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꿈과 가치를 구현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4)
제주의 꿈과 가치를 구현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4)
  • 미디어제주
  • 승인 2018.09.20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체계적인 리더 발굴과 육성, 검증 시스템을 확립해야 ”
# 제주의 가치와 꿈의 구현, 자질과 경험을 갖춘 지도자 양성에서 시작해야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요즘 우리는 지방 분권의 시대와 함께 경쟁력 없는 지역이 사라지는 지방 소멸의 시대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지방 분권과 지방 소멸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논리와 이념보다는 주민들의 민생에 초점을 맞춘 비전을 제시해 지방자치 역량을 먼저 갖춰야 한다. 지역 특색에 맞는 성장·발전 모델을 찾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제주 지사가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 극복, 일자리 창출, 환경 보호, 투자 유치 등 주민 삶과 직결되는 과제만 해도 첩첩산중이다. 이처럼 엄중한 현실은 원 지사의 과거 집착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바로 도태될 수 있는 게 오늘날의 지역 생존경쟁이다. 지사가 경쟁력 있는 지역 세일즈맨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역량 부족과 급격히 ‘기울어진 운동장’의 정치구도 속에서 아마추어 지사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또 다시 도민을 실망과 좌절에 빠지게 할 수 있다.

1400년대 말 이탈리아는 당파 싸움에 찌든 정치, 타락한 교회, 사회적 부패의 암울함으로 파국 상황이었다. 강대국 프랑스가 쳐들어오자 도시국가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르네상스의 고향인 피렌체의 운명도 풍전등화였다. 이때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의 정치에 혜성같이 등장한다. 금욕과 헌신의 삶을 살았던 그는 부패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던 교황과 상류층과 정치권을 질타하는 설교로 민중을 사로 잡았다.

그는 단번에 피렌체의 구세주가 되어 환호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업고 인민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냉혹했다. 아마추어 지도자의 실정 아래 경제가 위축되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급격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 집권 4년 만인 1498년에 실각한 사보나롤라는 피렌체 시청 광장에서 그를 정치적 구세주로 떠받들던 바로 그 민중들의 손에 의해화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보더라도 아마추어 지도자에 대한 과잉기대는 예외 없이 임기 초기의 열광적 지지와 후기의 총체적 민심이반으로 얼룩지는 비극적 이중주로 점철된다. 원희룡의 실패도 그의 수석 신화가 사보나롤라처럼 정치적 구세주로 부풀려진데 원인이 있다. 수석 타이틀의 대명사라 해서 제주 곳곳에 켜켜히 쌓인 분란․갈등과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난무하는 현실정치를 제대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는 죽기 직전에 한숨을 푹 쉬면서 “주님 제게 주신 왕관이 선물인 줄 알았더니 너무 무겁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오로지 야망과 사욕만으로 정치판에 뛰어드는 아마추어 제주 정치인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요즘 제주는 개방화 시대를 맞이하며 축적된 다양한 모순과 중층적 갈등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구성원간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과 높은 사회적 갈등의 해결법을 찾기 위한 지사의 리더십도 부족하고 도민적 의지도 사라진지 오래됐다. 그래서 지금 제주 사회의 최고 화두는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과 공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과 공존을 저해하는 제주의 위기는 다음 세대를 만들지 못하는 불임 구조와 지사의 제왕적 권력구조에 있다고 본다. 차세대를 키워내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또한 모든 힘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제왕적 권력 구조는 정치·사회 파행의 악순환 원인이 된다. 이러한 퇴행적 정치구조 하에서 권력을 쟁취한 집단은 제주 공동체가 제 소유물인양 군주처럼 도민 위에 군림하며 독단과 독선을 일삼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퇴임 후 권력의 유지를 위한 퇴행적 정치의 악순환으로까지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지사 한 사람의 개인적 소신과 편견, 오기, 취향, 협량이 여과 없이 도정 운영에 투영되고 모든 제주 공동체가 그에 맞춰 줄 서고 재편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한 제주의 가치와 꿈은 구현될 수 없다. 자질을 갖추고 현장 경험을 통해 숙성된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제주의 퇴행적 정치가 계속 너절하게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최악의 선거를 겪은 지금이야 말로 퇴행적 정치의 악순환을 청산해야 할 때다. 이번에도 허송세월하면 우리 모두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6.13 지방선거를 겪으면서 제주 도민은 제주 정치인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질과 준비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관성과 퇴행의 덫에 갇혀 있는 이들은 여전히 괜당이나 패거리 정치가 벼락출세의 첩경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 결과 정책선거가 실종되어 이전투구의 최악의 개판선거로 전락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 6.13 지방선거는 제주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과 공존을 위한 엄중한 과제를 도민들에게 부여했다고 본다.

