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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강조한 재단, 소통 없었던 한짓골 사업 강행할까?
‘소통’ 강조한 재단, 소통 없었던 한짓골 사업 강행할까?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10.09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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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짓골 사업의 명분, ‘공공 공연연습장 조성’에 있다
제주예술인회관 건립에 재밋섬 건물, 적합하지 않아
소통·작은 재단 강조한 신임 이사장, 사업 강행할까?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지난 10월 8일, 새롭게 부임한 제주문화예술재단의 고경대 이사장이 제주 지역 언론사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자리에서 고 이사장은 '소통'을 강조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재단과 제주의 문화예술 발전이 함께 이뤄질 수 있길 바라며 기사를 게재한다.

‘공공 공연연습장 조성’이라는 사업 명분, “잊으면 안 돼요”

(가칭)한짓골 아트플랫폼 사업(이하 한짓골 사업)으로 도내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제주문화예술재단(이하 재단)에 고경대 신임 이사장이 부임했다. 재단의 재밋섬 건물 매입을 승인한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 자리는 조상범 국장이 새롭게 맡았다.

현재 한짓골 사업은 사업의 정당성과 당위성, 절차의 적법성 등의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잠시 중단된 상태다. 도 감사위원회에서는 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가 완료된 상태로, 건물 감정가액(약 110억원)이 적정한 수준인지 검토가 끝나면 감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애당초 한짓골 사업은 박경훈 전 재단 이사장과 제주도정이 매우 적극적으로 추진 의사를 밝힌 사업이다. 사업 진행 과정에 제기된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재단과 제주도정은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느냐, 꼭 재밋섬 건물이어야 하느냐’는 의회의 질문에 재단은 ‘공공 공연연습장 조성’에는 재밋섬 건물이 최적지라고 답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추진중인 '재밋섬' 건물 매입에 대해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스포츠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진은 최근 메가박스 제주에서 열린 주민설명회 때 모습. ⓒ 미디어제주 자료사진
5월 15일, 예술공간 이아에서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평일 낮 3시에 열린 탓에 10명 내외의 주민만 참여했으며, 설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는 지난 5월 15일, 지역주민과 사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재단이 개최한 한짓골 사업 설명회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

재단은 사업 추진배경으로 △공공 공연연습공간 부재에 따른 공연예술 육성 △광역단위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아트플랫폼’ 공간 마련 △재단 육성기금의 합리적인 운용 필요성 대두 △원도심 도시재생 및 주변 상권 활성화에 기여 등의 사유를 들었다.

설명회 자리에서 박경훈 전 이사장은 한짓골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공공 공연연습공간 마련’이라고 했다. 공연 연습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천장 높이, 면적 등 고려해야 할 요건이 있는데, 재밋섬 건물은 영화관이 있어 천장이 높기 때문에 연습장 요건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재단은 혈세 100억원을 들여 재밋섬 건물 매입을 강행하면서, 그 당위성으로 ‘공공 공연연습장 조성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제시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업 추진 방향이 엉뚱한 쪽으로 강조되고 있다. 정작 중요한 ‘공연연습장 조성’에 관한 내용보다는 ‘예술인회관 건립’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는 추세다.

지난 9월 7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도정질문 자리에서 "현재 문화예술인회관으로는 재밋섬 건물로 추진을 하고 있다. 예술인 단체들이 의논해서 공간을 배치한 거로 알고 있다"라면서 재밋섬 건물을 예술인회관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예총과 민예총은 훨씬 이전부터 재밋섬 건물을 예술인회관으로 활용하는 것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바로 5월 17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서다. 이들은 “재밋섬 건물 매입은 예술인회관 숙원을 해결할 기회다. 자칫 일부 단체의 문제제기로 인해 제주 문화예술인들의 숙원이 이뤄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2018년 2월 18일,&nbsp;제358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2차 임시회 문화관광스포츠위원회 제주문화예술재단 업무보고서 일부 내용.<br>향후 2020년까지 총 300억원 육성기금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이다.<br>
2018년 2월 18일, 제358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2차 임시회 문화관광스포츠위원회 제주문화예술재단 업무보고서 일부 내용. 향후 2020년까지 총 300억원 육성기금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재단이 재밋섬 건물 매입에 사용할 100억원은 재단의 육성기금이다. 육성기금이란, 제주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모으고 있던 돈이다. 이 소중한 돈을 건물 매입에 다 써버리겠다는 것인데, 한짓골 사업이 과연 제주 문화예술 발전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공공 공연연습장을 만든다고, 유료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도민들이 갑자기 공연장을 찾을 리 없다. 재밋섬 건물을 제주예술인회관으로 만든다고 사람도 없고, 주차난만 심한 원도심 지역이 살아날 리 없다.

재단이 진정 원도심 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꿈꾼다면 보다 장기적으로, 하드웨어(건물)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예술의 질,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도민들의 새로운 인식, 예술인들의 생업이 가능한 새로운 사업모델 등) 측면에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제주예술인회관 건립사업에 재밋섬 건물이 과연 적합한가

만약, 재밋섬 건물 매입이 진정 ‘공공 공연연습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면 제주예술인회관 건립 사업과는 별개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예술인회관 건립은 지난 수십 년간 제주 예술인들이 간절히 바랐던 숙원 사업이다.

