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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건축가들 “단열은 지역 실정에 맞지 않아”
오키나와 건축가들 “단열은 지역 실정에 맞지 않아”
  • 김형훈
  • 승인 2018.09.19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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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은 제주다] <4> 오키나와는 오키나와다

제주에서 이뤄지는 건축 활동은 얼마나 제주도다울까. ‘제주건축은 제주다’라는 제목은 제주건축이 제주다워야 한다는 점을 말하려 한다. 제주건축이 ‘제주’이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하면 될까. 재료일까? 아니면 평면일까. 그렇지 않으면 대체 뭘까. 사실 제주건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수십년간 건축인들 사이에서 논의돼온 해묵은 논쟁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깥을 살펴보면 그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오키나와 등 섬 지역의 건축이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편집자주]

 

2020년부터 전면 적용될 에너지법 반대운동
“오키나와는 단열을 적용해야 할 지역 아니”
아열대지역임에도 에어컨은 잘 가동하지 않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건축은 땅을 제대로 읽어야 그 땅에 맞는 건축 행위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지역의 풍토이다. 풍토란 그 지역의 땅은 물론, 기후여건도 포함된다. 흔히 건축을 이야기할 때 풍경을 꺼내는데, 풍토는 풍경보다 더 많은 걸 담고 있다.

다시 한 번 설명하면 풍경은 주변 건축물과 건축물의 관계, 건축물과 땅의 관계를 말한다. 풍토는 그런 것뿐만 아니라 바람도 담아야 하고, 햇볕도 담아내야 한다. 비가 얼마나 내리는지도 풍토에 포함된다. 어디서 바람이 부는지, 강한 햇볕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바로 풍토라고 보면 된다.

우린 그런 고민을 하면서 건축 행위를 하고 있을까. 단지 풍경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가. 풍경을 살리는 일은 경관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풍토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반쪽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오키나와는 덥다. 습도도 높다. 비바람도 세차다. 한해 태풍이 많이 불 때는 10개까지 오는 지역이다.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지만 오키나와는 더하면 더했지 제주도보다 덜하지 않다.

‘제주건축은 제주다’는 기획은 제주에 맞는 건축 행위를 해보자는 뜻에서 연재를 하고 있다. 오키나와를 예로 드는 이유는 오키나와가 바로 ‘오키나와는 오키나와다’는 외침을 하면서 건축 활동을 하고 있어서다.

오키나와 기획에 도움을 준 이들은 제주도내 건축가들이다. 여기에다 제주대 이용규 교수의 도움도 컸다. 이용규 교수는 오키나와 현지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과 관련 분야 교수를 직접 섭외해주고, 통역까지 도맡았다. 오키나와 현지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풍토를 읽어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 류큐대학의 시미즈 교수, 현지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인 네로메씨와 이시미네씨. 그들이 던진 얘기는 지역성이다.

그들이 말하는 지역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건축물 에너지 소비성능 향상에 관한 법률’(이하 건축물에너지절약법)과 관련돼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6년 ‘에너지절약법’을 폐지하고, ‘건축물에너지절약법’이라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했다. 연면적 2000㎡ 이상의 대형건물을 지을 때는 이 법을 따라야 한다. 외부와 직접 접하는 지붕과 벽, 창문 등의 단열을 의무화 한 법률이다. 2020년부터는 단독주택을 포함한 모든 건축물은 이 법률을 적용받게 된다.

단열이 그토록 중요할까. 단열이 잘 되면 열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 오키나와 현지 건축가들은 이 법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이 법은 오키나와엔 맞지 않는다면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왜 그럴까.

오키나와 건축가들은 건축물에너지절약법이 오키나와의 기후와 풍토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 기술은 유럽과 북미 등 추운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단열을 하는 이유는 난방과 냉방 비용을 줄이는 게 목적이다. 오키나와 지역의 에너지 사용량이 많다면 건축물에 단열재를 사용하는 게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키나와 지역의 에너지 소비는 일본 전국적으로도 최하위에 해당한다. 1990년대 자료이지만 여기에 옮겨보자.

1994년 8월 <일본건축학회 계획계 논문집>에 발표된 ‘-전국적 조사에 기초한 주택의 에너지 소비와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들여다본다.

논문 '용도별 에너지 소비량 단위 산출과 추정식 작성'에 실린 표. 맨위 삿포로는 추운 지역이어서 난방 비율이 매우 높다. 전체 에너지 소비량은 오키나와의 3~4배가 된다. 맨 아래 오키나와의 나하는 아열대 지역임에도 냉방 비율이 높지 않다. 오히려 도쿄(가운데 색칠 부분)가 여름철 냉방 비율이 오키나와랑 맞먹기도 한다. ⓒ미디어제주
논문 '용도별 에너지 소비량 단위 산출과 추정식 작성'에 실린 표. 맨위 삿포로는 추운 지역이어서 난방 비율이 매우 높다. 전체 에너지 소비량은 오키나와의 3~4배가 된다. 맨 아래 오키나와의 나하는 아열대 지역임에도 냉방 비율이 높지 않다. 오히려 도쿄(가운데 색칠 부분)가 여름철 냉방 비율이 오키나와랑 맞먹기도 한다. ⓒ미디어제주

여기엔 삿포로(札幌), 센다이(仙台), 니이가타(新潟), 도쿄(東京), 나고야(名古屋), 교토(京都), 후쿠오카(福岡), 나하(那覇) 등 8개 도시의 에너지 소비량과 사용 형태를 보여준다. 북쪽에 위치한 삿포로는 난방이 압도적이며, 전체적인 에너지 소비량도 오키나와의 나하에 비해 3배에서 4배 이상 많게 나온다.

특이한 점은 오키나와는 더운 지역임에도 냉방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가장 높은 비율을 점하는 건 조명 등의 전력 사용이다. 오히려 여름철 냉방은 도쿄가 오키나와랑 맞먹는 경우도 있음을 표는 보여주고 있다.

2020년부터 단독주택에까지 건축물에너지절약법이 도입되면 단열에 따른 건축 비용이 상승하게 마련이다. 이건 현실적인 고민이다. 아울러 오키나와 현지 건축가들은 건축물에너지절약법을 반대하는 이유로 이 법이 풍토와 맞지 않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아열대 기후로 일년 내내 습도가 높다. 특히 외부와 내부의 온도차이가 클수록 습도는 더 강해진다. 여름철에 냉방을 하다가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킬 경우 외부의 높은 습도가 내부로 유입돼 차가운 벽에 달라붙게 된다.

오키나와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고 있을까. 오키나와 현지에서 본 건축물은 실제 냉방 비율이 낮다. 더운 날씨를 보이지만 그들은 에어컨을 켜지 않고 문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면 더울텐데, 왜 그들은 문을 열고 있을까. 그 답을 다음 기획에서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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