과제의 핵심은 제주 도민의 꿈과 가치 구현을 위한 도민의 자각이며 그 출발은 자질과 경험을 갖춘 지도자 양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지도자 육성에 대해 깊이 있게 토론하고 성찰하는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 공론의 장을 통해 젊은 시절에 정치적 신념을 개발하고 단련하며, 정치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청년 정치 활성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6.13 선거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일자리 문제 등으로 상실감이 큰 젊은 세대가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적 리더를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이 지도자 육성 공론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보지만 제주 사회가 이 문제에 쉽게 귀를 기울일 것 같지 않다. 지도자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제주 사회가 정치적으로 충분한 식견을 지닌 젊은 정치인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주된 이유는 老정치인들의 퇴임후 권력이 활개치도록 도민들이 방조함으로서 젊은 정치인 양성 공론화의 기회가 막히고, 기성 권력이 쌓아 놓은 견고한 성벽과 사회적 폐쇄성에서 내면화된 현실 안주의 나약함이 제주 사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정치인들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노예 근성 정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주 정치의 혁신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제주 노정치인들부터 성찰과 반성을 통해 스스로 나서서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얼마 전 원로 한 분이 제주의 리더 양성을 위한 정치 교육 아카데미 설립이 필요하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제주 위기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를 잘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국민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음은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정치 교육 아카데미 설립의 기본 이념은 미국의 공교육을 벤치마킹했으면 한다.

미국의 공교육은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을 기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학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보다 학교나 공동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에게 더 좋은 점수를 준다. 자신만의 입신 출세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다하며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지도하는 것을 학교 교육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 가치관이 오늘의 미국을 만드는 원천이 되고 있다. 억지 양심과 소신을 떠벌리며 공동체의 꿈과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는 제주의 리더들이 성찰과 반성을 통해 배워야 할 참교훈이 여기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울림의 소통을 통해 위험과 고통에 힘들어하는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애썼다. 독일군의 끊임없는 공습에도 불구하고 버킹엄 궁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전쟁의 참혹한 고통을 함께 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 국왕은 독일군 폭격으로 피해를 본 지역을 방문해 격려하고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창문을 판자 등으로 가려 추위를 견뎠다. 국가 위기상황에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보여 줘야 할 전범(典範)을 조지 6세는 제대로 보여 준 것이다.

영국의 왕들은 전쟁에도 직접 참가하든지 전쟁터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는 영국 왕위 계승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 제국의 위상이 급격히 무너짐과 동시에, 왕실의 존재에 대한 회의론적인 시선 속에서도 여전히 영국 왕실이 수많은 국민의 존경과 관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던 미국인들은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라는 무인 우주선을 우주궤도에 올리자 충격에 빠졌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올려놓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른바 미국인의 꿈과 가치가 배어있는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정책'이다. 달 착륙이라는 가슴 뛰는 꿈과 가치의 국가 경영비전은 미국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소련을 앞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영국 왕실과 케네디 대통령의 사례는 도정 운영에서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하고 도민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도민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경영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만이 제주의 꿈과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대는 리더를 탄생시킨다. 난세에는 천하의 운명을 놓고 승부를 거는 영웅이 출현하고, 태평성대에는 간웅이 나타나 나라와 백성을 쇠락과 고통의 길로 빠지게 하는 것이 고금의 역사였다. 리더의 육성과 선택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리더는 기본적인 자질과 경험이 어우러져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역할 수행이 어렵다. 지식만으로는 허황되고 경험만으로는 협소해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오랜 기간 번영을 이룬 나라나 조직은 리더 발굴과 육성, 검증 시스템이 잘 확립돼 있다. 피렌체의 아마추어 지도자 사보나롤라처럼 스팩과 머리는 좋지만 실질적 경험 부족과 검증이 안된 리더의 깜짝 등장은 자신은 물론 공동체 비극의 시작을 의미한다. 도민들이 피부로 느끼며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제주 사회의 행보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어떻게 교호(交互)하고 어떤 방향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제주 도민의 꿈과 가치 구현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성숙한 사회는 성숙한 개인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것이다. 도민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제주 가치 창조와 꿈을 기대할 수 없다. 온 도민이 다시 한번 공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것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제주 가치의 창조와 꿈의 구현에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