음악, 미술, 영화, 무용 등 모든 예술인에게 열린 공간이 될 예술인회관은 넉넉한 주차공간과 사무공간, 전시공간, 모임공간 등이 필수다.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현재 신산공원 일대, 제주영상∙문화산업지흥원 건물을 제주예술인회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왔다. 부지가 넓어 주차 공간도 넓고,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밋섬 건물은 사정이 다르다. 일단, 건물이 위치한 삼도이동 일대는 주차난이 심한 곳으로 유명하다. 기자 역시 재밋섬 건물 앞, 예술공간 이아를 방문할 때마다 주차할 곳이 없어 인근 식당에서 운영하는 유료주차장을 이용하곤 한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밝힌 재밋섬 건물 활용방안.

또한, 재밋섬 건물은 제주예술인회관으로 사용하기에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재밋섬 건물은 지상 8층, 지하 3층의 건물이다. 이중 지하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지상 2~3층은 놀이시설, 5~8층은 상영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재단이 재밋섬 건물 매입을 완료한다면, 재단과 예총, 민예총 사무실이 재밋섬 건물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재밋섬 건물의 지상 8층 중, 적어도 2~3개 층은 사무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재단, 예총, 민예총의 사무공간을 제외한다면 남는 공간은 이제 4~6개 층이다. 여기에서 2~3개 층은 아마 ‘공공 공연연습장’으로 활용될 것이다. 그러면 남는 층은 1~4개 층뿐이다. 제주예술인회관이란, 예총, 민예총뿐 아니라 도내 존재하는 여러 문화예술 단체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회의실, 전시실, 공연장, 자료보관실 등 모든 것을 담기엔 공간이 부족하다.

 

‘소통’ 강조한 고경대 신임 이사장, 소통 없이 진행된 한짓골 사업 진행할까?

기사 서두에서 언급했듯, 재단 이사장과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이 모두 새로운 인물로 바뀌며 한짓골 사업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먼저, 조상범 문화체육대회협력국장은 재단 사업에 ‘찬성’인 입장이다. 9월 12일 열린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회의에서 그는 문체부의 공공 공연연습장 조성사업에 지원,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 15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밋섬 건물 리모델링비 60억원 중, 15억원을 보태겠다는 계획이다.

사업 선정에 안 될 경우, 국비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에 그는 “사전에 이거(국비확보)에 대한 부분은 문체부와 협의한 사항”이라면서 사업 추진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미디어제주>가 문체부에 문의한 결과, ‘공공 공연연습장 조성사업’에 대한 선정은 사전 약속사항이 될 수 없다. 물론, 도와 문체부는 사업 협의를 한 적도 없었다.

이 같은 지적에 조 국장은 <미디어제주>와의 인터뷰에서 ‘추후 사업에 지원할 예정임을 협의했다는 것’이지 사업 선정이 확정된 바는 아니라고 말을 정정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고경대 신임 이사장이 10월 8일, 기자들과 간담회 자리를 가졌다.

재단의 고경대 이사장은 10월 8일, 언론사 기자들과 만남을 갖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고 이사장은 이날 자리에서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짓골 사업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기 때문에 감사를 맡긴 상태인데, 감사위원회에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존중해야 할 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감사 결과에 따라 한짓골 사업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감사위원회는 제주도 소속 공무원으로 구성된, 제주특별자치도청 소속기관이다. 때문에 제주도의 사업 추진 의지를 잇고자 ‘제 식구 감싸기’ 식의 감사 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다.

재단의 재밋섬 건물 매입 과정에 대한 감사를 중앙행정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도가 승인한 사업을 제주도 스스로 감사한다면,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때문에 고 이사장은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와는 별개로 사업의 당위성과 타당성을 고려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가 늘 ‘정답’일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의 철학과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지금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매입을 추진 중인 제주시 삼도2동 소재 재밋섬 건물. © 미디어제주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매입을 추진 중인 제주시 삼도이동 소재 재밋섬 건물.

고 이사장은 재단의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소통’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현장과 소통할 수 있는 공식 채널이 예총과 민예총인데, 그 외에도 여러 집단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정기적인 모임 등의 노력을 꾀할 것을 다짐했다.

이어 그는 “공기관은 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성을 띤 작은 조직으로 현장에 지원하는 것, 현장 의견이 반영된 정책을 확립하기 위해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도시와 농어촌의 생활문화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읍면지역의 문화 격차 부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고민하겠다”라고 말했다.

고 이사장의 말을 종합하자면, 그가 꿈꾸는 재단은 거대한 권력이 되지 않고, 도내 곳곳에 문화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이 없게끔 하기 위해 노력하며, 도민 및 예술인들과 소통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러한 재단의 가치는 ‘한짓골 사업’의 가치와 대립한다.

한짓골 사업은 혈세로 차곡차곡 모은 재단 육성기금 170억원 중, 113억원을 사용하겠다는 계획인데,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 없이 재단의 일방적인 추진으로 진행됐다. 사업 추진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의회의 문제 제기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이러한 재단의 행보는 고 이사장이 강조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도내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고 이사장의 다짐에도 어긋난다.

또한, 한짓골 아트플랫폼 사업은 재단과 예총, 민예총이 도내 문화예술계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데 일조하는 사업이다. 읍면지역의 문화격차를 더 크게 만드는 사업인 것이다.

고 이사장은 곧 도의원들을 만나 사업에 대한 의견을 묻고, 답을 들을 예정이라고 했다.

또한, 감사 결과가 나온다면 주민,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론화 과정도 거칠 의향이 있다면서 “제주예술인회관 건립 사업은 서두르지 말고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모든 문제는 도민과의 소통 없이 사업을 서둘러 진행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신임 이사장이 소통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만큼, 그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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