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거리의 사람이라고 하찮게 보지는 마세요”
“거리의 사람이라고 하찮게 보지는 마세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8.05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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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 주인공 달문을 만나다
김탁환 작가 “거지로 실록에 나오는 당대 문제적 인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기자와 달문(達文)과의 만남은 끝났다. 김탁환의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주인공 달문. 엊그제 소설을 다 읽었으니, 다시 그 소설을 손에 잡기 전까지는 달문을 만날 일은 없다. 그럼에도 달문은 기억에 맴돈다. 참 이상하다.

사실 <이토록 고고한 연예>에 등장하는 달문을 그토록 애타게 찾으면서 만날 이유는 없었다. 달문을 소설을 통해 만나야 했던 이유는 단 한가지다. 김탁환 작가와의 만남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날은 지난 7월 17일이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작은책방인 ‘디어마이블루’의 개업일이면서 김탁환 작가의 북콘서트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기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토록 고고한 연예>는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마주했다. 소설 주인공인 달문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고, 유배 형벌을 받았다는 그런 정도의 내용만 알고 있었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저자 김탁환 작가. 미디어제주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저자 김탁환 작가. ⓒ미디어제주

바쁘다는 걸 핑계라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무척 바쁘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손에 쥔지 무려 18일만에 읽기를 마쳤으니 그럴만하지 않나. 지난달 시간을 내준 김탁환 작가가 고맙긴 하지만 그와의 만남에서 <이토록 고고한 연예>에 담긴 얘기를 속깊게 하지 못한 이유는 기자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탁환 작가가 기자와 만남을 끝내면서 하는 말. “책을 읽고 글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김탁환 작가의 부탁. 그에 앞서 책을 읽지 않고 작가를 만나려고 대든 그게 원죄인 걸 어떡하나. 덕분에 책은 읽었다. 다만 책을 짬짬이 읽느라 김탁환 작가의 이야기를, 만남 후 20일만에 쓰게 됐다는 미안함은 있다.

김탁환 작가보다는 달문이 더 좋았다. 아니, 김탁환 작가의 글이 지닌 마력에 빠졌다고 하는 게 맞지 싶다. 서두에 ‘참 이상하다’고 말한 이유는 18일 동안 짬짬이 읽어 내려간 소설임에도 내용이 또렷하고, 생생하게 남는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흐름이 있기에 자칫 맥을 놓칠 수 있으나 짬짬이 읽어도 기억이 또렷하니, 이건 작가의 글솜씨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달문은 <조선왕조실록>에 잠깐 언급되지만, <승정원일기>에도 등장한다.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에도 나온다. 영·정조시대를 살아간 한 인물이다. 달문은 청계천 수표교 아래 기거하는 거지 왕초이지만, 일반적인 왕초와는 다르다. 자신이 직위를 이용하지 않고, 아픈 거지와 나약한 거지를 챙겨준다.

생긴 건 얼마나 못생겼는가. 거기에도 일화는 있다. 거지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달문은 거지 왕초로만 존재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놀이패의 두목이었고, 시대의 아픔을 읽는 인물이기도 했다. 기근이 발생하자 조선조정보다 먼저 나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민중을 구했다. 양반들에게 돈을 받아 놀이패를 운영하고, 그 돈으로 민중을 살려냈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에 등장하는 달문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걸 살려낸 인물은 바로 김탁환 작가이다.

김탁환 작가가 달문의 존재를 안 건 30년 전이라고 한다. 소설로 써내려 가겠다고 생각한 건 10년쯤 됐다고 한다.

“오래 생각했어요.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고요. 어떻게 쓸지를 생각하다보니 오래 걸렸죠.”

그가 말하는 달문은 ‘특별한 인물’이다.

“달문은 거지이지만 왕조실록에 등장하는 특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승정원일기에도 등장을 하고요. 그만큼 당대 문제적 인물이 달문입니다.”

김탁환 작가가 특별하다고 말한 달문. 세상에 그보다 더 못생긴 이는 없지만 이상하리만큼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없다. 잠시 달문의 얼굴이나 구경해보자. <이토록 고고한 연예>에 나오는 달문의 모습이다.

“귀밑까지 찢어져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길 뿐 아니라 사과 한 알 정도는 공중에 던져 그냥 받아 씹어 먹는 입. 짓뭉개져 입보다 더 낮은 콧등과 꿀벌이 제집인 줄 알고 들락날락거리는 동그란 콧구멍. 태어날 때부터 털 하나 없는 눈썹 아래로 쏟아질 듯 흔들리는 왕방울 눈. 늘어질 귓불이 어깨에 닿아 먼지와 비듬을 자동으로 털어내는 코끼리 귀. 누가 광대 아니랄까봐 쌍으로 한없이 뻗어 나와 여름엔 땀이 턱에 닿기도 전에 폭포처럼 흐르고 겨울엔 가장 먼저 얼어 터져 연지를 칠한 듯 도드라지는 광대뼈. 책을 세운 것처럼 밑면이 평평하여 어디든 붙이고 잠들기 좋은 사각 턱. 듬성듬성 뽑히다 만 잡초를 닮았으되 찔리면 송곳처럼 살갗을 파고드는 구레나룻. 그리고 엉덩이를 지나 종아리에 닿을 정도로 축 늘어져 춤출 때마다 박자를 타고 출렁이는 한가닥 총각머리.”

상상해보라. 이보다 더한 추남이 있을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달문만 찾고, 달문을 믿는다. 달문은 자신의 배를 불리지 않고, 재물을 갖지도 않는다. 남을 위해 모든 걸 주는 게 달문이다. 이토록 착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김탁환 작가가 달문을 불러들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진 왼쪽부터 미디어제주 필진 나무출판소 김명숙 대표, 김탁환 작가, 작은책방 '디어마이블루' 권희진 대표. 미디어제주
사진 왼쪽부터 미디어제주 필진 나무발전소 김명숙 대표, 김탁환 작가, 작은책방 '디어마이블루' 권희진 대표. ⓒ미디어제주

책은 말한다. 작가는 말한다. 거리의 사람들이라고 하찮게 보면 안된다. 거리의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라는 사실. 난민을 바라보는 눈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여기에다 하나 더. 촛불혁명이 밝혀줬듯이 이제부터는 착한 사람도 잘 살아보자고.

참고로 김탁환 작가는 제주올레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제주를 찾았다. 최근에는 제주 숲을 즐겨다닌다. 1년이면 5~6차례 제주에 쉬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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