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을 폭도라고 하다뇨. 왜곡될 수 있어요”
“4·3을 폭도라고 하다뇨. 왜곡될 수 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10.24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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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청춘예찬’ 일기] <3> 4·3의 아픔

옛 화북초등학교와 화북지서 등을 직접 둘러봐
4·3 당시 화북초는 삼촌과 조카의 생지옥 현장
보수단체가 남긴 표석 글귀에 대해 문제점 지적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여전히 4월 3일은 찾아온다. 올해도 찾아왔고, 해가 지나면 곧 4·3이다. 늘 맞는 4·3이긴 하지만 올해는 뭔가 남달라 보인다. 다름 아니라 70주년을 맞는 4·3이기 때문이다. 제주동중 동아리 ‘청춘예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지만 현장을 찾는 일만큼 이해가 잘 되는 일은 없지 않은가.

제주시 화북동. 예전엔 관문 역할을 했다. 중앙정부가 육지부와의 소통을 막고 있었기에 교류가 가능한 포구는 한정돼 있었다. 제주시 화북포구는 그런 역할을 해왔다. 출륙금지령이 풀리면서 그 역할은 더 커졌다. 화북포구는 알게 모르게 커졌고, 이 지역은 제주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가 됐고, 세상을 향해 깨어있는 사람들도 늘었다. 화북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이곳 화북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

그러고 보니 화북초등학교가 있었다고 하는 곳은 청춘예찬이 지난번에 들렀던 곳이다. 바로 화북진성이다. 화북초등학교는 화북진성 내부에 들어섰고, 인재를 길러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던 아이들에게는 분명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됐다.

4.3 때 불타버린 화북지서가 있던 곳. 미디어제주
4.3 때 불타버린 화북지서가 있던 곳. ⓒ미디어제주

그런데 전에 왔던 곳에 또다시 답사를 올 이유가 있을 필요가 있나 싶다. 대체 화북초등학교가 있던 곳이 4·3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화북진성이 있던 곳, 또한 화북초등학교가 자리를 하고 있던 곳은 화북청소년문화의집이 들어서 있다. 아이들은 화북진성 터에 화북초등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해도 무반응이다. 게다가 집중도 안된다. 그런데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4·3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였다.

옛 화북초등학교는 아픈 기억이 있다. 정확하게는 1949년 1월 8일이다. 토요일이었다. 낮 1시나 2시가 된 듯하다. 비상 종소리가 울렸고, 화북초등학교 운동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스스로 모인 건 아니었고, 경찰의 지시였다. 경찰은 모인 사람들 가운데 ‘누구 누구’라며 이름을 불렀다.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불려 나갔다. 이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젊은 사람들을 불러내고서는 창을 들라고 한다. 손에 든 창으로 불려나온 사람을 찌르라는 지시였다. 따르지 않으면 경찰의 총구에서 총을 발사할 태세였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청춘예찬 아이들의 웃음은 멎었다. 신나게 웃던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창을 든 사람, 창을 몸으로 받아든 사람. 결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테다. 창을 든 사람은 조카였고, 창을 몸으로 받은 사람은 삼촌이었다.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1949년 1월 8일 화북초등학교 현장에서 일어났다. 세상에나, 청춘예찬 아이들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이다.

생지옥이 따로 없는 현장. 경찰은 무장대와 소통하는 이들이 있다며 그들을 불러내 지옥을 만들어냈다. 그 소식은 흘러흘러 무장대 쪽으로 전해졌다. 무장대는 사흘 뒤에 분노를 토해냈다. 생지옥의 현장이던 화북초등학교를 불태웠다. 불타고 사라진 그 현장. 80여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곳. 아니 조카와 삼촌간의 아픔을 감안하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이 여기서 진동을 한다.

청춘예찬 동아리 아이들은 먹먹한 가슴을 안고 자리를 옮겼다. 화북진성에서 서쪽으로 70m 정도 걸으니 창고가 보인다. 현재는 미술활동을 하는 이승수 작가의 작업실이다. 작가로부터 이야기도 듣고 싶었으나 문이 닫혀 아쉽다.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공회당이 있던 곳이다. 당시 건물 그대로인지는 확인이 쉽지 않다. 해방이 되고 나서는 화북지서가 들어섰다. 그러다 4·3 시작점의 정점에 서는 건물이 된다. 1948년 4월 3일 한라산과 오름에 봉화가 켜지는 것을 신호로 무장대의 공격이 진행되는데, 화북지서도 그때 습격을 당하고 불탄다. 새벽 2시였다고 한다. 화북지서는 바다 바로 곁에 있었기에 마치 바다가 불타는 것 같았다. 그때 공격으로 경찰도 희생된다.

보수단체가 만든 표석을 보고 있는 아이들. '폭도'라는 표현에 아이들이 불만을 드러냈다. 미디어제주
보수단체가 만든 표석을 보고 있는 아이들. '폭도'라는 표현에 아이들이 불만을 드러냈다. ⓒ미디어제주

하지만 청춘예찬 아이들 눈에 표석 하나가 거슬린다. 보수단체가 만든 표석이었다. 그 표석은 무장대를 ‘폭도’로 만들고 있다. 교과서에서도 폭도라고 배우지는 않는데 말이다.

“4·3은 역사인데 그건 기억으로 남잖아요. 이 글귀엔 반대입니다. 여기는 올레길이기도 한데 사람들이 이 표석을 보면 다들 폭도로 알잖아요. 4·3이 왜곡될 수 있어요.”

공회당이었고, 불타버린 화북지서이기도 했던 현장. 지금은 작가가 빌려쓰는 곳. 청춘예찬 아이들은 옛 화북지서는 4·3의 기억을 지닌 곳이기에 영원히 그 위치를 지켜줄 것을 바라고 바랐다. 아이들은 하나를 더 약속했다. 지난번 제주올레 표식으로 훼손되고 있는 현장에 대해 제주시장에게 편지를 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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