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의 스토리텔링이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원도심의 스토리텔링이 역사가 될 수는 없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8.01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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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5> 칠성도2

별자리 일곱 개를 본 딴 마을은 정말 있었을까. 정말 북두칠성 모양이었을까. 풀리지 않는다. 앞서 <파한록>의 저자 김석익이 20세기에 들어 칠성대 일곱 장소를 정확하게 기술했다고 했다. 반면에 같은 시기에 제주에 다녀간 학자 권덕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한 사람은 제주사람, 또다른 한 사람은 소위 육지사람이다.

제주출신 김석익은 1923년 <파한록>을 통해 칠성도의 일곱자리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1년 후 제주에 온 권덕규는 <동아일보>에 글을 게재한다. ‘제주행’이라는 제목의 연재를 하고 있다.

권덕규는 자신의 10번째 기행문에 칠성도를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의 미신’이라는 부제를 달고 글을 쓰고 있다. 잠시 글 내용을 소개한다.

“제주성내에 칠성도가 있으니 고양부 삼성이 세 구역으로 나눠 북두형으로 살았기 때문에 칠성도라고 하지만 이는 믿기 어렵다.”

권덕규는 칠성도의 존재는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북두형 모양으로 나눠 살았는지는 믿기 어렵다고 쓰고 있다. 그의 글을 더 옮겨 써본다.

“칠성도는 하늘에 있는 북두에 제를 지내던 터가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칠성으로 믿는 뱀에게 제를 지냈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아무튼 칠성도는 별이든 뭐든 제사를 지내는 터임에는 분명하다. 삼성이 북두형을 모방하여 살았다는 말은 당치않다.”

권덕규는 제주에 와서 본 내용을 글로 옮겼다. 자신이 칠성도를 직접 봤다고 글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칠성도 얘기를 꺼낸 걸 보면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권덕규는 ‘제주행’이라는 연재를 18회에 걸쳐 진행한다. 1924년 8월 12일부터 29일까지 연재를 하는데 마지막회에 보면 그에게 도움을 준 제주사람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도움을 준 제주사람은 고성주 김달준 김택수 김유돈 등이다.

권덕규에게 도움을 준 인물을 알아보자. 고성주는 당시 교사였다. 제주시 삼양동 출신이었는데, 제주 첫 현대식 서점인 영주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김달준은 일제에 대항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일본에 맞서 우리 배를 가져야 한다며 몇몇 사람들과 1930년에 동아통항조합을 결성한다. 김유돈은 의사였다. 당시 제주 현대의술의 3걸로 꼽혔던 인물이다. 다만 김택수에 대한 인물 정보는 찾지 못했다.

어쨌든 권덕규에 도움을 준 인물들은 당대 제주에서도 이름난 인물들이었다. 과연 그들이 권덕규에게 어떤 정보를 줬는지는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필요하면서도 가치 있는 정보를 줬을 건 분명하다.

문제는 칠성도다. 정확하게 7개 모양으로 있었는지에 있다. 칠성도 7개에 대한 위치가 20세기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사실 여부는 따져봐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권덕규도 읊었듯이 제를 지내는 장소임에는 분명했다.

18세기 제작된 '제주읍도'. 관덕정 북쪽으로 칠성단이 보인다. 미디어제주
18세기 제작된 '제주읍도' 일부. 관덕정 북쪽으로 칠성단이 보인다. 미디어제주

칠성도가 7개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18세기에 제작된 <제주읍도>를 제시한다. 그 지도엔 칠성단이 보인다. 관덕정 남쪽에 칠성단이라는 글자가 써 있고, 북두칠성 모양이 보인다. 칠성단은 관덕정과 판관이 살던 이아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 지도에서 논란을 부르는 건 북두칠성 모양이다. 칠성단이 북두칠성 모양이기에 그렸는지, 아니면 칠성단이 흩어진 게 아니라 한 곳에 모여 있을 가능성도 있다. 칠성도가 애초에 7개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다른 주장을 펼친다. 넓게 퍼져 있는 칠성도를 7개 점으로 찍을 수 없어서 그림으로만 한곳에 모아놓은 게 <제주읍도>에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가관인 건 칠성도 7개는 북두칠성이고, 삼성혈은 북극성이라는 주장이다. GPS로 연결하면 원도심에 있는 칠성도가 북두칠성과 맞아 떨어지고, 삼성혈이 북극성이 된다는 말이다. 아주 흥미로운 얘기이긴 하다. 우린 이런 걸 스토리텔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역사는 아니다. 그 단계를 넘어서 역사적 사실로 입증하기엔 너무 빈약하다.

과거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우선은 실체가 없어서다. 사료도 한계는 있다. 사료를 해석하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칠성도, 내겐 여전히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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