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제주도민을 죽음으로 내몰아 ‘축원성’으로 불려
제주도민을 죽음으로 내몰아 ‘축원성’으로 불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9.06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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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7> 제주성2

성윤문 목사가 오며 겨울철 제주성 수축 원성 대상
1925년 제주항 개발사업하면서 현재 모습 사라져
​​​​​​​제주성 복원하려 애쓰지만 오히려 파괴하는 행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현재 남아 있는 제주성의 흔적은 적다. 일제강점기 때 축항 매립 공사 등으로 제주성의 그 많던 돌은 바다로 들어갔다. 그건 그렇고, 제주성 얘기를 하자면 성윤문 제주목사를 빼놓을 수 없다. 제주성의 골격이 이때 완성됐다고 보면 된다.

성윤문 목사는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임진왜란 막바지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맡고 있었다. 왜구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곳이 경상도 지역이어서 성윤문 목사는 누구보다 왜구를 잘 알고 있었다.

성윤문은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데 1598년 8월 왜적을 생포해서 심문을 하다가 중요한 정보를 하나 얻게 된다. 병에 걸린 도요토미 히데요시 상태가 심각하다는 사실과 부산·동래 등에 있던 왜적들이 장차 철수한다는 정부를 얻는다. 또한 그해 11월에는 생포한 왜병으로부터 도요토미가 7월 초에 이미 죽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장이 됐다는 정보도 얻는다. 더 중요한 건 전투를 지휘하던 가토 기요마사가 귀국을 하는데 일본에서 빈배 50척을 들여오고 군량과 말도 싣고 간다는 정보였다. 이 정보를 활용해 1주일 후에 발생하는 노량해전에 대비를 했다고 한다.

성윤문 목사는 이렇듯 전쟁을 잘 알고, 왜구도 잘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제주목사로 내려와서는 제주성 확장 공사는 물론, 이것저것 건축물을 많이 만들게 된다.

성윤문 목사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제주 땅을 밟는다. 1599년 봄이었다. 그런데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그는 일을 저지른다. 제주성을 더 높게 쌓고 격대와 포루 21곳을 만든다. 남수구와 북수구에 홍문을 만들고, 제이각도 짓는다. 하지만 제주시의 겨울은 북서풍이 매섭게 분다. 때문에 육지부보다 추운 날이 많다. 겨울에 공사를 하다 보니 공사중에 10여명이 죽는 사고도 발생했다. 오죽했으면 당시 성윤문 목사 때 벌인 제주성 공사를 두고, 죽은 이들을 축원한다고 해서 ‘축원성’이라고 불렀을까.

2015년 복원된 제이각. 성윤문 제주목사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엉터리 복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디어제주
2015년 복원된 제이각. 성윤문 제주목사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엉터리 복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도민들에겐 성윤문 목사는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성윤문에 대한 상소도 중앙에 많이 올라갔다고 한다. 파면해달라는 상소가 올라간다. 인기가 없던 목사이긴 했다. 판관과 한 기생을 놓고 간통을 하다가 상소가 올라가는 경우도 생겼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성윤문 목사에 대한 성품을 잠시 소개한다. 성윤문을 수원부사로 임명하는 기사로, 선조 40년(1607) 당시 기록이다. 여기엔 성윤문을 비롯해 22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다른 인물들은 이동직위만 소개하고, 유독 성윤문에 대해서는 주를 달아 그를 소개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윤문은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사나워서 가는 곳마다 이민(吏民)과 장졸들이 모두 원망하여 흩어졌다. 일찍이 제주 목사가 되어서는 군졸을 혹사하였는데 홧김에 혹독한 형벌로 수십 명을 죽였다. 그 잔인함이 이와 같았으므로 다들 분노했다.”<선조실록 210권, 선조 40년 4월 8일 경자 3번째 기사>

세월은 흐르고 그 시간만큼이나 변화를 준다. 성윤문이 그토록 제주사람들을 죽여가면서 구축한 성은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제주항 개발사업을 하면서 제주성을 구성하고 있던 돌은 바다로 입수한다. 당시 바다 1만7000평을 매립하는 공사였다. 1928년까지 진행된 그 사업으로 제주성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때문에 제주성을 복원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일제가 아니어도 제주성은 헐렸을 게다. 이동량이 늘고, 큰 차량도 오가게 하다보면 자연스레 성곽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복원 얘기가 나왔으니 한마디를 하고 제주성 이야기는 마치겠다. 현재 도정은 제주성을 복원하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구상중인 모양이다. 그러려면 엄청난 토지를 사들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년 전 서문 복원이 실패한 이유도 그렇다. 제주도는 ‘진서루’라고 불리던 서문 복원을 내세웠지만, 삼도동 주민들이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다며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사업은 사라졌다.

어쩌면 복원은 또다른 파괴의 작업이다. 주민들도 그걸 안다. 성윤문 목사가 세웠던 제이각은 2015년에 복원됐다. 6개월만에 ‘뚝딱’ 복원하는 놀라운 기술력(?)을 발휘했다. 제주도민을 죽음으로까지 내몰며 제주성을 구축했던 성윤문이 봤으면 뭐라고 할까.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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