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대신 꿈 찾는 오늘, 우린 행복해요”
“입시 대신 꿈 찾는 오늘, 우린 행복해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9.25 0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 특성화고 인식개선- 다양한 경험을 찾아라]
<2> 애월고 미술과 아이들

제주도내 특성화 고교가 살 길을 찾아가고 있다. 특성화 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학 진학만을 꿈꾸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그럼에도 특성화 고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 ‘2018 특성화고 인식개선-다양한 경험을 찾아라’는 기획은 제주도내 특성화 고교를 지원하고 있는 각종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이를 통해 특성화 고교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이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기획은 모두 5차례 이어진다. [편집자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당신은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애월고등학교 미술과 학생들이다.

2016년 5월, 특수목적고등학교로 지정된 애월고는 이듬해인 2017년 3월, 첫 미술과 입학생(40명)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3월에도 40명의 신입생을 모집, 현재 1~2학년 총합 80명의 학생이 애월고 미술과에서 꿈을 키우는 중이다.

출범 2년째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단계지만 시설과 교육 내용만큼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 수준이라고 하는데, 사실일까?

과연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애월고 미술과 2학년 임지수, 양동주 두 학생을 만났다.

애월고 미술과 (좌)임지수 학생, (우)양동주 학생은 전공은 다르지만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애월고 미술과의 실기 수업으로는 4개 전공(한국화, 서양화, 디자인, 조소)이 있다. 1학년 1학기엔 4개 과목의 수업을 모두 듣고, 2학기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 형식이다.

임지수 학생: 제 꿈은 원래 광고 디자이너였어요. 그렇다고 확신이 있는 꿈은 아니었고, 다소 막연한 마음이었죠. 그렇게 애월고 미술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조소 실기를 경험했어요. 손으로 입체적인 작품을 만드는 게 재미있고 뿌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조소가 좋아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이곳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제 적성을 좀더 살펴보고 싶어요.

양동주 학생: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다보니, 미술계에서도 디자인 전공이 인기가 있어요. 저도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미술과에 입학했죠. 그런데 1학년 때 다양한 전공의 실기 수업을 경험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저는 전혀 다른 성향이었어요. 저에겐 회화가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에 서양화를 선택했죠.

애월고 미술과에서 공부한 지도 어언 1년 반이 넘은 시점. 두 학생은 무엇을 느꼈을까?

임지수 학생: 전공을 선택하더라도 방과후수업을 통해 다양한 전공을 경험해볼 수 있어요. 매 학기 하나씩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서 듣죠. 저와 동주는 유화를 선택해서 듣고 있는데, 이런 교육환경이 정말 좋아요. 유화뿐 아니라 금속공예 등 큰돈을 내야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으니 행복한 것 같아요.

애월고 미술과 조소 전공 임지수 학생의 작품.

양동주 학생: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교육 과정이나 시스템의 수준이 높아요. 특히 선생님들이 정말 좋아요. 교내 프로그램이나 활동이 매우 많은데, 저희를 위해 희생하시는 부분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도 늘 헌신적으로,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들께 늘 감사해요.

끊이지 않는 애월고 미술과에 대한 칭찬에 ‘혹시 애로사항은 없을까’ 물어보니 한참을 생각하다 “없다”고 말하는 두 학생. 그러다 애월고에 입학하기 전, 면접 날의 추억을 불현듯 떠올리며 신난 듯 털어놓는다.

임지수 학생: 자기소개서 위주로 질문할 줄 알았는데, 미술 관련 기초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자기소개서만 달달 외워갔는데 말이죠. 좀 배신감을 느꼈어요. (웃음)

양동주 학생: 저는 면접 본 후, 울면서 나갔어요. 질문하시는 이론들을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떨어졌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서 울었어요. 애월고 미술과에 꼭 오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울면서 곧장 인성 면접을 보러 들어갔는데, 면접관 선생님께서 제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셨어요. 감사했죠.

애월고 미술과 서양화실 모습. 오른쪽 한편에선 강사 선생님의 작품 활동이 한창이다.
애월고 미술과 서양화실 모습. 오른쪽 한편에선 강사 선생님의 작품 활동이 한창이다.

살면서 ‘면접’이라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16살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면접이란 거대한 산이었다. 하지만 ‘미술을 배우고 싶다’는 의지는 면접관들에게 통했고, 덕분에 어엿한 애월고 미술과 학생이 될 수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며, 공무원을 꿈으로 꼽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 이들의 꿈은 무엇일까?

임지수 학생: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조소 작가로 활동하고 싶어요. 우리 학교 선생님들처럼 강사 활동도 하고 싶고요.

양동주 학생: 저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연출을 하고 싶어요. 서양화는 미술 중에 기본이 되는 전공이기 때문에 선택한 전공이에요. 그래서 대학에서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관련 수업을 배워보고 싶어요.

‘요즘 애들, 예전 같지 않다’라는 어른들의 무심한 말이 무색하게, 그 누구보다 아이처럼 순수한 얼굴로 꿈을 고백하는 아이들이다.

두 학생의 말을 가만히 듣던 애월고 오건일 교사는 “애월고 미술과의 시설은 전국 최고라 자부한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낸다.

오 교사는 애월고 미술과의 선생님이자, 예술부장이다.

애월고 미술과의 선생님이자, 예술부장 오건일 교사가 <미디어제주>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오 교사는 “애월고에는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 두 대가 있다. 하나는 중형, 하나는 대형이다”라면서 “처음에는 가마가 없었는데, 원활한 작품 활동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어 갖추게 됐다”고 애월고 자랑을 시작한다.

