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를 모시고 북녘 땅에서 천지를 만지고 싶다
‘엄니’를 모시고 북녘 땅에서 천지를 만지고 싶다
  • 김명숙
  • 승인 2018.09.27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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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방전] <14> 9월

3차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은 백두산 천지에서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장면이다. 등산 애호가인 문 대통령은 세계 명산을 등반하면서도 백두산만큼은 남겨두었다고 하는데, 중국 땅을 통해서가 아닌 통일된 땅에서 오르고 싶은 때문이라 했다.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쪽을 통한 백두산 천지 친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번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맞춰 백두산 천지 회동이 성사되었다.

장군봉에 도착한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 천지에 내려가시겠냐”고 물었고 이에 문 대통령은 웃으며 “천지가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손이라도 담가보고 싶다”고 했다. “천지가 나무라지 않는다면”이라니 얼마나 겸손하고 아름다운 말인가. 천지 앞에서는 이렇게 겸손해야 하는 걸 대통령은 어떻게 알았을까.

어느날 모친께서는 지나가는 말처럼 말씀하셨다. “너희들과 해외여행을 간다면 백두산엘 가고 싶어, 그 산 꼭대기에 넓은 호수가 있잖아, 그게 신기해” 백록담과 천지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칼데라호와 화구호로 태생부터 다르다는 걸 아셨던 것일까. 엄마는 당신의 마지막 여행지로 백두산 천지를 짚으셨다.

그리하여 2년 전,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오랜 소망인 백두산 천지를 보러 중국행을 실행했다. 날짜도 잊어버릴 수 없다. 6월 23일. 그날은 사건이 동시다발로 폭발한 날이었다. 9살인 둘째가 며칠 전부터 장염으로 병원을 들락거렸고, 바로 그날 새벽에는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비명을 질러댔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의사는 충수염(맹장염)일 수 있으니 CT를 찍어야한다고 했다. 맹장이 터지면 복막염이 아닌가. CT판독이 나오기까지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오만 생각이 오갔는데, 의사는 충수염은 아니고 급성 장염이라 여행에 지장은 없을 거라고 했다. 응급처방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안도와 함께 피식하는 웃음이 터졌다. 여행 준비 같은건 하나도 못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대충 쑤셔넣고 공항으로 달려갔다.

공항에 도착해 보니, 청주에 사는 언니 내외가 여권을 챙겨오지 않아서 다시 청주로 내려갔다고 한다. 오 이런, 화물편으로 짐부터 실었지만, 사람은 탈 수 있단 말인가. 승객은 모두 비행기에 탑승했는데도 우리 가족들은 공항에 남아서 전화로 중계방송을 돌렸다. 충수염이라는 장애물을 넘고 나니, 여권이라는 장애물이 또 우리를 뛰게 했다. 여권 지참하고 언니 내외가 도착했고 팔순 노인에 장염 걸린 아홉살을 앞세운 우리는 계주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처럼 종종거렸다. 이륙 몇 초를 남기고 중국 다롄(大連)행 비행기에 착석하고 나니, 아, 관광이고 뭐고 출발부터 탈진할 판이었다.

다롄에서 창춘(長春)까지는 기차로 이동했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 한국전쟁통에 끊어진 압록강 다리 앞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았다.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섬 위화도는 압록강 가운데 떠 있었다. 위화도에는 풀 먹이러 나온 목동들이 보였고 섬 주위로 산책이라도 나온듯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보였다. 국경의 긴장감보다 여느 농촌의 일상이 느껴지는 오후가 펼쳐졌고, 우리가 탄 유람선 주위로 물건을 팔러나온 북한 배를 만나기도 했다. 사공은 북한산 담배와 오리알, 인삼주 등을 팔고 싶어 했다. 다음날 백두산 천지에 올랐으나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안개만 실컷 감상하다 내려왔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우리 가족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천지와의 조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덕분에 “천지가 나무라지 않는다면 손이라고 담고 보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참 무겁게 다가온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대통령 내외가 백두산 관광의 물꼬를 텄으니, 북쪽을 통한 백두산 천지 영접도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너희들과 해외여행을 간다면 백두산엘 가고 싶어, 그 산 꼭대기에 넓은 호수가 있잖아, 그게 신기해” 과연, 우리 ‘엄니’께서는 천지 친견이라는 찬스를 한번 더 쓸 수 있을까? 정말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김명숙 칼럼

김명숙 칼럼니스트

충북 단양 출신
한양대 국문과 졸업
성미산공동체 '저해모(저녁해먹는모임)' 회원
성미산공동체 성미산택껸도장 이사
나무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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