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만든다며 문화재를 멋대로 건드네요”
“제주올레 만든다며 문화재를 멋대로 건드네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10.12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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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청춘예찬’ 일기] <2> 전쟁이란 무엇인가

화북진성과 연대, 환해장성 등의 쓰임새 이해
​​​​​​​복원된 환해장성은 화북 지역의 돌 쓰지 않아
성벽 쌓을 때는 수직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세워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동중 아이들이 ‘청춘예찬’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을 진행한지 5개월이 흘렀다.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실내교육은 진행했지만 정작 중요한 건 마을을 아는 일이었다.

제주동중은 제주시 화북동에 있지만 삼양동과도 근거리이다. 물론 더 먼 곳에서 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도 제주동중의 중심지역은 화북과 삼양일 수밖에 없다.

청춘예찬의 야외활동은 더운 여름에 막혔다. 삼양동 일대를 한바퀴 돌기는 했으나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더위를 이기느니, 더위가 지나길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계절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 덥던 여름도 꺾이고 이젠 긴 팔을 찾아 입어야 하는 계절이 왔다.

마침 중학교 1학년 2학기는 자유학기제를 시행한다. 자유학기제를 접목시켜 청춘예찬 활동을 좀 더 활동적으로 진행시켜 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전시간대를 활용했다. 자, 이제 본격적인 마을탐방이 진행된다.

마을을 알아가는 활동은 주제를 정해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11일 내건 주제는 ‘전쟁이란 무엇인가’였다.

제주동중 '청춘예찬' 동아리 아이들이 화북진성 밑에서 진성의 구조를 살피고 있다. 김형훈
제주동중 '청춘예찬' 동아리 아이들이 화북진성 밑에서 진성의 구조를 살피고 있다. ⓒ김형훈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만 전쟁없이 평온만을 바라는 건 쉽지 않다. 예전엔 전쟁을 통한 약탈로 물건을 얻기도 했고,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다. 전쟁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불행한 측면도 있지만 기술발달이라는 또다른 면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전쟁에 이기려면 어떤 게 필요했을까. 우선 전쟁 상대자가 우리 영역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쳐야 한다. 제주시 화북동엔 그런 유적들이 널려 있다. 화북진성이 있고, 연대가 있고, 환해장성도 있다.

화북진성은 현재는 터로만 남아 있다. 화북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가 지금은 화북청소년문화의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땅은 교육청 소속으로 돼 있다. 화북 사람들이 초등학교를 지었다가 그 자리를 교육청에 기부채납을 해서 그랬다고 한다.

화북진성은 제주도내 있는 9개의 진성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예전엔 수전소가 있었다고 했다. 수전소는 수군, 그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해군이 주둔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1555년 을묘왜변으로 피해를 입었고, 나중에 돌로 굳건하게 쌓은 진성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을묘왜변을 당하고 100년도 훨씬 넘은 1678년에 화북진성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황당할 뿐이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늦게 만들었어요”라는 반응이다.

제주의 돌쌓기는 잘 다듬어서 반듯하게 쌓지 않는다. 반듯한 성벽쌓기는 ‘바른층쌓기’라고 한다. 제주의 성은 이와 달리 돌을 살짝 다듬을 뿐이다. 돌의 생김새대로 쌓고, 돌끼리 맞물리게 한다. 이른바 ‘허튼층쌓기’라는 걸 알게 됐다. 바닥이 돌덩어리라면 그걸 그대로 활용한다.

성벽이 성 안쪽으로 기울어져서 쌓은 걸 확인하고 있다. 김형훈
성벽이 성 안쪽으로 기울어져서 쌓은 걸 확인하고 있다. ⓒ김형훈

화북진성의 지금 모습은 바닷가와는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예전엔 진성과 불과 1~2m 떨어진 곳이 바다였다. 진성의 밑을 보면 바닷가에 있던 암반덩어리 위에 돌을 하나 둘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어떤 돌은 너무 커서 어떻게 들어올렸을까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고인돌을 옮길 때처럼 흙을 쌓고, 나중에 흙을 빼는 방식이었을까 생각해 보지만 도저히 그렇게 해서는 답을 찾지 못하겠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니 아마 그 시절에도 기중기와 같은 기구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을 해보게 만든다.

성벽을 쌓을 때는 땅 밑에서 90도 각도의 수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들은 알게 됐다. 성벽을 옆에서 보면 기울어져 있다. 성벽이 성의 안쪽으로 살짝 넘어가 있다. 아무래도 밖으로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했던가 보다.

화북진성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에 화살표가 들어왔다. “이게 뭘까”라며 둘러보던 아이들은 “제주올레”라고 외친다. 가만 들여다보니 제주올레 리본이 매달려 있는 건 이해가 되는데, 화북진성에 화살표를 붙여놓았다. 실리콘 자국이 선명하다.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화북진성은 엄연한 문화재인데 말이다.

제주올레를 알리는 화살 표식. 문화재인 화북진성에 붙어 있다. 실리콘으로 돌에 들어붙어 있는 흔적도 있다. 김형훈
제주올레를 알리는 화살 표식. 문화재인 화북진성에 붙어 있다. 실리콘으로 돌에 들어붙어 있는 흔적을 청춘예찬 동아리 학생들이 심각하게 쳐다보고 있다. ⓒ김형훈

화북진성에서 동쪽으로 향했다. 환해장성과 별도연대를 만나게 된다. 화북의 동쪽 바닷가는 돌이 무척 날카롭다. 자칫 맨발로 물에 들어갔다가는 칼에 밴 듯이 피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환해장성에서 만나는 돌은 매끈매끈하다. 화북의 돌이 아니다. 복원을 하며 어뚱한 지역의 돌을 가져다 썼는데 그것도 복원인가?

화북엔 동쪽과 서쪽에 환해장성이 남아 있다. 서쪽에 위치한 환해장성은 곤을환해장성이라고 부른다. 복원된 동쪽의 환해장성과는 다른 모습이다. 곤을환해장성은 매우 자연스럽다. 복원한 게 마냥 좋게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또다른 방어유적으로 연대가 있다. 연대는 적이 쳐들어오면 불을 피우거나 연기를 피워서 알리는 역할을 한다. 별도연대에 올랐다. 사방이 훤히 다 보인다. 별도연대는 삼양동에 있는 원당봉수로부터 정보를 받아 사라봉에 있는 사라봉수로 연결을 한다. 그러면 곧바로 제주성으로 연락이 이뤄진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봉수와 연대로 연락을 하는 게 훨씬 빠르겠다.

그런데 연기나 불은 어떻게 피웠을까. 연대에 올라갔지만 그런 건 전혀 확인이 되지 않는다. 연대 정상에서 그냥 피웠을리는 없다. 왜냐하면 제주도는 바람이 무척 세다. 연기를 두 개나 세 개를 피워올리게 되면 바람에 섞여서 하나인지 둘인지 알게 뭐람. 아마도 기다란 연통을 세워 올려 연기나 불을 피운 것 같다. 별도연대에서 삼양동을 바라보면 화력발전소가 보인다. 화력발전소가 아주 긴 연통을 가지고 있듯이, 별도연대에도 그런 기다란 연통들이 분명히 있었을테다.

청춘예찬은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 이야기는 4·3으로 정했다. 아무래도 올해는 4·3 70주년이다. 70년 전 제주사람들의 모습을 둘러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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