자랑거리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애월고 미술과 학생들이 수업하는 ‘미술관’ 건물 곳곳에서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다양한 시설물을 만날 수 있다.

먼저, 실기 교실에는 학생들이 쉽게 그림을 떼고, 붙일 수 있도록 만든 벽면이 있다. 철로 된 이 벽면에 자석으로 붙이기만 하면 간편하게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

디지털 전공실에는 접이식 컴퓨터 책상이 있다. 일반 책상처럼 보이지만, 책상 속에 감춰진 컴퓨터 모니터가 열리면 어엿한 디지털 전공실이 된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땐, 컴퓨터를 접어 책상으로 사용한다.

애월고 미술관 건물의 교실 시설물 모습. (좌)학생 작품을 쉽게 게시할 수 있는 철판 벽면, (우)디지털 전공실에 있는 접이식 컴퓨터 책상. 네모난 부분을 위로 올려 모니터를 사용할 수 있다.

이곳에는 웹툰 작가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모델인 태블릿도 구비되어 있다. 고가의 장비지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선 필수 요소다.

특히 애월고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전시실’은 이곳의 큰 자랑거리다.

자신의 작품을 어느 곳에서 정기적으로 전시한다는 것은 기성 작가에게도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다.

하지만 애월고 미술과 아이들은 이곳 전시실에서 작품 전시회를 쉽게 개최할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장소를 확보한다는 관점에서 쉽다는 말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서는 기성 작가 못지않게 치열한 고민을 하는 아이들이다.

오건일 교사: 전시회를 개최할 때 액자 없이 그림만 전시한다면 비용이 절약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기성 작가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액자를 사용해 전시하고 있죠. 이 모든 것들이 학생들이 지금부터 ‘작가’로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에요.

애월고 미술관 건물 1층에 위치한 전시실 내부 모습. 1학년 학생들의 그림과 재미난 모양의 모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학생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만큼 애월고 미술과의 수업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애당초 실기를 보지 않고, 면접으로만 학생을 뽑기 때문에 일단 입학하면 기초 다지기 등 할 일이 태산이기 때문이다.

오건일 교사: 교내 미술대회만 해도 현재 25개나 있어요. 과제도 단순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도록 주문하죠.

정형화된 입시 미술에서 한 걸음 떨어져, 더 먼 곳까지 바라보는 교육을 지향한다는 오 교사는 애월고 미술과가 “제주도 미술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건일 교사: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암기식’ 미술이 상당수를 차지했어요. 당장 좋은 대학을 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작가로서의 강점을 모두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것을 경계해야 해요.

애월고 미술과에서는 학생들이 당장 좋은 대학을 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무기를 갖춘 어엿한 작가로 자립하도록 교육한다.

때문에 미술 뿐만 아니라 토론, 각종 동아리, 봉사활동 등 교내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오건일 교사: 미술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제 생각을 작품에 녹이는 방법’을 터득하는 거예요. 이를 위해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토론 등을 통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죠. 그림 그리기, 작품 만들기, 책 읽기, 토론하기 등 교육과정이 워낙 많아 처음엔 학생들이 힘들어하기도 해요. 그래도 미술이 정말 좋아서 온 아이들이라 그런지 한 학기 정도 지나면 적응하더라고요. 이젠 교내 활동 외에도 행사 부스에 참여하는 등 프로그램이 있으면 너도나도 참여하겠다며 손을 들어요. 그럴 때면 아이들이 기특하고, 대견해요.

여느 미술과 대학생들처럼, 학생들은 전공과 관계없는 수업도 듣고, 공부한다. 내실이 꽉 찬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멋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애월고 미술과만의 확고한 교육 신념 덕분이다.

애월고 미술관 건물 1층에 위치한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4.3기획전. 4.3을 형상화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어느 곳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높은 수준의 교육에 학생들은 행복하지만, 현실의 고충도 있다. 애월고에 미술과를 유치하면서 시설, 프로그램 등 모든 것을 새롭게 정비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 존재했다.

오 교사는 초반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교육청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을 아이들도 알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한다”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오건일 교사: 애월고 미술과에는 우수한 강사들이 포진해 있어요. 도교육청의 지원 덕분에 좋은 강사분들을 모셔올 수 있었죠. 다만, 매우 좋은 조건의 대우를 해드리는 만큼 교육을 위한 부담도 많이 드립니다. 아이들 수업 외에도 연구 작업을 하도록 하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그린 그림은 모두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도록 요청하고 있죠. 매주 아이들의 특이한 활동을 적어서 제출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소심한 학생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 생활기록부를 정기적으로 작성하는 거죠. 이는 한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인 애월고라서 가능한 방식이라고 봐요.

오 교사는 애월고 미술과를 ‘목숨 걸고 살려보자’고 다짐했단다.

그는 차곡차곡 쌓은 애월고 미술과만의 노하우를 정리해 ‘애월고 미술과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자료를 취합 후, 애월고의 교육 과정을 교과서로 꾸리는 것도 기획 중이다.

입시학원 원장 출신으로, 12년째 베테랑 교사를 맡은 그가 미술과를 살리기 위해 작정하고 나섰다니. 애월고 미술과는 성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애월고 미술과의 교실 조명은 일반 교실과 다르다. 색감을 생생하게 살필 수 있도록 고심한 결과, 교실 내부가 균일한 밝기를 유지하도록 조명을 설치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벌써 달리기 시작한 이들의 얼굴에는 펼쳐질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가득하다.

미술이 좋아 애월고를 선택한 미술과 아이들, 그리고 오건일 교사를 비롯한 각 전공 교사를 포함해서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