 보여주는 문구가 아닐까.

학교엔 구령대가 있다. 권위의 상징물이다. 거기에 그들은 놀이를 입혔다. 동답초(서울) 구령대는 권위는 사라졌고, 놀이만 남았다. 그들은 ‘놀이의 여정’이라는 제목을 동답초 구령대에 붙였다.

동답초 구령대는 세이브더칠드런 중부지구의 ‘놀이터를 지켜라’라는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마침 이유에스플러스건축이 참여를 하게 됐고, 놀이터를 바꾸는 혁신이 시작됐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해솔초등학교 놀이터도 개장을 했다. 역시 세이브더칠드런이 클라이언트였다.

“놀이 조건은 학교마다 다릅니다. 어떤 놀이터가 바람직한지 고민을 하죠. 우선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아이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립니다.”

집을 짓는 일이나, 놀이터를 창조하는 일이나 매한가지이다. 땅이라는 조건이 다르기에 집은 모두 다르게 나온다. 놀이터도 똑같다. 일률적인 놀이시설이 나올 수 없다. 동답초, 해솔초에 이어 경기 김포에 있는 유현초등학교도 그들의 손길이 닿았다.

놀이에 대해, 놀이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빈땅에 놀이기구만 갖다놓으면 된다는 그런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지요.”

그들은 디자이너들이다. 공간마다 다른 색을 입히는 디자이너들이다. 그들에겐 일반 건축물이나 놀이공간에 들어설 시설물이 같은 개념이란다.

“아이들을 위한 건축물이라고 해서 막 지을 순 없습니다. 우린 공간을 건축해 온 사람이기에 뮤지엄을 짓는, 그런 노력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권위의 상징이던 구령대를 바꿔서 어린이 놀이시설로 새롭게 태어난 동답초. 진효숙
권위의 상징이던 구령대를 바꿔서 어린이 놀이시설로 새롭게 태어난 서울 동답초. ⓒ진효숙
최근 개장한 파주 해솔초 놀이터. 이유에서플러스건축
최근 개장한 경기도 파주 해솔초 놀이터. ⓒ이유에스플러스건축

서서히 변화는 찾아오고 있다. 언제 건축가들을 향해 놀이터를 설계해달라고 했던 적이 있던가. 미국과 유럽 등 다른 지역은 놀이공간에 끼치는 건축가의 역할이 강하다. 우린 이제 시작단계에 와 있다. 서민우·지정우 소장이 어쩌면 선구자인 셈이다. 그들에게 물었다. “놀이란 무엇입니까”라고.

“건축사사무소는 웹사이트를 홍보하면서 최근 작품을 보여주죠. 우리는 놀이터에 집중을 합니다. 저희 홈페이지에 가보십시오. 일반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랑, 놀이터를 설계하는 것이랑 같은 비율이에요. 놀이 설계도 똑같은 무게감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놀이는 세대별로 다르다. 개인적인 차이도 있다. 청년이 사는 공간은 청년답게, 아이들이 노는 공간은 아이들에 맞춘다. 어쩌면 서로 다른 이야기가 공간에서 이뤄진다. 그들은 놀이터가 아이들의 기억을 만드는 공간이라고 한다.

“혼자도 놀고, 함께 놀기도 합니다. 룰을 만들기도 하죠. 바로 놀이 공간은 이야기를 담는 곳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의 미래의 기억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골목에서 놀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듯이 말이죠.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 게임에 매달립니다. 그들에겐 놀이터가 숨통을 트게 하는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요.”

공간을 만들면 기억이 쌓인다. 그걸 이뤄내는 직업군이 건축가들이다. 근대건축의 거장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한 말이 기억난다. “건축가는 위대한 공상가이다”고 그는 말했다. 건축가들이 놀이터에서 펼쳐낸 상상의 날개는 언젠가는 아이들에겐 기억이 되고, 먼 미래의 꿈이 된다는 사실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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