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순이삼촌>과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나도 <순이삼촌>과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 이겸
  • 승인 2018.10.08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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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의 기록자들] <4> 강덕환 시인①​​​​​​​
​​​​​​​글쓴이 : 이겸(사진심리상담사, 여행과치유 대표)

강덕환_1편

굵은 음성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다. 풍채가 좋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두꺼운 음성이다. 신분을 밝히고 취재의 목적을 설명했다. 내친김에 약속장소까지 협의해서 결정했다. 말의 속도가 느린 듯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생각의 속도와 판단이 빠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한편으로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도 전해진다.

시인들의 얼굴이 선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겸
시인들의 얼굴이 선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겸

# 제주 4.3 유적지는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다.

나는 강덕환 시인을 만나기 위해 옛 제주주정공장(1934년 설립) 터로 향했다. 약속 장소를 정한 사람은 강덕환 시인이다. 제주 4.3과 관련된 곳에서 만나자는 나의 제안에 시내에서 보자고 해서 찾아간 곳이다. 일반들에게 잘 알려진 4.3 유적지들은 시내를 벗어난 중산간 지역이거나 사라진 마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제주 4.3의 아픈 역사 현장은 도심과 너무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김만덕 기념관에서도 멀지 않은 곳,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맞은편이었다. SK 천마주유소와 바로 붙어 있는 공터다.

이곳은 4.3 당시 민간인 수용소로 쓰였던 곳이다. 여기서 열악한 수용환경 속 수용자들에게 혹독한 고문이 자행되었다. 예비검속으로 수용된 많은 사람들이 수장되거나 정뜨르 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학살된 비극적인 장소다. 여객선을 타고 내리는 관광객들이 수시로 지나치는 왕복 4차선의 큰 길에 이런 비극적인 장소가 있으리라곤 예상치 못할 것이다.

옛 주정공장터 비문을 비롯해 4.3유적지의 많은 비문들을 강덕환 시인이 섰다. 비문 어디에도 ‘강덕환’ 이라고 새겨 넣은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이겸
옛 주정공장터 비문을 비롯해 4.3유적지의 많은 비문들을 강덕환 시인이 섰다. 비문 어디에도 ‘강덕환’ 이라고 새겨 넣은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이겸
옛 주정공장터는 주차장처럼 쓰이고 있다. 그나마 4.3 70주년이 되는 올해 4.3 유적지 팻말이 세워졌다. 이겸
옛 주정공장터는 주차장처럼 쓰이고 있다. 그나마 4.3 70주년이 되는 올해 4.3 유적지 팻말이 세워졌다. ⓒ이겸

# 어떤 계기로 제주 4.3에 관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그는 두 번째 시집 <그해 겨울은 춥기도 하였네> 에 다음과 같이 섰다. “나도 4·3詩를 쓰고 싶었다.”

“현기영의 소설집 「순이삼촌」. 마치 둔기로 얻어맞은 듯했다. 4·3을 글감으로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써도 소설이 되는구나, 였다. 입시에 맞춰 「홍길동전」이나 「등신불」을 외다시피 했던 당시로서는 문학에 저런 세계도 있을 수 있구나, 했다. 바로 우리 동네 이야기를 쓴 「도령마루의 까마귀」 때문이었다. 국정교과서에서는 어림도 없는 제주방언이 등장하고 우리 동네 지명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그 책을 들고 아버지를 찾았다. 소까이가 뭔지, 서청이, 선무공작대가, 토벌대가 뭔지 여쭤 보았다. 굴속엔 왜 숨어들었는지, 성담은 왜 쌓아야 했는지 궁금증은 켜켜이 쌓여갔지만 아버지의 속 시원한 대답을 듣는 것이 여간해선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알앙 무시 거 허잰”하면서 외면해 버리는 것이었다. 현기영의 소설집은 1980년 5.17 비상계엄과 함께 서점에서 자취를 감추고, 나의 책꽂이에선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신문지로 겉표지를 두르고 있으면서 나도 그에 걸맞는 시 한편만 은 꼭 쓰고 싶었다.”

# 월간 제주 기자도 했다고 들었다.

“나는 1961년 생으로 제주 대학교 80학번이다.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있지만 말이다. 당시 ‘신세대’ 라는 문학 동아리와 ‘풀잎소리’라는 동인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순이삼촌 (1978년 9월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현기영의 중편소설) 책을 접했다. 이것이 4.3과 나와의 만남이었고, 시작이었다. 그 이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4.3을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두 번 째 시집의 책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짓밟히면서도 꿈틀거릴 수 있다면 위대하다. 이겸
두 번 째 시집의 책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짓밟히면서도 꿈틀거릴 수 있다면 위대하다. ⓒ이겸

강 시인은 1989년 2월에 <월간 제주>에 입사를 했다. 잡지사 편집장이 기자로 오라고 했을 때 그는 입사 조건을 달았다. 제주 4.3 현장을 매일 취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의 마을들을 빠짐없이 다니며 제주 4.3을 취재하고 싶어서였다. 당찬 포부였고 계획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출범한지 1년이 지난 해였으니, 당시로선 지금처럼 제주 4.3에 대해 거론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군사정권이나 다름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조건이 받아들여졌고 기자 생황을 시작했다. 입사후, 그의 조건은 일주일에 이틀간의 취재로 조정되었다고 한다. <월간 제주>는 1993년 12월까지 다녔다. 잡지가 폐간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간 어떤 활동을 했나?

“1994년 2월 7일에 제주도의회에 제주 4.3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한 달 전까지 도의회 4.3 특위에서 근무했다. 그러니까 1994년부터 2018년까지 25년이다. 다시 11대 도의회 4.3 특위가 시작된다. 계속 활동을 이어갈 것 같다.”

25년 동안의 활동을 다 적을 수는 없다 해도 빼놓을 수 없는 활동들이 있다. 그동안 그는 4.3보고서 책임 집필 및 발간(총 3권)(1995, 1997, 2000), 『제주4·3자료집 Ⅰ-미군정보고서』(2000), 『제주특별자치도의회 4.3백서』 발간책임(2018)을 했다. 그리고 4.3관련 주요 조례 제· 개정 지원 활동도 했는데 제주4․3사건희생자위령사업 범도민추진위원회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1999.7), 제주특별자치도 4·3유적지 보존 및 관리에 관한 조례(2009. 5), 제주4.3사건 생존희생자 및 유족 생활보조비 지원조례(2011. 10), 제주4.3사건 생존희생자 및 유족 생활보조비 지원조례 일부개정조례(2014. 10), 제주특별자치도 4.3희생자추념일 등 국기의 게양에 관한 조례(2014. 4), 4.3 희생자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안(2018. 3), 제주특별자치도 4.3평화문학상 운영 조례 일부개정조례(2018. 7)가 그것이다.

강덕환 2편. 다음 인터뷰 예고

남아 있는 질문

1.문학과 4.3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2.제주 4.3 특별위원회의 성과는 무엇인가?

3.도령마루에 대해 알고 싶다.

4.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만행을 어떻게 자행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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